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성현 "강대국 니즈 파악 못 하는 韓외교, 몸값만 떨어뜨렸다"
by정다슬 기자
2020.10.08 06:00:00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인터뷰
"韓 미덥지못한 동맹에 만만한 국가로 전락…뽕도 못 따고 임도 떠나"
"미·중 전쟁, 위기이자 기회…고차원적 외교 필요한 시점"
|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이 5일 경기도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진행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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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라면(북·미 고위급 회담)은 불었고 이제 국제사회는 불고기(미·중 갈등)에 관심이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라면에 매달리는 꼴”
대한민국 외교현실에 대한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의 한 마디다. 국제사회 질서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는 위중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2019년 2월 결렬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리는데 매달리느라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5일 경기도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만난 이 센터장은 “미·중 패권 다툼은 한국에게 위기이자 기회인데 우리는 너무 많은 약점을 노출해 몸값이 낮아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 센터장은 지난 4년간 문재인 정권이 추진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대해서는 “방향은 맞았다”고 평가했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복잡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겠다는 ‘한반도 운전자론’은 “원론적으로도, 당위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해볼 만한 좋은 아이디어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이 센터장은 주변국들의 니즈(needs·요구)를 파악하지 못하는 한반도 외교의 고질적인 약점이 결국 이를 실패로 이끌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의욕만 앞서고 전략, 전술 등 모든 면에서 실패하며 실기(失期)했다”며 “앞으로 남은 1년 반(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은 동력이 떨어진 만큼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종전선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국제연합(UN) 총회 기조연설에서 유엔과 국제사회가 한반도 종전전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서 북한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북한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방한하기로 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계기로 일본만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미국·호주·일본·인도 이른바 ‘쿼드’ 국가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위해 연 1회 외교장관 회의를 정례 개최하는데 합의했다.
이 센터장은 “종전선언은 미국의 관심사가 아니다. 아울러 북한이 비무장한 민간인을 총살한 상황에서 과연 북한과 만나는 것이 대선을 한 달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까”라며 “국제사회의 현실에 미뤄 미국이 받아들일 용의가 전혀 없는 것을 우리가 밀어붙인 꼴”이라고 말했다.
한국정부가 이같은 어젠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불필요한 실수가 계속 이뤄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미국 비영리재단 ‘아시아 소사이어티’가 주최한 화상세미나에서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쿼드 가입 의사를 묻자 “다른 국가들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어떤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센터장은 “폼페이오 장관이 오기도 전에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며 “미국이 불고기(미·중 갈등)에 관심이 있으면 우리도 그에 맞춰 ‘관심은 있다’며 유인해 다시 한 번 라면(종전선언)을 권유해야 하는데, 메뉴판이 나오기도 전에 손사래를 친 꼴”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시그널 외교’(Signal diplomacy) 실수는 문재인 정부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센터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당시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선 것 역시 중국의 외교 전략을 파악하지 못한 한국외교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꼽았다. 그는 “당시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시진핑 주석 옆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우리나라 대통령이 섰을 때, 보수 진보 막론하고 한국외교의 승리라고 꼽았다”며 “당시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자격으로 최룡해를 보냈는데, 맨 끝에 선 그를 보며 한국이 북한보다 중국에 있어 외교적 우위를 거머쥐었다고 우리식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센터장은 이 사진 한 장이 국제사회, 특히 미국에 준 파장은 매우 컸다고 지적했다. 사회주의 국가를 초청해 중국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천안문 열병식에서 미국의 동맹국들 원수 중 한국 대통령이 박수치는 모습 그 자체가 ‘메시지’였다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 3일 오전(현지시각) 중국 베이징 천안문 망루 위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지켜보며 박수치고 있다. [사진=AFP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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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은 박 대통령 방중을 ‘외교 보험’으로 판단했지만 정작 중국은 2016년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을 당시 박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통화가 이뤄진 시점은 그로부터 한 달 후였다.
이 센터장은 “이게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이라며 “자국에 도움이 안 되고 불필요한 시그널을 줄 수 있는 것을 철저히 차단해야 하는데 한국은 명확한 외교적 마지노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자국의 니즈만 노출하면서 끌려다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답방에 대한 답례 차원으로 당연히 이뤄져야 할 시 주석 방한이 그 자체로 중국 정부가 한국에 주는 ‘선물’이 돼 버린 것 역시 이 센터장이 보는 외교실수 중 하나다.
이 센터장은 “중국이 홍콩인권법을 밀어붙일 때, 일본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시 주석 방일 반대 결의안을 제출했다”며 “‘안되는 것은 안 돼’라고 명확하게 시그널을 보내야 하는데 ‘이도 저도 아닌 외교’로 한국은 미국에는 미덥지 못한 동맹으로, 중국에는 협박하면 알아듣는 쉬운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상황을 “뽕도 못 따고 임도 떠나가고 있다”고 비유했다.
이 센터장은 이제라도 고차원적인 외교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연거푸 강조했다. 현재 현 상황은 미국과 중국만의 전쟁이 아닌 한국 역시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기로에 서 있다는 인식에서다.
그는 “지략, 노하우, 결단력 무엇보다 이를 가진 용장을 기용하는 지도자의 안목이 중요하다”며 “지금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향후 30년 뒤 역사 교과서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그리넬대학 학사 △미국 하버드대학 석사 △중국 칭화대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베이징에서 11년간 거주했다.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국제외교 현안을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다.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팬택펠로, 잘츠부르크 글로벌 펠로를 역임 중이며 2019년 <미·중 전쟁의 승자, 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를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