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0명중 5명 '연봉보다 비전·업무 환경' 선택

by안승찬 기자
2014.12.31 08:14:52

직원 만족도 1위 '배달의민족'..사장까지 참여한 제비뽑기로 간식당번 정해
회사 스트레스 심각한 수준..'기업문화' 가장 중요한 이직 기준 꼽아
"좋은 기업문화 없으면 좋은 인재 확보 못한다"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기업평가 사이트 잡플래닛은 현직 직원이 자신의 회사를 직접 평가하도록 꾸며져 있다. 기업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곳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은 삼성전자가 아니다. 국내 1위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중소기업인 우아한형제들이 주인공이다.

우아한형제들의 직원 만족도는 삼성전자를 뛰어넘는 국내 최고 수준이다. 잡플레닛의 조사에 참여한 우아한형제들 직원 73% 이상이 ‘내가 아는 지인들에게도 우리 회사 입사를 추천하겠다’고 답했다.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우아한형제들은 IT 기업이다. 야근도 잦다. 하지만 직원들은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우아한형제들에 다니고 있는 한 직원은 잡플래닛에 이렇게 썼다. “IT 업계치고 야근 없는 회사가 있을까. 그래도 매우 만족한다.” 힘든 야근도 즐거움으로 탈바꿈시켜준 마법같은 일이 이곳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소기업인 우아한형제들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자유로운 사내 분위기 덕분이다. 우아한형제들의 기업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이 회사는 직원들의 아침 간식을 챙기고 커피믹스나 음료수를 챙기는 당번을 매달 제비뽑기로 정한다. 제비뽑기에는 창업자인 김봉진 대표도 예외없이 참여한다.

성호경 배달의민족 홍보팀장은 “사장님은 운이 좋아서 아직 한번도 안걸렸는데, 임원들은 벌써 여러번 걸려서 직원들 간식을 챙기곤 했다”고 웃었다.

우아한형제들은 직원을 배려하는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놓고 있다. 유명세를 탔던 “경희야, 넌 먹을 때가 제일 예뻐‘란 배달의민족의 광고 문구에 등장하는 ‘경희’는 사실 회사 직원 이름이다. 김 대표는 “광고가 반응이 좋아 다른 직원 이름을 딴 광고 카피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직원 한명 한명이 모두 이 회사의 주인공이다.

직원들의 도서 구입비는 회사가 무제한으로 지원한다. 독서광인 김 대표가 ‘책은 원 없이 읽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철학에 따라 만든 제도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뜻의 ‘지만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본인과 배우자, 부모, 자녀의 생일에는 일찍 퇴근하는 제도다. 직원들은 ‘지만가’를 ‘지만 먼저 간다’라는 뜻에서 만든 이름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우아한형제들의 복지와 급여 만족도는 대기업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함께 으쌰으쌰할 수 있는 직장”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만큼 기업문화가 직원들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뜻이다.

최근 취업포탈 잡코리아가 출판사 ‘지식너머’와 함께 남녀 직장인 600명을 대상으로 이직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업무환경이 어떤 회사인가’를 본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응답자의 32.8%가 업무환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높은 연봉’을 꼽은 직장인은 26.2%로 오히려 뒤였다. ‘비전과 전망’(19.3%), ‘회사 안정성’(16.3%), ‘인간관계’(4.3%), 기타(1%) 등의 답도 있었다.

‘직장생활 만족도가 가장 떨어지는 순간’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일이 적성에 안 맞거나 재미가 없을 때’가 28.5%로 가장 높았다. 연봉이 작다거나(20%) 하는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업문화가 직장인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직장인들의 스트레스가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천시가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인천 지역 4개 기업의 30~50대 직장인 25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4.6%는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우울증·불면증 등 정신적 질환이나 두통·소화불량·탈모 등 신체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12.3%는 화를 참지 못하거나 판단 장애를 일으키는 등 인지적·행동적 장애가 심각해 전문가의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6.6%는 “스트레스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많다”고 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한 관계자는 “드라마 ‘미생’이 올해 유독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직장 생활이 그만큼 팍팍하게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기업들의 기업문화에 좀더 신경을 쓰지 않으면 좋은 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을 절감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