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감염병 급증하는데…방역 최전선 검역인력은 줄어

by김기덕 기자
2016.04.24 12:00:00

작년 메르스·지카바이러스 등 감염병 감시 관련 검역건수 41만건
여수검역소 등 전국 13곳 검역인력 320명..5년새 10명 줄어
검역관 24시간 풀가동…“신종감염병 발생시 무차별 확산”

[여수=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지난 21일 밤 11시경 전라남도 여수시에 위치한 여천화학공업단지 무역항인 여수항 인근 제2검역장소(D1 구역)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보경 국립여수검역소 검역관은 검역 대기중인 선박에 올라타 날카로운 눈매로 배를 살피다 앙칼진 목소리를 내뱉었다. “위생상태 불량으로 선박 전면 소독을 실시합니다. 전 선원 배에서 내려 대기하세요” 10만t의 거대한 컨테이너선을 운행하며 수십년 배를 탔던 선장도 검역관 경력 만 2년차인 김 검역관의 말 한마디에 얼굴이 사색이 됐다.

총 3077만 6859㎡(931만평) 규모의 여천화학단지공단과 광양제철소 등이 위치한 전라남도 여수·광양·하동항에는 연간 9300척의 배가 오간다. 이 곳에서 국립여수검역소는 법정감염병인 콜레라, 비브리오증부터 최근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지카바이러스까지 병원체 바이러스 감시업무를 총괄한다. 김 검역관을 비롯해 총 23명의 최정예 인력은 매일같이 24시간 인력을 풀 가동하며 각종 감염병의 국내외 전파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박기준 국립여수검역소장은 “60만 국방인력이 우리나라의 안보를 지키고 있다면 국립여수검역소를 비롯해 전국 13개 검역소, 총 320명에 불과한 인력이 해상·항공 등 방역 최전선에서 매일 병원균과 싸우며 해외감염병을 차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립검역소, 세관인력 10% 불과

최근 지구온난화 등 급속한 환경변화의 영향으로 감염병이 전 세계에서 유행하면서 국내에도 검역물량이 폭주하고 있다. 하지만 넘쳐나는 검역 물량에 비해 이를 감시하는 인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올 4월 1일 기준 전국 13개 검역소의 인력은 총 320명이다. 항공기와 선박, 열차, 자동차 등 검역대상 운송장비 건수는 지난 2010년 19만 4936건에서 2015년 41만 3724건으로 5년새 두배가 넘게 급증했지만, 같은 기간 감시인력은 오히려 10명이 줄었다. 이 같은 숫자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체 세관 인력 2948명의 약 10분의 1 수준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1201명), 농립축산검역본부(452명)와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인원이 현격히 부족하다.

국립검역소 인력 현황(자료: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지난 20일 방문한 여수지역 해상 검역 현장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숨가쁘게 돌아갔다. 광양시와 여수시 남해군과 인접한 해상지역에서 감염병의 국내 유입을 막는 국립여수검역소는 23명이다. 이 중 검사실, 서무과 인력을 제외한 검역과 인력은 16명이다. 이들은 2인 1조, 3교대로 24시간 풀로 교대를 하며 해상 검역현장을 바쁘게 오갔다.

해상 검역을 위해 국립여수검역소 검역관이 승선하고 있다.
국립여수검역소 검역관과 함께 여수신항관공선 계류장에서 관세정을 타고 10여분 바다 위를 달려 검역 대기중인 케미컬운반선 ‘아젠트선라이즈(Agent Sunrise)호(2만 2000t급)’에 올랐다. 배의 탑승 높이는 아파트 12층 높이, 약 20~30m에 달한다. 관세정에서 검역 대기중에 있는 배에 승선하기 위해서는 긴 사다리를 올라가야 한다. 발 아래로 넘실거리는 시퍼런 바다를 보자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해상 검역관이 선원들의 발열감시를 하고 있다.
아젠트선라이즈호에는 한국인 선원 11명과 미얀마에서 온 12명 등 총 23명의 선원이 대기중이었다. 검역관은 승선 직후 전체 선원들의 발열 감시를 하고, 건강상태 질문서 등을 작성케 했다. 이후 검역관들은 선박 내 부엌, 기계실, 선원실 등의 위생점검을 하고 선박 내 가검물을 면봉을 이용해 채취했다. 선장은 검역관에게 선박 내 환자나 위생상태를 신고하는 보건위생상태 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총 검역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내외로 이뤄졌다.

강옥경 국립여수검역소 광양지소장은 “하루 10여척의 배를 매일 같이 검역하려면 검역관들은 아침 9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 매일 같이 교대로 돌아가며 근무해야 한다. 턱없이 적은 인력에 평일은 물론 주말도 눈코뜰새 없이 지나간다”면서 “국내 방역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는 사명감 없이는 일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연 13만 검체 검사해 양성판정 6%

지난해 전국 13곳의 국립검역소에서 의뢰받은 검사건수는 총 13만 7288건이다. 이 중 8165건은 양성 판정을 받았다. 전체 검사건수 중 양성률은 약 6%다. 검역중인 주요 감염병은 콜레라, 폴리오, 페스트, 에볼라, 활열 등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유행하며 환자 186명, 사망자 38명이 발생한 메르스를 비롯해 최근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한 지카바이러스 감염증도 검역 대상이다.

박 국립여수검역소장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기는 했지만 해상 검역시 어류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장염비브리오증 등이 전체 감염증의 80% 가량을 차지한다”며 “아직 해상선박을 통해 메르스 등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만약 감염병환자가 나타하면 현지 인력으로 커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만약 발생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확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중동 등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지카바이러스 감염병매개체인 흰줄숲모기가 국내에도 서식하고 있어 검역소는 초비상 사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국립여수검역소 검사실 직원이 생물테러를 대비해 의심검체 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국립여수검역소에는 모기 채집 6개 지점, 쥐·바퀴 4개 지점을 거점으로 삼고 병원체 매개체 감시업무를 하고 있다. 지난해 채집한 흰줄숲모기는 12건이었다. 다만 아직 지카바이러스를 보유한 흰줄숲모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모기 채집은 사람의 땀 냄새와 비슷한 유인제를 이용해 주간에는 BG트랩(BG-Trap), 야간에는 유문등 등을 통해 이뤄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국립여수검역소가 지난해 여수, 광양지역에서 모기종별 분포수를 조사한 결과 일본뇌염의 매개체인 작은빨간집모기, 말라리아를 퍼트리는 중국얼룩날개모기, 바닷가에 주로 서식하는 토고숲모기 등은 약 3700마리에 달했다.

명고은 여수국립검역소 검사실장은 “여수지역에서 모기종 감시사업 결과 모기개체는 약 15종 정도이며, 흰줄숲모기는 1% 내외에 불과하다”며 “채집된 흰줄숲모기 중 아직 지카바이러스를 보유한 모기가 없는 만큼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