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인수, 싸움을 부르는 주문 [물에 관한 알쓸신잡]
by이명철 기자
2021.12.25 11:30:00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아전인수(我田引水)’는 내 논에 물대기라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입니다. 도랑으로 흘러가는 물을 내 논으로 끌어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어떤 일을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하는 경우 쓰입니다.
그런데 한자를 하나씩 풀어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내 논에 물대기라는 의미가 되기 위해서는 논을 의미하는 논 답(畓)이 쓰여야 하지만 밭을 의미하는 밭 전(田)이 사용됐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은 한자에 언어의 기원을 두고 있지만 나라에 따라 일부 한자는 의미가 다르게 쓰이기도 하고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쓰기도 합니다.
논밭을 의미하는 한자도 이런 경우입니다. 중국은 밭 전(田)이 밭을 의미하고 논은 물 수(水)를 붙여 水田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논농사 위주였던 일본에서는 밭 전(田)이 논을 의미하고 밭은 화전을 의미하는 화전 전(畑)이라는 한자를 씁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밭은 중국과 동일하게 밭 전(田)을 쓰지만 논을 의미하는 한자는 중국의 水田이라는 두 한자를 하나로 합쳐 논 답(畓)이라는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논 답(畓)이라는 한자는 중국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습니다. 이렇게 ‘아전인수’에 사용된 한자와 의미를 찾아보면 이 사자성어는 일본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것이 내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논에 물 들어가는 것을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유사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도랑에 흘러가는 물을 자기 논으로 끌어들이는 아전인수는 이웃 간 갈등을 불러오기에 충분했습니다. 논에 물을 대는 시설인 물꼬를 두고 다퉜던 물꼬 싸움이 바로 그 갈등입니다.
윗논 주인과 아랫논 주인, 윗마을 사람들과 아랫마을 사람들을 철천지원수로 만들었던 물꼬 싸움은 농지가 정리되고 관개시설이 잘 갖추어진 요즘에는 많이 줄었습니다.
들녘에서 있던 물꼬 싸움은 시대가 바뀌면서 줄었지만 이제 등장인물과 배경을 달리해 국제 분쟁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가간 물 분쟁입니다. 물꼬 싸움에 비해 복잡한 국제정세가 담겨 있긴 하지만 싸움의 원인을 따져 보면 옛날의 물꼬 싸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간 물 분쟁이 자주 일어나는 곳은 물이 부족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이지만 하나의 하천을 여러 나라가 공유하는 지역에서는 예외 없이 분쟁이 일어납니다.
세계에서 물 분쟁이 가장 심각한 곳은 물 부족에 정치적 대립까지 더해진 요르단강 유역입니다.
죽음을 의미하는 ‘요단강 건너다’의 요르단강을 두고 이스라엘을 비롯한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물 분쟁이 결국 전쟁으로 이어져 일명 ‘6일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3차 중동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쟁은 시리아가 요르단 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려 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시리아가 댐을 건설할 경우 하류에 있는 이스라엘은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으로 댐을 폭파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갈릴리 호수로 흘러드는 물의 발원지인 골란고원을 강제로 점령하고 지금까지 시리아에 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식수원인 갈릴리 호수의 발원지인 골란고원을 적대국인 시리아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이유때문이지요.
| 세계 주요 물 분쟁지역. (이미지=최종수 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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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흘러가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나일강도 긴장감으로 따지면 요르단강에 뒤지지 않습니다.
이집트를 비롯해 나일강을 공유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수단, 케냐 등 사막 국가에게 나일강의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나일강 상류에 있는 아프리카 최대 호수 빅토리아 호수가 최근 수위가 급격히 줄어들고 수질이 나빠지면서 나일강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일강의 또 다른 상류에 있는 에티오피아는 2011년부터 대규모 댐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 댐이 준공되면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7번째로 큰 수력발전소가 될 예정입니다.
댐이 물을 저장하기 시작하면 하류에 있는 수단, 이집트가 겪어야 할 물 부족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에 이집트는 물 부족이 발생할 경우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고 이미 선포한 상황입니다.
어렸을 적 동네에 가뭄이 들면 사람들은 물꼬를 두고 물싸움을 했습니다. 서로 자기 논에 물을 대려는 아전인수를 하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서로가 자기 논에 먼저 물을 대겠다고 아우성인 이 물꼬 싸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바로 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논부터 물을 대는 것입니다.
모든 농부는 자기 논부터 물을 대고 싶지만 순서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것이 약속이고 배려인 셈입니다. 모두가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건 바로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