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혁신@미술]<11> 때로는 무의식에 기대라 더나은 선택으로 이끌리

by오현주 기자
2020.08.28 04:10:02

▲초현실주의와 무의식
초현실주의, 무의식서 창조 영감 끌어내
이성·통제 벗어난 기법으로 무한 상상에
무의식, 비즈니스의 창의적 결정에 도움
의식적 과정에 개입…혁신 중요동력으로

이브 탕기가 그린 ‘불분명한 가분성’(Indefinite Divisibility·1942).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탕기는 초현실주의 원칙을 가장 충실하게 따른 화가로 꼽힌다. 끝없는 수평선, 시간을 초월한 몽상적 요소를 배경으로 기묘한 형상의 생물과 광물, 또 태곳적 바위와 화석 등을 채운 기괴하고 비현실적인 공간을 표현했다. ‘불분명한 가분성’은 진공상태의 꿈속 같은 공간을 묘사한 숱한 작품 중 한 점. 탕기의 화풍은 이후 미국 전위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 뉴욕 버펄로 올브라이트 녹스 미술관 소장.




[이주헌 미술평론가] 화가들은 창작활동을 하면서 머리가 생각만큼 유능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곧잘 좌절하곤 한다. 기억을 하든 계산을 하든 일상에서는 그리도 유용한 머리가 그림을 그릴 때는 창조 프로세스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그래서 미술가들, 특히 현대미술가들은 아예 이성이나 의식의 체계로부터 일탈해 파괴적이고 해체적인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그 대표적인 미술이 초현실주의 미술이다.

유럽 문명이 큰 위기에 처했던,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에 생겨난 데서 알 수 있듯, 초현실주의는 계몽주의 이래 계속돼온 서양의 합리주의를 배격하고 우리 내면의 저 깊은 심연, 곧 무의식으로부터 창조의 영감을 길어올린 미술이다. 르네 마그리트(1898∼1967), 살바도르 달리(1904∼1989), 호안 미로(1893∼1983), 이브 탕기(1900∼1955) 등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의 작품을 보노라면 마치 꿈속으로 들어가 몽롱하고 초월적인 시공간을 체험하는 듯하다.

이 표현을 위해 초현실주의는 이성과 의식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기법을 개발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오토마티슴’과 ‘데페이즈망’이다. 자동기술법(自動記述法)으로 번역하는 오토마티슴은 무의식적 상태에서 손이 가는 대로 즉흥적으로 형상을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또 흔히 전치(轉置)로 번역하는 데페이즈망은 특정한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내 이질적인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장면을 연출하는 기법을 말한다. 초현실주의 문학의 선구자 로트레아몽(1846∼1870)의 시에 “재봉틀과 양산이 해부대에서 만나듯이 아름다운”이란 표현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전형적인 데페이즈망적 표현이다. 해부대 위에 재봉틀과 양산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통념에 맞지 않지만, 바로 그 기이함으로 인해 이를 본 관객은 고정관념을 벗어나 새로운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이 데페이즈망을 가장 잘 활용한 화가가 마그리트와 달리다. 대중에게도 인기가 높은 두 사람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구상화가였으나, 그들이 데페이즈망에 의지해 그린 화포 위의 세상은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가득차 있다. 이를테면 바다 위 공중에 커다란 바위가 떠 있거나(‘피레네의 성’), 해변에 상체는 물고기인데 하체는 여인인 존재가 누워 있는(‘집단적 창안’) 마그리트의 그림과, 시계들이 흐물흐물하게 축 늘어져 있거나(‘기억의 지속’), 여인의 몸이 사람의 얼굴이 되는(‘겁탈’) 달리의 그림이 그런 것들이다. 그야말로 해부대 위에 재봉틀과 양산이 만난 것처럼 기묘한 그림들이다.

