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돌연 타협 제의…1년 전 'ICC 판결' 재조명

by이승현 기자
2020.06.29 06:05:00

관련 결정문 ISD에 증거로 제출
''론스타가 압박 나선 것'' 분석도
정부는 "근거법 달라 별개로 봐야"
최종 판정까지 1~2년 더 걸릴 듯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우리 정부에 돌연 타협의사를 밝히면서 8년간 끌어온 총 5조원대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에 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비슷한 성격의 론스타와 하나금융그룹과의 국제 재판에서 ‘한국 금융당국의 개입이 있었다’고 인정된 점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론스타 측은 국내 언론을 통해 우리 정부에 ISD 취하의 대가로 합의금을 달라는 요구를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인 합의 요구액은 밝히지 않았는데 일부 언론에선 7억9000만달러(약 9500억원)으로 파악된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아직 공식적 제의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ISD는 특정 국가에 투자한 기업이 국가 정책 등으로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그 국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할 수 있는 중재 절차다. 론스타는 지난 2012년 11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우리 정부를 상대로 46억7950만달러(약 5조6000억원)를 청구했다. 우리 정부가 제소당한 ISD 가운데 최대 규모다.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 주식 51%를 1조3800억원에 인수하고서 8년 후인 2011년 12월 3조9157억원에 하나금융에 매각키로 최종 합의했다. 금융위원회는 다음 달인 2012년 1월 이 계약을 승인했다. 론스타는 이에 대해 당시 한국 금융당국이 외환은행 지분 매각과정에서 심사를 지연했고 국세청의 차별적 과세로 부당하게 세금을 내게 돼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2013년 5월 ICSID에 중재판정부가 구성돼 우리 정부와 론스타는 공방을 시작했다. 준비서면을 통한 서면 심리절차를 거쳐 2016년 6월 구두변론까지 모두 마쳤지만 아직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지난 3월 재판장 역할을 맡은 조니 비더 당시 의장중재인이 건강상 이유로 사임해 절차가 잠정 중단됐다가 이달 23일 캐나다 대법관 출신인 윌리엄 비니 변호사가 새 의장중재인으로 선임됐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론스타 측은 소송 대신 타협으로 돌아선 이유를 함구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ISD가 예상보다 길어지자 부담을 느끼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새로 선임된 의장중재인이 다시 사건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최종 판정까지 1~2년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03년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조성된 론스타 ‘펀드IV’는 아직 청산하지 못했다.

정부는 론스타의 타협 제안에 대해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법률대리인(로펌)같은 공식 채널이 아닌 언론을 통해 우리 정부의 반응을 떠보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감돈다. 정부 관계자는 “론스타의 합의 발언이 진정한 의사인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공식절차에 의한 제의가 들어온다면 유관부처가 참여하는 법무부 산하 ‘국제투자분쟁대응단(단장 법무부 법무실장)’에서 대응할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론스타가 지난 2016년 8월 하나금융을 상대로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ICA)에 제기했다가 패소한 소송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론스타는 당시 “하나금융 측이 한국 금융당국 승인을 이유로 론스타에 매매가격을 낮추라고 협박을 했다”며 14억430만달러(약 1조6000억원)를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했다. ICC는 그러나 지난해 5월 론스타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하나금융 손을 들어줬다. 당시 구체적인 판단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최근 언론에 공개된 이 사건 중재결정문 내용을 보면, ICC 중재판정부는 한국 금융당국이 외환은행 매각가격을 낮추도록 개입했다는 취지로 판단을 내렸다. 한국 금융당국의 매각가격 개입을 하나금융 측이 전달한 것이기 때문에 ‘협박을 했다’는 론스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이 중재결정문을 ISD 중재판정부에 증거로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ICC 중재와 ISD는 원고(론스타)나 청구 취지 등이 비슷하다는 평가다. 론스타가 ICC 중재에서 한국 금융당국의 개입이 인정된 점을 들어 우리 정부에 타협 압박을 제기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ICC 중재와 ISD는 주체 기관과 당사자, 근거법, 이슈 등이 모두 다르다. ICC 중재판정부 판단이 ISD에도 그래로 적용될 지는 불투명하다. 또 ICC 중재에선 우리 정부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변론에 나서지도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론스타와 하나금융의 ICC 중재는 이번 ISD와는 별개의 재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