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유재희 기자
2014.02.18 08:04:55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인터뷰
수평적 리더십·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조직 변화 이끌어
"일·가정 배척관계 아니지만 선택의 순간엔 가족을 배려해야"
산재보험 시행 50주년..수혜 대상 확대
[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지난해 이사장님 부임 후 점심시간 음주는 사라지고, 저녁 회식은 2시간 이내로 1차에서 마무리합니다. 이사장님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웠던 하위직 직원들이 직접 업무 보고를 하는 일이 늘고, 부서별로 돌아가며 이사장님과 점심을 먹기도 합니다. 언제나 직원들을 환한 미소로 대해주고, 직원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니 이사장님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결재를 받으러 처음 이사장실에 들어갔는데, 이사장께서 책상에서 일어나 응접 테이블이 있는 소파에 앉으며 옆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업무에 대해 조근조근 물어보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자리가 너무 불편했는데 지금은 편하게, 더 자세히 보고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근로복지공단을 이끌고 있는 이재갑 이사장(사진)에 대한 공단 직원들의 평가다. 이 이사장 부임 후 공단에는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이사장은 수평적 리더십을 통해 조직 내 소통을 활성화하고, 조직 구성원 모두가 같은 목표와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26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발을 디딘 후 30여년간 고용노동부에서 일하며 차관까지 역임했다.
이 이사장은 고용부 재직 시절이나, 공단 이사장을 맡은 지금이나 부하 직원에게 인기가 높다. 그의 온화한 인품과 빈틈없는 업무처리 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그가 가진 경쟁력의 전부는 아니다. 그에게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그 힘의 원천은 그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이 이사장이 고용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업무 처리 능력이 다소 미흡한 부하 직원에게조차 엄하게 꾸짖거나 감정적으로 화를 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는 또 하위직 직원과의 스킨십을 중시한다. 일부러 대화할 자리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직원 애로사항의 해결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이사장은 최근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외부 위탁 교육은 공단 소유의 연수원에서 교육을 진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교육비 환급 과정이어서 규정상 시설 좋은 내부 연수원 대신 외부 시설에서만 교육이 가능했던 것이다. 외부 시설까지 왕복하는 시간을 고려할 때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한 이 이사장은 여러 경로로 해법을 모색했고, 지금은 외부 위탁 교육도 공단 연수원에서 이루어진다.
이 이사장은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미처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간과했던 현안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들을 찾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이어 “내 방에 들어오는 간부는 한정돼 있어 많은 직원과 소통할 기회가 없다”며 “담당 실무자를 내 방으로 부르거나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등 일부러 기회를 만든다”고 귀띔했다.
‘워크 홀릭’일 것 같은 이재갑 이사장의 반전은 그의 주말은 항상 ‘가족과 함께’라는 점이다. 주말 나들이는 물론 영화 관람, TV 시청까지도 늘 가족과 함께다. 이미 성인이 된 외동 딸도 거부감없이 가족 모임에 동참한다.
이 이사장은 평소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 주말에는 가족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한다. 고용부에서 차관으로 퇴임한 뒤 공단 이사장 부임 때까지 약 6~7개월간은 가정의 요리를 도맡아 했다.
이 이사장은 “공단 이사장으로 일을 다시 시작한다고 하니, 집사람이 그럼 이제 누가 요리를 해주냐고 걱정하더라”며 “해외에서 근무하던 시절, 시간적 여유가 있어 부인에게 하나, 둘 요리를 배웠는데 지금은 나만의 음식 레시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해져 있는 요리법대로 하기보다는 소스나 조리법을 바꿔가면서 창조적인 요리를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이 이사장은 인터뷰 중 “맵고, 짠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부인과 딸을 위한 라면 레시피가 있다”며 간단히 소개했다.
“물에 다진 마늘을 넣어 끓인 후 라면 스프는 반만 넣습니다. 약간 밍밍하다 싶으면 된장을 조금 넣어도 되고, 깻잎을 넣으면 향이 좋아집니다.”
이 이사장에게 “일과 가정 중 무엇이 더 소중하냐”는 우문을 던지자, “가족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일 때문에 가정에 소홀해선 안 되겠지만, 가족을 위해 일하는 만큼 보다 열성을 가지고 충실히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과 가정의 관계는 대척 관계가 아닌데도 현실에서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선택의 순간에는 가정을 우선 배려하되, 대신 밤새워 일하는 등 그에 대한 보상을 치러야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 30여 년을 고민하고 실천한 선배의 조언이다.
그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고 했다.
“은퇴 이후 상실감을 느낄 수 있는데, 저는 고용부에서 퇴직한 뒤 반년 가까이 쉬는 동안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지요.”
“그때의 경험 덕분인지 퇴직 이후의 삶이 걱정되지 않습니다. 공단 이사장 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30년 동안의 공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여유롭게 개인 생활을 누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