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정훈 기자
2018.01.10 06:31:23
거래 웃돈 50% 넝머서자 국내 거래소 외면 당해
과세·규제·절차 등 구조적 원인에 큰손까지 가세
개인투자자 잠재적 피해 우려…거품 뺄 정책 시급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상화폐 가격이 해외 가격을 크게 웃도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 새로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이 김치 프리미엄을 해소하는데 규제의 방점을 찍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대표 정보업체까지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시세를 통계 집계에서 제외하기로 한 탓이다.
그러나 국내 가상화폐 가격에 높은 웃돈이 붙는 건 단순히 투자자들의 투기적 성향 때문만이 아니라 가상화폐 투자수익금에 대한 과세나 거래절차상 차이, 지정학적 리스크, 큰손들의 시세 조종 등 여러 복잡한 이유들이 얽혀 있는 만큼 당분간 김치 프리미엄이 쉽사리 해소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잠재적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거품을 빼기 위한 대책을 내놓야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가상화폐 가격은 물론거래량과 시가총액, 채굴량, 가격차트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표 업체인 코인마켓캡은 8일(현지시간) 회사 트위터를 통해 “한국내 3곳의 가상화폐 거래소 데이터를 우리 통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코인마켓캡에는 그동안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과 코인원, 코빗 등 3개사가 데이터를 제공해왔다. 코인마켓캡측은 “한국내 가상화폐 가격이 전세계 다른 지역과 극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다 시장에서의 재정거래(가격 차이를 이용한 무위험 차익거래) 기회가 제한적이라 그 차이가 쉽사리 좁혀지지 않을 것 같다”며 제외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20~30% 수준이던 가상화폐 김치 프리미엄은 작년말부터 올초까지 40~50% 수준까지 크게 확대됐다. 실제 빗썸과 비트파이넥스와의 시세를 비교해 보면, 비트코인은 각각 2407만원과 1만4950달러로 50% 정도 국내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은 상태다. 이더리움(49%)과 리플(51%), 퀀텀(53%), 비트코인캐시(51%) 등도 50% 남짓 웃돈이 붙어있다. 이 때문에 암호화폐 가격도 동반 하락중이다. 현재 비트코인 가격에 하루만에 7% 가까이 하락하며 1만4950달러를 기록하고 있고 리플도 13% 가까이 하락해 2.40달러를 기록 중이다. 이에 대해 데이빗 슈왈츠 리플 크립토그래퍼 책임자는 “새롭게 조정된 가격은 더 정확하고 의미있어 보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코인마켓캡측은 “앞으로 한국에서의 가격까지 포함해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된 평균치를 제공할 수 있는 더 나은 산정방식이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며 향후 국내 암호화폐 데이터를 포함하되 산정방식을 달리할 수 있음을 시사했지만 전세계 시장에서 거래량 기준으로 상위 10위내에 포함된 국내 거래소 3곳 데이터를 모두 제외한 탓에 시장 왜곡도 우려되고 있다.
최대 50%에 이르는 김치 프리미엄이 존재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우선 과세체계 차이 때문이다. 가상화폐 거래로 벌어들이는 수익금에 세금이 붙는 달러 거래와 달리 국내에서는 세금이 따로 없다보니 상대적으로 가격 프리미엄이 더 높게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일찌감치 가상화폐를 투자자산으로 인정한 일본과 영국은 물론이고 미국도 올 1월1일부터 가상화폐 투자에 따른 양도차익에 최소 10%, 최고 37%에 이르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다. 또 규제의 차이도 있다. 최근 정부가 규제 칼날을 세우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상화폐 규제는 전무했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만큼 가상계좌로만 암호화폐로 돈을 입금하고 충전 가능한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미국에서는 주소지, 소셜시큐리티넘버 등 개인 인증을 엄격히 하고 있다. 총 3차 인증까지 마쳐야 1주일에 최대 20만달러까지 투자 가능하며 만약 인증이 없을 경우 1주일에 1만달러만 투자할 수 있다. 또 미국에서는 비트코인 선물이 상장되면서 가격 하락에 베팅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난 반면 선물 투자가 불가능한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어할 수 없다는 면도 있다.
아울러 거래소 투자절차 차이도 있다. 국내에서는 빗썸이나 업비트, 코인원 등은 원화만 가지고 있으면 간편하게 비트코인은 물론 이더리움, 리플 등 알트코인들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달러화로 비트코인을 매수해 비트코인으로 알트코인을 사고 파는 거래소나 알트코인을 살 수 있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테더 등만 전문적으로 사고 파는 거래소 등으로 나눠져 있다. 이 때문에 실시간으로 시세 움직임에 대응해 알트코인을 사고 파는데 있어 한국 시장이 해외보다 유리한 상황이다. 이밖에도 국내 투자자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강한 편이고 북한과 휴전 상태에 있는 만큼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다는 점도 법정화폐보다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가상화폐에 대한 매력을 높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시장 특유의 쏠림 현상도 한 몫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투기적큰손들까지 개입해 국내 가격을 띄우고 있다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 가상화폐 가격 상승의 배후에는 ‘고래(whale)’로 불리는 일부 큰손 투자자들이나 자국 법망을 피해 국내로 넘어 온 중국이나 일본계 자금 등이 국내 시세를 주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굴이나 초기 매입을 통해 대규모로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큰손들이 소셜미디어(SNS) 등을 활용해 내부 정보를 뿌리고 시장이 출렁될 경우 코인을 내다 팔아 시세 차익을 거두고 있다는 것. 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 8일 긴급 브리핑에서 “우리나라가 김치 프리미엄처럼 비정상적 거래를 주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라고 언급하며 이 대목에 규제의 초점을 맞출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가상화폐 전문가인 이우진 한국금융IT 이사는 “최근 국내 시장에서 투기를 조장하는 큰손들이 있는 것 같다”고 전제한 뒤 “외국계가 됐든, 세력이 됐든 이미 50% 넘은 김치 프리미엄이 한 달 이상 유지될 수 있는 건 시장 가격을 떠받치는 큰손이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이나 일본쪽 자금이 국내 시장에 꽤 많이 유입됐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정보전문 스타트업 블락지 함정수 대표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세력들은 시장내 투기를 조장하고 일정 부분 환치기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데 이들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유지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풀이했다. 결국 높은 김치 프리미엄을 낮춰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개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우리 스스로도 국내 가격에 과도한 프리미엄이 붙는 걸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며 “정부가 속히 암호화폐를 제도권 내로 받아 들여 거래실명제와 양도세 과세 등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김치 프리미엄이 줄어들고 국내 투자자들의 잠재적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