역시 기이하긴 해도 마그리트나 달리와는 달리, 구상이 아닌 추상으로 초현실주의를 추구한 화가들이 있다. 미로와 탕기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탕기의 그림 ‘불분명한 가분성(可分性)’을 보자.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같은 공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물들이 기묘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공간 안에는 생명체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이것들은 스스로 이런 형태를 이룬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이렇게 만들어 놓고 사라진 것일까. 우리의 의식 아래 심연으로 들어가면 이런 신비한 공간과 비일상적인 사물들이 존재할 것만 같다. 초현실주의의 세계는 이렇듯 끝없이 우리의 의식을 흔들어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어떻게 이처럼 기이한 세상을 창조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달리의 방법론을 한 번 살펴보자. 달리는 낮잠을 자다 갑자기 깨어나는 방법으로 무의식을 창작에 활용했다. 달리는 의자에 앉아 낮잠을 자곤 했는데, 잠들기 전 한 손에 반드시 숟가락이나 열쇠를 들고, 그 아래 바닥에는 금속 쟁반을 가져다 놓았다. 잠이 들면 손에 힘이 빠지고 숟가락이나 열쇠가 쟁반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니, 그 요란한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달리는 그때 바로 옆에 놓아둔 연필을 집어들고 방금 꾼 꿈속의 이미지들을 재빨리 스케치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달리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독특한 상상의 세계를 창조했다.

미국 사진가 필리프 홀스먼(1906∼1979)이 촬영한 ‘달리 아토미쿠스’(1948). 홀스먼이 절친이었다는 살바도르 달리를 쵤영한 ‘초현실주의 인물사진’이다. 홀스먼의 조수들까지 합세해 고양이 세 마리와 물 한 양동이를 공중에 던지고, 그림을 그리던 달리가 붓을 든 채 점프를 하는, 절묘한 순간을 의도하고 포착했다. 6시간 동안 28차례 반복해 완성했다는 작품이다.




초현실주의 미술에 관심이 많은 미국의 창의력 컨설턴트 마이클 미칼코는 비즈니스맨들에게 달리의 이 아이디어 착상법을 그대로 활용해보라고 권해왔다. 그의 조언을 받은 한 장례식장 경영자는 달리의 방식대로 잠자던 중간에 깨어 꿈을 기록했는데, 어느 날 꿈에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는 장면과 잡화점을 봤다고 한다. 이 꿈을 기록한 그는 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잡화점을 운영했고, 동네 사람들이 그곳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으며, 그 잡화점 한쪽에 만든 장례식장이 성장해 4대째 가업으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됐다.

이 기억의 환기는 그로 하여금 장례식장에 커피 코너를 만드는 것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렇게 해서 스타벅스 커피점이 그의 장례식장에 부속시설로 들어서게 됐다. 지금은 스타벅스 외에 비즈니스 공간, 관람실, 예배당 등이 어우러져 그의 장례식장은 삶과 죽음이 평화롭게 교차하는 곳, 곧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生死一如]을 실존적으로 체험하는 곳이 됐다. 장례식장의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사람들은 고인을 회고하고 또 자신을 돌아보며 인생의 의미에 대해 평화롭게 숙고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그의 장례식장은 그만큼 ‘인기 장례식장’이 됐다고 한다.

이처럼 무의식의 힘을 빌리면 비즈니스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결정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로란 노드그렌 교수와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의 압 데익스테르하위스 교수는 이 주제를 파고들어 ‘무의식적 사고이론’(Unconscious Thought Theory)을 세웠다. 이 이론에 따르면 무의식은 우리가 뭔가 선택할 때보다 유익한 선택을 하게 하고 문제를 풀 때보다 효과적으로 풀게 한다.

