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육아]한국땅서 미국인으로 크는 '앵커베이비' 한해 5천명

by김기덕 기자
2016.08.16 06:30:00

원정출산 과거 병역기피서 교육·취업 목적으로 변화
주한 외국인학교 다니다 미국서 조기유학 수순 밟아
"헬조선 아닌 미국인으로 자라길" 삐뚤어진 모정 탓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서울 강남에 사는 김신영(가명·37)씨는 지난 2007년 미국 괌에서 첫 딸을 출산했다. 주변에서 미 시민권을 부여 받으면 여러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소리를 들어온 김씨는 임신 전부터 원정출산에 대해 알아봤다. 수천만원이나 하는 비용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태어나는 내 자녀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다. 현재 김씨의 딸은 주한 외국인 학교에 다닌다. 영어와 한국어 둘다 능통하다. 다양한 국적의 반 친구들 덕에 방학때 마다 해외로 놀러간다. 김씨는 아이가 좀 더 크면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보낼 생각이다. 미국은 시민권자는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대학은 학비 혜택이 많은 미국 내 주립학교를 보낼 생각이다. 김씨는 이중국적을 불허하는 만 22세 이후에는 자녀가 동의한다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인으로 살아가게 할 생각이다.

원정 출산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과거에는 병역회피를 위해 원정출산을 선택하는 부모들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녀에게 미국식 교육과 ‘헬조선’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삐뚤어진 자녀사랑이 원정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15일 원정 출산 전문업체 등에 따르면 미국 원정 출산으로 태어나는 ‘앵커베이비(Anchor Baby)는 최소 연 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해 국내에서 태어난 출생아 수(43만 8700명)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원정 출산 전문업체를 거치지 않고 개인 연고를 해외로 떠나는 산모들을 포함하면 실제 원정출산 아동 수는 1만명에 육박할 것이란 분석이다.

만삭인 임산부가 여행비자로 떠난 괌이나 하와이, 사이판 등에서 아이를 낳아 미국 시민권 취득하는 게 일반적인 수법이나 미 본토로 직접 원정출산을 떠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원정출산 업체 관계자는 “괌이나 하와이 등 휴양지 뿐만 아니라 미국 한인타운 내 한국계 병원과 산전·산후 조리원 등은 원정 출산 대기자들이 줄을 이을 정도로 성업 중”이라고 말했다.



과거 병역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원정출산이 활용됐지만 지난 2005년 국적법 개정으로 불가능해졌다. 이후 교육과 취업을 목적으로 원정출산에 나서는 산모들이 늘었다. 미국은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이다. 미 시민권자가 공립대학에 입학하면 학비 보조나 장학금을 받는데 있어 유리하다.

미국이나 한국 내 외국계 회사들이 직원을 뽑을 때 미 시민권자를 우대한다는 점도 원정 출산을 부추기는 요인중 하나다. 특히 우후죽순 생겨난 원정출산 전문업체들의 경쟁적인 마케팅 탓에 과거 사회 고위층의 전유물이던 원정출산이 서울 강남, 목동 등을 중심으로 중산층까지 확산되고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수의 부모들이 자식의 미래 가능성에 투자한다는 명목아래 원정출산에 나서고 있다”며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이뤄지고는 있지만 제대로 된 시민사회 의식 가치가 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유학 등을 보내는 것은 자녀 교육에도 바람지 않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앵커베이비(Anchor Baby):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부모가 짧은 기간 원정 출산을 통해 미국 국적을 얻은 아기. 바다에 앵커(닻)를 내리듯 부모가 아이를 미국인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정착을 돕는다는 뜻의 용어로 미국 원정출산을 비꼬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시아 국가 중산층 사이에서 성행하는 원정 출산, 중남미계 불법 체류자들의 미국 내 출산 등이 이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