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배달부부'까지 탄생…"왜 신호위반하는 줄 알아요?"

by전재욱 기자
2020.09.22 05:30:00

[라이더 24時]② 음식 배달의 세계
여성과 10대, 서울과 지방, 정규직과 도급계약
갖가지 환경에서 저마다 다른 이유로 배달 일하지만
공통된 고충은 한 가지…‘빨리 오라’는 재촉
“늦게 가려는 배달원은 없다…손가락질 전에 생각해 달라”

[서울, 충남 아산=이데일리 전재욱 이성웅 기자] 아이엄마 장우인(28) 씨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경단녀’에서 벗어났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육아에 전념한 지 올해로 6년째다. 배달 대행업체 바로고 서울북부지사에서 배달 오토바이를 탄 건 지난달부터다. 남편 박진우(30) 씨가 운영하는 사업체다.



“독박 육아하다가 밖에 나와 사람 만나니 좋아요. 남편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돼 불편하긴 하지만요.”

지난 17일 기자가 만난 장 씨는 곁에 남편 박 씨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주문이 쏟아져 도우려고 시작했다. 업체 평일 주문량 평균은 연초 2000건에서 최근 4000건으로 두 배 늘었다. 배달 기사를 충원해도 한계가 있었다. 이른바 ‘똥콜’(낮은 배달료, 진상 고객·상점 상대 등)이 문제였다. 업체는 주문을 가려 받을 수 없는데, 배달원은 이런 배달을 피했다. ‘똥콜’이라도 처리해 남편 부담을 덜어주려고 장 씨는 일을 결심했다.

“아내가 하는 배달은 남들이 안 하려는 거예요. 왜 그러겠어요. 힘들고 어려우니까 피하는 거죠. 그걸 아내가 해주는 거니까 더 미안하죠.”(박 씨)

장 씨는 오후 3시 출근해서 마감하는 이튿날 새벽 3시까지 12시간 일한다. 허투루 일하지 않는다. 바쁠 땐 시간당 4건은 뛴다. 베테랑 기사 소화량이 8건 정도이니 크게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다. 남편이랑 일하지만, 같이 있지 못한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얼굴 보고 밥 못 먹는 건 예전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부부는 전보다 애틋하다. 장 씨는 “작년에 고기 집 할 땐 만날 싸우다 결국 접었는데 이번엔 다르다”며 “험한 일 하니까 서로 걱정하는 마음이 커서 그런 듯하다”고 했다.

위험은 곳곳에 도사린다. 인터뷰 전날도 사고를 당했다. 신호등에 선 그를 뒤차가 들이받았다. 조금 다쳤지만, 전보다 운전이 무섭다. 차보다 무서운 건 여성이라는 신분이다. 속옷 차림으로 문을 열어주는 남성 고객은 예사로 만난다. 장 씨는 “이런 고객 신경 쓰면 일 못 한다”며 “나를 반기는 여성 고객을 만나면 보람되다”고 말했다.

제일 무서운 건 재촉 전화다. 장 씨는 말한다. “남편은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빨리 오라’는 고객과 ‘빨리 가라’는 상점 사이에서 죄인이 돼요. 일을 시작한 건 이런 남편 모습을 본 게 컸어요. 배달원이 신호 위반한다고 손가락질하잖아요. 왜 그러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봐주면 좋겠어요.”

한일 월드컵 이듬해 태어난 이원일(17·가명) 군이 배달 일을 그만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일한 충남 아산 테크노밸리에 있는 배달대행업체 아산테크노퀵은 근무 환경이 좋은 편이다. 도로가 잘 닦였고, 인구 밀도가 높아 배달 반경이 좁다. 업체는 배달원에게 주문을 고루 배분한다. 경쟁이 심한 서울에 없는 광경이다. 원일 군 수익은 월 500만원 전후. 삼사십 대 형들보다 많이 버는데, 더는 못하겠단다.



“마음이 너무 지치네요.” 원일 군은 16일 업체에서 기자를 만나 “배달은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하는 일”이라고 했다. 앳된 얼굴에서 나온 어른스러운 말이다. 누가 원일 군을 원일 씨로 만들었을까.

일하면서 피자가 싫어졌다는 말부터 꺼냈다. 배달 중에 음식이 망가지면 고객은 가게에, 가게는 업체에 각각 항의하고, 책임은 배달원이 진다. 피자는 토핑 한 치즈가 흘러서 모양이 구겨지기 쉬워서, 배달원이 책임질 일이 많다.

물론 무조건 배달원 잘못이다. 그러나 왜 잘못했는지 안 묻는다. 연 초 대비 이달 이 업체 주문량은 두 배 늘었다. 고객이 마음을 안 다치려면, 배달 기사가 다치기 쉬운 구조다. 배달기사 박민선(37) 씨는 “이제 분식집 라면까지 주문이 들어오는데, 면이 붇기 전에 가려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카페 주문이 늘었는데 녹거나(아이스) 식기(핫) 전에 가려면 교통법규를 못 지킬 때가 잦다. 지난주 족발 배달이 늦어 음식값 5만원을 물어준 박 씨가 받은 배달료는 2700원이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 박준상 아산테크노퀵 대표는 “시간이 돈인 배달원이 느리게 갈 리가 있겠는가”라며 “추위와 비바람보다 힘든 것은 재촉 전화”라고 말했다.

공유주방 스타트업 위쿡의 위쿡딜리버리 서비스를 책임지는 고민제(26) 매니저는 인터뷰에서 “우리 배달은 빠르지 않다”고 말한다. 책임 배송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는 “공유주방 입점 식당은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따뜻하고 온전한 상태로 가는 걸 강조한다”며 “오토바이를 험하게 몰아 음식이 망가지면 재 주문율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달원 안전이 우선이다. 많은 배달을 하려다 사고가 나면 손해가 커지기 때문이다. 위쿡은 기상 상황이 나쁘면 영업을 중단한다.

배달원 모두를 정직원으로 고용해서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위쿡 소속 배달원 20명은 모두 정직원이다. 통상 배달대행업체는 배달원과 도급 계약을 맺는데, 이마저도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위쿡은 고용이 안정되니 일하기에 마음이 놓인다. 고 매니저는 “정직원이기 때문에 배달 누락이 생겨도 어떻게든 배송을 수행하지만, 대행에선 그런 것까지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배달업무 중인 고민제 위쿡 영업관리팀 매니저.(사진=위쿡)
배달원이 잘못되면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간다. 고객은 기분이 상하고, 가게는 고객을 잃고, 업체는 가맹 계약이 끊기고, 배달원은 심신이 다친다. 물론 음식이 망가지거나, 배달이 늦으면 짜증 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배고프면 짜증은 배가 된다. 사람 마음이 이렇다는데, 제도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늦게 가려는 배달원은 없다’는 업계의 말은 사태의 본질을 설명한다.

앞서 장 씨는 말했다. “산재 보험을 들면 뭐해요, 급해서 신호 위반하다 사고 나면 치료 못 받아요. 배달 환경이 나아지면 여성 라이더가 더 늘어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