두 교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선택이나 결정을 하게 하는 다양한 실험을 했는데, 일례로 네 개의 아파트에 대한 정보를 주고 가장 좋은 아파트를 고르게 하는 식이었다. 이들은 피실험자를, 많은 정보와 이에 대해 연구할 충분한 시간을 준 그룹, 같은 정보를 주지만 짧은 시간을 준 그룹, 정보와 충분한 시간을 주지만 결정하기 전 주의를 딴 데로 돌리게 한 그룹 등 셋으로 나눴다. 첫 번째 그룹은 시간이 충분한 만큼 대부분 분석을 시도했다. 두 번째 그룹은 시간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즉흥적 선택을 했다. 아무래도 첫 번째 그룹이 두 번째 그룹보다 평균적으로 더 좋은 선택을 했다. 그런데 가장 성적이 좋은 그룹은 이 첫 번째 그룹이 아니라 항상 세 번째 그룹이었다. 왜일까. 세 번째 그룹은 주의를 딴 데로 돌린 탓에 도리어 ‘무의식이 판단 과정에 개입하는 이점’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식의 결정 과정에 무의식이 개입하면 보다 좋은 선택이나 좋은 결정을 하게 된다. 그래서 두 교수는 기업이 회의나 의사결정을 할 때 가능하면 두 단계로 나눠서 해볼 것을 제안한다.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며 토론하는 과정이 하나고, 그것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다른 하나다. 둘은 분리하는 게 좋다. 그러니까 그 사이에 산책을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다른 활동을 함으로써 무의식이 개입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더욱 바람직한 것은 충분히 회의를 하고 파한 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모여 결정을 해버리는 것이다. 의식이 문제로부터 벗어나면 무의식이 문제에 개입한다. 우리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 시간 동안 무의식이 문제와 관련된 사고의 ‘인큐베이팅’을 시작해 의식보다 더 양호하게 문제의 복잡성과 장단점을 파악한다고 한다. 결국 최종적으로 보다 나은 결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미술이 보여주듯 무의식은 이처럼 창조와 혁신의 중요한 동력이다.

프랑스 시인이다. 본명은 이지도르 루시앙 뒤카스(Isidore-Lucien Ducasse). 아버지가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프랑스 영사관의 부영사로 재직하던 중 태어났다. 몬데비데오에서 소년시절을 보내고 13세에 부모의 고향인 프랑스 타르브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진학과 졸업은 제대로 했는지, 남아있는 기록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작가를 꿈꿨던 그는 1868년 시집 한 권을 자비로 출판했는데,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 ‘말도로르의 노래’다. 그때 쓴 필명이 ‘로트레아몽 백작’. 그러나 시집은 출간 당시 독자·평론가 어느 쪽에도 주목받지 못했고, 출판사는 내용이 우울하고 음침하다는 이유로 절판해버렸다. 이후에도 로트레아몽은 변변한 평가나 비평적 성공을 받지 못했는데, 그 좌절 때문인지 24세 나이에 요절했다. 결국 로트레아몽이 초현실주의 문학가와 예술가에게 재발견돼 근대시의 선구자로 추앙받은 건 사후의 일이다. 특별히 초현실주의 미술과 연결이 된 것은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말도로르의 노래’를 연작 삽화로 그리면서다. ‘초현실주의의 기본 태도’로까지 회자하며 20세기 중반까지 자주 인용된 “재봉틀과 양산이 해부대에서 만나듯이 아름다운”이란 시구 역시 ‘말도로르의 노래’에 나온다.



미술로 삶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일상의 풍요를 누리도록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소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발단이 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돌연 일간지 기자가 되면서다. 그림에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막은 생계 때문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리자 했다. 하지만 ‘투잡’은 쉽지 않았다. 미술담당 기자생활에서 얻은 필력과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왔다. 미술을 대중과 제대로 연결하는 미술평론가의 ‘진정한’ 역할, 그것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가나아트 편집장을 하고, 학고재 관장을 오래 한 뒤 서울미술관 초대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양현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온전히 글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이 수십 권이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신화의 미술관’(2020), ‘리더의 명화수업’(2018), ‘역사의 미술관’(2011), ‘지식의 미술관’(2009),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200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