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F 2020]최재천 "본능인 번식 포기하는 인간…혁신적인 해법 찾아야"
by함정선 기자
2020.06.01 06:00:00
부부 3일씩 번갈아 일과 육아 병행하는 해법 제시
동물은 환경 나빠지면 새끼 낳지 않아
저출산은 아이 키우는 환경 어렵다는 증거
아이 키우는 부부 월급 가장 높아야…발상의 전환 필요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남편이 3일, 아내가 3일 일을 하는 겁니다. 배우자가 일할 때 나머지 배우자는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거죠. 일주일 중 남은 하루는 가족들이 모두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말이죠.”
‘제11회 이데일리 전략포럼’에 기조연설자로 나서는 최재천 교수는 이 같은 방법을 저출산·고령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 중 하나로 제시했다. 사실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수많은 정책이 마련되고 보고서와 논문이 나오고 있지만 최 교수의 해법은 그 어느 곳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최 교수가 생태학자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저출산과 고령화 등 인구 문제를 들여다보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최 교수가 제시한 해법은 새들의 삶을 관찰하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최 교수는 “새들은 육아와 일을 정말 반반씩 나눠 한다”며 “알을 암컷과 수컷이 함께 부화시키고 한쪽이 알을 품거나 새끼를 돌보는 동안 나머지 한쪽은 벌레를 물어온다”고 설명했다.
|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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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의 해법에 대해 인구 문제를 맡은 정부와 기관 또는 기업이 보면 ‘비현실적인 이야기’ 또는 ‘쉽지 않은 방법’이라고 고개를 흔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부부들은 대부분 반색한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당장에라도 애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한편에서는 ‘생태학자가 인구 문제에 대해 무엇을 알겠느냐’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최 교수가 “한국은 급작스럽게 저출산·고령화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육아 환경을 변화시키고 노령 인구를 노동시장으로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의 저서를 쓴 것은 무려 15년 전이었다.
저서의 제목은 ‘인생을 이모작하라’로, 우리보다 빨리 저출산·고령화를 맞은 선진국이 해법을 내놓기 전에 아직 여유가 있는 우리가 먼저 해법을 찾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최 교수는 이 때문에 지난 15년에 대해 “안타깝고 섭섭하다”고 아쉬워했다. 15년 전 생태학자 입장에서 동물인 인간을 들여다보고 인구 감소에 대해 이야기했음에도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최근) 15년 전 책의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며 “헌데 그때 쓴 내용을 수치만 바꿔 그대로 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비판했다. 그만큼 우리가 인구 구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히려 상황만 악화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최 교수는 우리 사회가 혁명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변화를 이뤄내지 않으면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번식은 기본인데 동물들은 주변 환경, 상황이 나빠지면 새끼를 낳지 않거나 덜 낳는다”며 “이를테면 먹을 게 부족하면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본능적으로 번식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인간 역시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봤다. 최 교수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사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낳지 않는 것”이라며 “하물며 식물도 한 해는 열매를 맺지 않는 ‘해걸이’이라는 것을 하는데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적응이 저출산”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가 아이를 낳아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증거가 저출산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또한 최 교수는 출산장려금 등 기존 정책의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는 “원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게 어려운 일인데, 사람들이 스스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현재 정부가 내놓는 ‘사탕’으로는 안 된다는 소리”라며 “주변을 둘러봤을 때 아이 낳아서 어려움 없이 잘 기르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아이를 낳아서 걱정 없이 행복하게 기르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최 교수도 잘 알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와 교육적인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최 교수는 우선 시급한 과제로 남성들의 변화와 함께 유연 정년제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최 교수는 “이전과 다르게 현재의 젊은 남성들은 육아를 돕는 사람이 아닌, 육아의 주체가 될 준비가 돼 있다”며 “남성들이 육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정부가 과감하게 (지원책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일부 기업들에서만 가능한 남성육아휴직 등을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최 교수는 아이를 키우는데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일회성 지원금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최 교수는 “부부가 가장 돈이 많이 필요한 순간은 아이를 키울 때와 은퇴 후”라며 “언제까지 일할 것인지, 돈을 언제 얼마큼 받을 것인지 등을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가 한창 자랄 때는 월급도 적고 쓸 돈이 많아 허리띠를 졸라매 힘들게 살다가 월급이 올라 살만해졌을 때는 이미 아이는 장성해 집을 떠나는데, 이같은 인생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최 교수의 주장이다.
최 교수는 “아이를 기르는 부부의 월급이 가장 많아야 한다”며 “이후 노년에는 스스로 월급을 적게 받고 더 길게 일할 수 있도록 선택의 기회를 주는 유연 정년제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