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만찬의 아쉬운 '총수 빈자리'…삼성, 부재 길어질까 속끓는 8월

by양희동 기자
2017.08.01 06:00:00

경영상 중요 의사 결정 늦어져
낸드플래시 투자계획 지지부진
삼성전자 실적 전망 잇단 하향
주가도 일주일 동안 7% 급락
"권오현 부회장이 역할 하겠지만
다른 계열사까지 챙기긴 역부족"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낸드플래시 시장 대응을 위해 중국 시안 뿐만 아니라 다양한 투자 방안을 상시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바는 없습니다”.

지난 7월 27일, 삼성전자(005930)는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 증설에 대한 답변을 공시했다. 앞서 5월 29일과 6월 28일에 이은 세 번째 조회공시 답변이었지만 내용은 앞선 두 번과 토씨 하나까지 똑같았다. 업계에선 공시 다음날인 28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간담회 자리에서 중국 투자와 관련한 어려움을 언급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권 부회장의 발언은 국내 반도체 산업 인력 수급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청하는데 머물렀다. 재계에선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기간이 6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총수 부재’로 인한 투자 결정 지연과 실적 악화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3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27일 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 실적발표에서 영업이익이 14조원을 넘는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지만, 증권사들은 3분기 컨센서스(전망치)를 줄줄이 하향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다자간 전화 회의)을 통해 ‘갤럭시노트8’ 출시에 따른 마케팅비 증가와 메모리 반도체 물량 확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의 매출 지연 등을 언급하면서 하반기 실적 기대감이 꺾이고 있는 것이다. 키움증권과 미래에셋대우가 3분기 영업이익을 각각 13조 8000억원과 13조 7500억원으로 하향했고, 동부증권도 애초 15조원에서 13조 8000억원으로 대폭 낮췄다. 삼성전자의 주가도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종가 기준 7월 20일 256만원에서 실적 발표 직후인 28일엔 238만 8000원까지 떨어져, 불과 일주일 새 7%나 급락했다.

재계에선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기간이 반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총수 부재에 따른 부작용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권오현 부회장이 삼성을 대표해서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이런 상황이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구본준 LG(003550)그룹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004170)그룹 부회장 등은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따른 배터리 및 유통사업의 어려움을 피력했다. 그러나 권오현 부회장은 “반도체 산업은 인력 수급 문제에 크게 봉착해 있다”는 국내 인력 수급 문제를 거론한 것 외에는 해외 사업이나 투자 관련 발언을 일절 하지 않았다.

삼성은 현재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TV·생활가전 부분 통상 압력과 삼성SDI(006400)의 중국 시안 배터리 공장 문제 등의 해결해야 할 대외 악재가 다른 기업 못지않다. 그러나 권오현 부회장은 DS(반도체·디스플레이)부문 대표이사를 맡고 있어 삼성 전체를 대표해 정부 차원의 대책을 호소하기엔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최고경영자이긴 하지만 모든 부문을 총괄하진 않는다”며 “삼성SDI 등 다른 계열사들은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 독립·자율 경영을 선언했기 때문에 이들의 의견까지 취합해 전달하긴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은 오는 8월 중순께 나올 전망이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사장 등 3명에 대한 피고인 신문은 8월 1일, 결심 공판은 같은 달 7일 진행할 예정이다. TV로 생중계될 가능성이 높은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 날짜는 7일 결심 공판에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에 대한 1심의 결론이 무죄나 집행유예가 아닌 징역형으로 나올 경우 삼성의 총수 부재 상황이 장기화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삼성은 지난해 12월 초로 예정됐던 사장단 인사가 무기한 연기됐고,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인수합병(M&A)도 지난해 11월 이후 중단된 상태다.

실제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이 2013년 7월 구속된 이후 지난해 8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 올해 5월 경영에 본격 복귀하기 전까지 약 4년간 사장단 인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또 투자 규모도 이 회장 구속 전인 2012년 2조 9000억원에서 2015년 1조 7000억원으로 40% 이상 감소했다. CJ는 이 회장이 얼마 전 경영 전면에 다시 나서면서 2020년까지 36조원을 투자해 ‘월드 베스트(World best) CJ’를 달성하겠다는 중·장기 비전을 내놓을 수 있었다.

SK그룹도 최태원 회장이 수감 중이던 2013년 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두 번의 사장단 인사를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결정했다. 하지만 총수가 없다보니 한해 실적을 기준으로 인사가 이뤄진 부분이 한계로 지적된다. 또 일본 도시바 메모리사업부 인수 등 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 결정도 최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이후에 이뤄질 수 있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IT 산업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M&A를 통한 첨단기술 확보와 전략적 투자를 통해 신성장 동력 발굴이 필수적”이라며 “현재 대·내외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올 하반기 이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28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2차 주요 기업인과의 간담회 겸 만찬에 앞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등 참석 기업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