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울리는 포괄임금제]①"정당한 노동대가 받고 싶다"
by김도년 기자
2012.06.22 08:48:24
[인터뷰]포괄임금제, 어느 두 노동자의 `악몽`
"연장근무해도 임금 그대로..블루·화이트칼라 예외 없어"
"고용노동부에 진정서 내면 사용자와 합의 강요 일쑤"
[이데일리 김도년 김상윤 기자] "한 달에 이틀만 쉽니다. 그마저도 야근 때문에 제 생활이 없습니다. 월급은 100만원대인데요. 작년에 결혼해 임신한 아내를 생각하면 생계가 막막합니다"
난생처음 언론사 제보를 결심한 김진혁(가명·34세)씨. 주변의 눈을 피해 주차장에 세워둔 업무용 차량에 몸을 숨긴 채 연락을 취했다. 용기를 냈다곤 했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 ▲ 노동자들이 연장근무와 휴일근무를 하지만 포괄임금제로 별도 수당을 받지 못해 생계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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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9년 전인 지난 2003년부터 경기도 안산에서 경남 울산까지 전국의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일했다. 자동차에서 선박까지 각종 운송수단에 들어가는 부품 제조업무를 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피해 일터를 옮겨다녔지만 사정은 오십보백보였다고 한다. 아무리 연장 근무를 해도 임금은 그대로인 `포괄임금제`(★아래 용어설명)가 관행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소규모 임가공업체에서 레이저 절단이나 CNC선반(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Lathe·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고속으로 같은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작기계) 작업을 맡게 되면 대부분 포괄임금제를 적용받는다"며 "아무리 추가 근무를 해도 월 150만원의 임금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작업은 오버타임이 많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선 시급대로 임금을 주게 되면 손실이 크다"며 "엄청난 열이 발생하는 용접 작업장이나 보일러 스팀 근처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화상도 입게되고 신체감각도 둔해지기 때문에 오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역"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김씨는 포괄임금 관행이 부당하다고 사측에 하소연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인 임금의 40%만 줘도 만족한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배가 불렀다"는 핀잔뿐이었다.
억울한 마음에 지역 노동청에 신고도 해 봤지만 "포괄임금제가 적용되는 사업장인 만큼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돌아오는 공무원들의 답변에 속을 끓여야 했다. 김씨는 "우리가 뭐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현실에 맞는 임금을 달라는 것 뿐입니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 중소 의류업체에서 6년가량 근무하고 퇴사한 이현숙(가명·31세)씨도 `포괄임금제`의 피해자다. 이씨는 화이트칼라 노동자였지만 이들에게도 `포괄임금제`는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근로계약을 맺을 때 사측은 구두로 오전 8시반부터 오후 6시반까지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 퇴근은 항상 저녁 9시로 고정됐다. 회사는 고정적인 회의시간을 퇴근 이후인 저녁 7시로 잡았기 때문이다.
연·월차휴가는커녕 한 해 휴가도 5일이 전부였다. 결혼, 상조, 산전, 산후 휴가도 따로 없었다. 심지어 퇴직금도 매월 지급하는 식으로 계산돼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씨가 이 회사를 퇴직하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신청한 사연이다.
이씨가 결국 퇴사를 하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신청해보니 이 회사는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는 회사였다. 당시엔 이런 제도를 적용받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근무로 바쁜 와중에 이를 문제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는 현실이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또 노동자 처지에서는 고용부에다 진정 신청을 해도 `법대로 해결되지 않는 허점이 수두룩하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임금제도의 부당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근무시간에 대한 기록을 고용부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사용자 협조 없이는 이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씨는 "출퇴근 시간을 노동자가 증명해야 하지만 사용자가 출퇴근 기록을 보여주지 않으면 이를 증명하기부터 쉽지 않다"며 "고용부에서 파견된 근로감독관도 사용자와 대충 합의하란 식으로 강요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감독관이 제시한 합의안에 따라 퇴직금은 받게 됐지만 연장근로, 연차, 생리휴가 등에 대한 수당은 모두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