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진 '불공정'… 오지환과 손흥민, 정말 다른가

by장영락 기자
2018.09.08 08:00:00

(사진=육군)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대한민국 남성은 “국방은 신성한 의무”라고 배운다. 그러나 그것이 개별 구성원에게 부과되는 과정은 신성은커녕 논란으로 점철돼 왔다. 그리고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논란은 극에 달했다.

특히 동일한 운동선수 특례임에도 특정 선수를 대하는 국민들의 태도가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올해 저조한 성적에도 대표팀에 발탁된 야구대표팀 오지환은 비난의 표적이 된 반면, 유럽 정상급 무대에서 활약하며 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는 축구 대표팀의 손흥민은 금메달을 따낸 뒤 연일 찬사를 받고 있다.

병역을 둘러싼 공정성 문제는 우리 사회의 오랜 화두다. 본인, 자녀의 병역 이행 여부는 공직자 인사청문회의 1순위 검증사항이며 유명 인사들의 병역 불법 면제 의혹이 나오면 뉴스 랭킹 상단을 점한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일부 종목 선수 선발을 계기로 병역특례 논란이 불거졌다. 병역특례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줄을 이었고, 관련기사에서는 특례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댓글이 큰 호응을 얻었다.

대회 종료 후에는 병무청장이 특례제도 전면 재검토를 언급하는 등 당국도 여론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같은 공론은 특정 선수에 대한 비난으로 집중되고 있다. 병역특례라는 똑같은 사례임에도, 특정 선수에게만 특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지환과 손흥민의 사례는 병역특례를 얻을 수 있는 합법적 경로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군입대가 임박한 오지환이 병역을 더 오래 연기해왔으나 기술적으로 그가 탈법행위를 저지른 적은 없다. 늦은 나이까지 병역을 미뤘다가 뒤늦게 입대하는 사례는 운동선수는 물론 연예인, 경력단절을 막으려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병역 특례를 통해 선수 경력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개인적인 이득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도 두 선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당장 손흥민의 금메달 획득 후 미디어는 그의 몸값 변화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프로구단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형성돼 있는 ‘병특 나눠먹기’ 관행을 생각하면 선동렬 감독이 오지환을 대표팀에 뽑은 것도 이례적이지 않다. 심지어 농구 대표팀 허재 감독은 포지션 적정성 논란까지 겪으며 자신의 아들 둘을 선발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기량을 근거로 오지환의 특례 대상자 지정을 비난하기도 어렵다. 단체종목 자체가 특례대상에서 배제되지 않는 한 일종의 ‘무임승차’ 현상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개인종목의 경우 종이 한 장 차이로 운 없게 특례를 놓친 선수들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아깝게 특례를 받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혜택을 따로 주자는 여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법망의 틈 안에서 편익을 취한 일부 선수들 뿐만 아니라, 행운과 같이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작용하는 운동선수들의 경기 성과에 병역특례라는 지나치게 큰 혜택을 주는 제도 자체도 문제인 셈이다.

병역과 무관한 아시안컵, 월드컵 등의 대회에서 손흥민이 보여준 헌신적인 태도를 두고 “그의 병역 면제는 고깝지 않다”고 말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선수 개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일일 뿐 병역 이행의 공정성이라는 공적 문제에 대한 합당한 접근법이 되기는 어렵다.

이처럼 병역 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논란은 역설적으로 그간 우리 사회가 제도화된 불공정에 길들여져 있었음을 방증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운동과 예술 같은 특별한 재능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보통 남성들은 국가의 의무에 충실히 응해왔다.

그러나 그들이 병역에 할애한 시간이 특례의 행운을 얻은 일부가 할애한 시간에 비해 귀중하지 않다는 사실은 어디서도 증명된 바 없다. 병역 이행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