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 유화메시지·美 직접 비난 자제, 위기관리 나선 김정은

by정다슬 기자
2020.10.12 06:00:00

北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연설 분석
경제난 인정하며 ''애민지도자'' 부각
경제 대신 군사적 성과 과시…신형 ICBM·SLBM 공개
대미 비난 자제…남북관계 복원 위한 유화제스쳐도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내놓은 메시지의 주요 내용은 “고맙다”였다. 김 위원장은 30여분 가까이 이어진 연설에서 12번이나 이같은 표현을 썼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연설에 대해 국제사회 제재와 코로나19, 수해 등 삼중고 속에서 애민(愛民)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해 민심이반을 막기 위한 것으로 평가했다. 대신 부족한 경제성과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등 새로운 전략무기 공개를 통해 만회하려고 했다.

무기체제 공개가 국제사회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 모습도 보인다. 이례적으로 남측에는 “사랑하는 남녘동포”라며 유화적 메시지를 던지고 미국 비난을 자제하면서 대외 갈등을 더 이상 확대하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10일 열병식은 여러모로 파격의 연속이었다. 시계탑의 시침과 분침이 12를 가리킨 순간, 평양 김일성광장 하늘에 불꽃이 터지며 시작을 알렸다. 회색 양복을 입은 김 위원장이 광장을 가득 메운 군 장병들과 인민의 만세 소리와 함께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 뒤를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박정천 군 참모장이 따랐다. 이들은 지난 5일 김 위원장이 주최한 당 정치국 회의에서 군 최고 등급인 ‘원수’ 칭호를 하사받았다. 이후 이들은 열병식 내내 김 위원장의 양옆을 지키며 높아진 위상을 직접 드러냈다.

더욱 큰 파격은 김 위원장의 연설이었다. 코로나19와 수해 등 연이은 악재를 인식한 듯 연설문 상당 부문은 군과 인민의 노고를 치하하는 데 할애됐다. 경제난이 지속되는 상황에 대해 ‘미안하다’, ‘면목이 없다’라는 표현도 있었으며 연설 도중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울먹이기도 했다.

정대진 아주대 교수는 김 위원장의 이같은 모습에 대해 “최고지도자와 인민 사이의 동기화”라며 “현재 진행 중인 80일 전투 가운데 대내 결속을 최대 목적으로 한 연설”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은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기로 한 내년 1월 제8차 당 대회까지 80일 전투를 벌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앞서 제7차 당 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전략수행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 총궐기 대회를 펼쳐 최대한 경제적 성과를 도출해보겠다는 목적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당의 목표를 “인민이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게 하는 것”이라며 “제8차 당 대회는 그 실현을 위한 방략과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설 내내 무거운 심정을 표현하던 김 위원장은 이어진 군사 퍼레이드에서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연설 중에서는 그 어떤 대미 메시지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 어느 발언보다 강력한 한 방이었다.

초대형 방사포와 대구경 조종 방사포,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신형 SLBM ‘북극성-4형’ 등 그동안 준비했던 전술·전략무기가 총망라돼 선보였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이전보다 직경과 길이가 커진 ICBM였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국제사회 제재와 코로나19, 수해 등 대내외적 어려움으로 경제적인 성과가 부진한 상황에서 군사력 부문의 성과를 통해 이를 만회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 대한 전략적 지위를 상향시켜 다음 협상을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다만 동시에 “우리는 그 누구를 겨냥해서 우리의 전쟁억제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전쟁억제력이 결코 남용되거나 절대로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겠지만”이라고 단서를 달아놓으며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남쪽에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공동 노력을 강조한 것 역시 서해 상에서 실종된 남쪽 공무원이 북한군에 피살된 이후, 남측의 여론이 악화된 것을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여전히 군 통신선 복구와 재가동, 공동조사 등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우리 측의 요청에는 응답이 없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명백한 한계도 보인다.

이날 통일부는 “김 위원장의 연설 내용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발전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면서 “남북 간 대화 복원이 이뤄지고 환경이 조성되는 대로 코로나19를 포함해 인도·보건의료 분야에서 상호협력이 재개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