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때문에" 투자도 생산도 사업도 '흔들'…위기의 재계

by하지나 기자
2024.11.20 05:30:19

[위기의 재계, 트럼프發 내년 사업 재검토]
IRA 폐기·축소 움직임에 사업전략 수정 불가피
현대차 EV↓·HEV↑..대미 협상력 중점 인사 단행
배터리, 재무개선 및 현지 투자 속도조절 나서
반도체도 보조금 규모 따라 투자규모 조율할 듯

[이데일리 하지나 김소연 공지유 기자] “북미 진출을 가속화할지, 멈출 건지 현지 투자 전략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미국 내 각종 보조금 삭감이 유력한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임박하면서 불어닥칠 후폭풍에 국내 산업계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진출이 상당 부분 이뤄진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태양광 업체들의 경우 향후 사업 전략 수립을 두고 고심이 깊어지는 기류다. 일부 기업은 북미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서며 재무 체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고, 미·중 갈등 심화를 고려한 중국 시장 철수 가속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당장 북미 현지에서 전기차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선 현대차그룹의 경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 또는 축소 가능성이 커지자 하이브리드차(HEV) 생산 비중을 높이는 등 사업계획 조정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짓는 등 12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왔다.

HEV 비중 확대 등 포트폴리오 조정을 마친 뒤 장기적으로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의 HEV가 HMGMA에서 생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내연기관 기반의 주행거리 연장 전기차(EREV) 생산도 계획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6년 말부터 HMGMA 또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첫 번째 EREV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고관세 정책에 대비하기 위해선 수출선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멕시코에 대한 관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생산 물량의 약 60%를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기아 멕시코 공장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그룹은 호세 무뇨스 사장을 첫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하고 성 김 고문을 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비해 대미 협상력 강화에 나섰다.

그동안 첨단 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보조금에 힘입어 흑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던 배터리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계획대로라면 2026년부터는 연간 AMPC 혜택이 20조원에 달할 것이란 추정까지 있지만 트럼프 정권이 AMPC 제도를 손볼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향후 사업 전략에 대한 대폭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내년 설비투자를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룹 계열사의 합병을 통해 재무 체력을 확보한 SK온은 탄력적으로 설비투자 속도를 조절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보수적인 투자 기조에서 공격적으로 바뀌었던 삼성SDI는 늘어난 재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거나 짓기로 계획을 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미국 투자에 대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트럼프 2기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응이 필요해졌다.

일각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반도체법(칩스법)에 따라 약속한 보조금을 무조건 폐지하긴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있다. 반도체법 제정 당시 공화당 의원들도 참여했고, 각 주 정부의 반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악의 상황을 아예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고민이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 중순께 글로벌 전략회의를 연 자리에서 ‘트럼프 리스크’ 여파를 집중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경기 부진과 더불어 미·중 무역 갈등 격화 움직임을 고려한 국내 기업들의 탈중국 추세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현대제철의 경우 최근 중국 베이징 법인과 충칭 법인을 모두 매각했다. 포스코 또한 중국 스테인리스강 공장에 대한 매각을 검토 중이다.

현재 철강업계가 중국 대신 새롭게 눈을 돌린 곳은 인도다. 포스코는 인도 1위 철강사 JSW그룹과 손잡고 인도 오디샤에 연 500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현대제철은 올해 3분기 인도 푸네에서 연간 23만t의 생산이 가능한 스틸서비스센터(SSC)를 착공을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미국의 중국 견제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3조2000억원을 투자해 북미 최대 태양광 통합 생산기지 ‘솔라 허브’ 조성에 나선 한화솔루션의 경우 보조금 삭감과 무관하게 당초 계획대로 투자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저가 중국 제품 공세에 대항할 방법은 미국 현지 생산뿐이라는 전략적 판단에서다.

황용식 교수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자국 중심주의이기 때문에 국내 제조업은 향후 관세정책에 따라 사업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 현지 투자 역시 향후 IRA, 반도체법에 대한 향후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면밀히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