“명절 연휴 따로 없어요”…오갈 곳 없는 노인 위해 구슬땀 흘리는 사람들
by이영민 기자
2023.09.28 10:30:00
매일 첫차 타고 와서 배식표 받는 노인들
급식소는 새벽부터 식재료 준비로 분주
"노인빈곤에 정부도 관심 더 가져야"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최대 6일간 이어지는 추석 연휴가 달갑지 않은 사람이 있다. 명절을 홀로 보낼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노인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끼니를 위해 자원봉사자들은 쉬는 날에도 꼭두새벽부터 밥을 짓고 있다.
| 김정호씨가 27일 서울 종로구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에서 쌀 90인분을 씻고 있다.(사진=이영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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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도봉구에 사는 김정호(71)씨는 27일에도 여느 때처럼 아침 6시 30분시까지 서울 종로구 원각사(사회복지원각) 무료급식소로 향했다. 그가 대문을 열기 전부터 급식소 앞에는 식권을 받으려는 노인 91명이 줄지어 있었다. 끝이 안 보이는 줄을 보던 김씨는 “오늘은 비가 와서 덜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며 “오전 11시쯤에는 너무 많이 와서 매일 250명까지만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새벽부터 와서 기다리는데 명절이라고 쉴 수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보리스님이 1993년에 문을 연 무료 급식소는 30년간 365일 운영되고 있다. 급식소 운영 비용과 음식재료는 민간 후원과 기부로 충당되고 있다. 김씨와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이번 연휴와 추석 당일에도 급식소로 기부된 재료를 요리해 배식한다.
매일 200여 명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9년째 이곳에서 봉사해온 강소윤(57)씨는 고된 일조차 즐겁다고 했다. 그는 “주부로 집에 계속 있으면서 우울하고 존재감이 없는 것 같았는데 봉사를 하니까 행복하다”며 “어느새 이 일이 내 삶의 일부가 됐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예전에 유치원 교사로 일했는데 노인도 아이처럼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여기 와서 기다리느라 고생했을 텐데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드리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무료급식소 앞에 늘어선 줄은 시간이 지날수록 길어졌다. 탑골공원 담장 앞에는 천안, 수원, 인천 등 전국 각 지역에서 온 노인들이 한 줄로 서 있거나 순서를 표시한 종이상자를 연석 위에 올려뒀다. 궂은 날씨에 노인들은 머리카락과 옷이 젖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 무료급식소를 찾아온 노인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주위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사진=이영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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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은 추석에도 이곳에 오겠다고 입 모아 말했다. 동대문구에 홀로 거주하는 김모(73)씨는 “연휴에 와야지, 갈 데가 없어”라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추석에 대한 생각을 묻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추석이 좀 즐겁고 좋아야 하는데 여기 오는 독거노인들은 돈이 없으니까…나도 노인복지회관에서 일해서 한 달에 27만원씩 받는다”며 “복지관도 밥값이 싸지만 여긴 공짜니까 좋다”고 했다.
은평구에 사는 김모(77)씨도 “가족들이랑 살지만 집에 있으면 답답하다”면서 “여기 오면 같은 나이대 사람들이 있으니까 적적하지 않다”고 무료급식소를 오는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추석이 좋겠지만 혼자 있는 사람들은 더 외로울 것”이라며 “고생해서 도와주는 사람들 생각하면 고맙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독거노인 가구는 2005년 이후 증가세다. 지난해 9월 기준 전국 가구 10곳 중 1곳(9.1%)는 노인 1인 가구였다. 원각사 무료급식소 관계자는 “여기 오는 노인도 점점 늘고 있다”며 “처음에는 120명만 와서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요즘 불경기 때문에 후원이 줄어서 고민이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연휴 기간 심해질 수 있는 노인빈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명절에는 복지시설이 문을 닫아서 노인빈곤이 더 심해질 수 있다”며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독거노인의 실태를 파악하고, 긴급지원할 수 있도록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추석에 독거노인 지원센터에서 응급의료시스템을 가동하지만 그 이상의 도움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독거노인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자원봉사자들이 27일 노인들에게 배식할 무료급식을 접시에 담고 있다(사진=이영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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