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718호 주인 있나요?” 의원회관 최고 명당은

by이정현 기자
2020.05.15 06:00:00

21대 개원 앞두고 의원회관 명당 경쟁 치열
전망 좋은 ‘정세균방’, 기운 좋은 ‘문희상방’ 인기 만점
518·615 등 정치적 의미 담아, 444호는 삭제
방배정 따라 권력구도 엿보기도

국회의사당 본청 오른편에 있는 의원회관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수행을 위해 1989년 건립돼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규모로 완성됐다. 의원 개인사무실 344실과 450석 규모의 대회의실 및 소회의실 등이 있다.(사진=국회)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의원회관 방 배정을 놓고 당선인 간에 물밑 경쟁이 한창이다. 전망 좋고 기운 좋은 이른바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상징성 있는 몇몇 의원실은 수십여 당선인이 입실을 희망하는 등 과열 경쟁도 이뤄지고 있다. 국회사무처 등에 따르면 의원회관 방 배정은 각 당의 원내행정부가 맡아서 한다. 관례적으로 선수와 나이가 높은 의원들이 먼저 결정한다. 상임위 별로 묶이기도 하는데 당선인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오는 15일부터 불출마하거나 낙선한 의원들이 방을 빼기 시작하는 가운데 다음 주에는 의원실 배정이 정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21대 국회에서 가장 ‘핫’한 의원실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쓰던 718호다. 한강과 양화대교를 내려다보는 좋은 전망을 가진데다 정 총리가 내리 6선을 하고 국회의장에 이어 총리까지 맡으면서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힌다. 이른바 관운(관리로 출세하는 운)이 넘친다는 것인데 이곳을 쓰겠다는 더불어민주당 당선인만 5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회관 로열층은 7~8층이다. 국회 잔디밭과 분수대를 전망할 수 있는 회관 정면과 소통관 넘어 한강 조망이 가능한 측면이 선호된다. 정 총리가 쓰던 718호뿐만 아니라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이 쓰던 706호, 심재철 통합당 전 원내대표가 쓰던 714호, 원혜영 민주당 의원의 816호 등이 대표적인데 모두 새 주인을 찾고 있다.

반대로 인기가 없는 방은 3~4층의 저층 구역이다. 444호는 불운을 상징해 아예 없어졌다. 나무가 전망을 가리는 경우가 많은데다 의원회관이 ‘ㅂ’자 형태로 되어 있어 특정 구역은 햇볕도 잘 들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선택의 폭이 좁은 초선 의원들이 집중 배치되는데 의원회관 내 대표적 흉지다. 이곳에서 20대 의정활동을 하다 재선에 성공한 의원이 “의원실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다만 454호의 경우 저층임에도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해 이만섭 전 국회의장 등을 배출해 최고 명당으로 꼽힌다.

역대 대통령을 배출한 방은 선수와 관계없이 인기다. 정치 노선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기 좋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325호를 썼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인 5월 23일을 뒤집은 번호다. 이 방은 권칠승 민주당 의원이 물려받아 21대 총선에서 생환에 성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545호와 620호를 썼다. 두 방 모두 친박 성향의 통합당 의원들이 선호한다. 545호를 물려받은 이완영 전 의원은 정치자금 불법 수수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620호는 아이러니하게도 최순실 국정농단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던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쓰고 있다.

실용적인 접근도 눈에 띈다. 엘리베이터와 가까워 이동이 편리하거나 카페와 야외 흡연공간이 있는 6층을 쓰는 경우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꼭대기 층인 1001호를 썼는데 엘리베이터와 바로 붙어 있어 이동이 용이하다. 다른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밖에 경호가 용이해 탈북민 출신 의원들이 10층에 자주 배치됐다.

방호수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기시키는 518호가 대표적이다. 광주에서 당선된 한 당선인이 “518호만큼 욕심나는 방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 전북 남원시임실군순창군가 지역구인 이용호 무소속 의원이 쓰고 있는데 21대에서도 계속 쓴다는 방침이다. 이전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썼다. 낙선해 방을 비워야 하는 박지원 민생당 의원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의미하는 615호를 고집해 왔다. 광복절이 떠오르는 815호는 박찬대 민주당 의원이 쓰고 있다.

의원회관 배정에 따라 국회 권력구도를 엿보기도 한다. 18대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쓰던 545호를 중심으로 친박 의원들이 집중 배치된 게 대표적이다. 박 전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렸던 이정현 의원은 맞은편 방을 선호했으나 선수에서 밀리자 아래층인 445호로 들어가며 ‘충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19대 국회는 6층을 쓰는 의원들이 실세였다. 박 전 대통령이 620호로 옮기자 주요 당직자들이 일제히 같은 층으로 방을 옮겼다. 박지원 당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615호에 버티고 있었던 만큼 불편한 이웃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20대 국회가 개원했을 때는 서청원·원유철 의원 등 친박계가 6층, 김무성·이군현·강석호 의원 등 비박계가 7층에 자리잡으며 계파가 구분되기도 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김종인·우상호·최운열 의원 등 당지도부가 4층에 집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