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에서] 文대통령 4대 치적…휴가·수능연기·공론화·마음의 빚

by김성곤 기자
2017.12.30 10:00:00

文대통령 취임 첫해 성적표는 정치적 성향 따라 극과 극
“이게 나라다” 호평에서부터 이미지쇼로만 일관 비판론까지
총 14일 휴가 중 8일 사용…소수자 배려 위해 수능연기 결단
공론화, 갈등과제 해결 새 모델…베트남전 참전 우회적 사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월 24일 오전 지진으로 인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경북 포항시 북구의 포항여고를 방문,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과 대화를 마치고 손으로 하트를 보이며 기념촬영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첫해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성적표는 엇갈릴 것입니다. “이게 나라냐”는 촛불의 질문에 “이게 나라다”고 몸소 보여줬다는 호평에서부서 이미지쇼로만 일관한 무능한 좌파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가장 객관적인 지표는 70% 안팎을 기록하고 있는 국정수행 지지율입니다. 일단 합격점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했을까요? 일단 파격적인 소통행보가 떠오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을 강화했다거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사드갈등을 사실상 해소했다는 점을 꼽을 수도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과 평화적 해결 원칙을 천명한 베를린구상도 빠질 수 없겠지요. 그도 아니면 적폐청산에 가장 많은 점수를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정치적 논란이 극심합니다.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문 대통령의 치적은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휴가사용 △수능연기 △공론화 모델 도입 △‘마음의 빚’ 발언 정도를 4대 치적으로 꼽고 싶습니다. 정치·경제·외교안보 등 거대 담론과 비교할 때 너무 사소하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담겨진 함의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최대 치적은 누가 뭐래도 ‘대통령의 휴가 사용’입니다.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아야 할 사안입니다. 포항 지진피해 이후 수능시험을 일주일 연기한 것도 평가해야 합니다. 대형 갈등과제 해결의 이정표를 마련한 공론화위원회도 주목할 만합니다. 마지막으로 베트남 방문 당시 ‘마음의 빚’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 또한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다운 대목입니다.

청와대 업무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지는 격무의 연속입니다. 대통령도 사람인 이상 휴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법에도 보장된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휴가는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해외 주요 선진국 정상처럼 2주간 여름휴가를 보내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주말을 포함해 여름휴가 4∼5일 다녀오는 게 전부입니다. 대통령의 휴가 사용에 따라붙는 정치적 비난에서부터 상대적 박탈감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휴가 사용을 꺼린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였습니다. 대통령의 경우 공식일정을 잡지 않으면 ‘정국구상’이라는 이름 아래 휴가와 유사한 하루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정치적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식적인 휴가 사용이라는 파격을 선택했습니다. 올해 총 14일의 휴가 중 8일을 사용했습니다. “연차휴가를 다 사용할 계획”이라던 애초 다짐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나름 의지를 보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강행군을 이어가던 문 대통령은 5월 22일 첫 휴가를 사용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도 휴가를 쓴다는 것에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름휴가(7월 31일∼8월 4일)도 5일을 사용했습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 탓에 야당에서 대통령의 휴가사용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11월 27일과 12월 29일에도 각각 하루씩 휴가를 썼습니다. 청와대 참모들에게는 연차휴가의 70% 이상 사용을 지시한 것은 물론 휴가 중 출근하는 직원들에게는 “꼼수를 써선 안된다”며 경고까지 날렸습니다. 국민휴식권 보장과 내수활성화를 위해 솔선수범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대통령의 휴가사용이 가져올 나비효과는 엄청납니다. 수많은 직장인들은 법으로 보장된 연차휴가마저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윗사람 눈치를 봐야 하는데다 휴가는 애초부터 다 쓸 수 없는 것이라는 악습 탓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휴가사용 솔선수범은 “쉬어야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증명하게 할 것입니다.

“다수결의 원리를 존중하고 소수 의견을 보장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다수결의 원리만이 보장됐을 뿐 소수의견 보호에는 인색했습니다. 한국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성장과 효율, 경쟁력이라는 지배적 담론의 실현을 위해 소수는 일방적 희생을 당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해방 이후 최대 국가적 이벤트였던 88 서울올림픽 당시 도시빈민이 대표적입니다. 올림픽의 성공 개최라는 대의 속에 달동네 도시빈민에 대한 대책 없는 강제철거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슬픈 역사로 남아있습니다. 이밖에도 한국 사회는 근대화 시절 산업화와 개발지상주의를 위해 지방, 농어촌, 환경, 노동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소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도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적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입니다. 그런 점에서 수능시험 연기 결정은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포항 지진피해에도 설마 수능시험이 연기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포항지역을 제외한 전국의 수많은 수험생들을 위해 수능시험의 정상 진행이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의 선택은 수능 연기였습니다. 한국사회의 압도적 다수가 소수를 배려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앞으로 다수를 위해 소수가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양보해야 하다는 그동안의 관행을 불식시키는 선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월 24일 지진피해를 입은 포항여고를 방문해 수능연기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아세안순방 갔다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지진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장 큰 걱정이 수능이었죠. 수능 연기는 너무나 중대한 일입니다. 대학별 입시나 학사일정 등 나라 전체가 수능 일정에 맞춰서 많은 것들이 된 상태인데 수능시험을 변경하면 그 자체로 굉장히 큰 혼란들이 생겨나거든요. 전체 수험생이 59만명이 되는데 포항 지역에 5600명이니까 1%가 채 안되죠. 처음에는 정부에서도 수능을 연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여진이라도 일어난다면 포항 학생들은 불안해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거나 잘못하면 불공정한 결과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죠. 전체 학생이 다 중요하지만 포항 지역의 1% 안 되는 포항 학생들의 안전과 공정함 이런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연기 결정을 내렸다. 정말 고마웠던 것은 나머지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불평할 만한데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학부모들이, 수험생들이 수능 연기 결정을 지지해줬다. 늘 소수자들을 함께 배려해 나가는 것이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미래의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갈등과제에 대처하는 방식이 매우 극단적입니다. 찬반 양측이 사생결단식으로 대립하면서 상생의 해법은 쉽지 않습니다. 힘의 논리를 앞세워 상대방의 굴복을 강요합니다. 어떤 결정이든 깊은 후유증과 감정의 생채기를 남깁니다. 새만금개발사업, 신행정수도 이전, 4대강 사업 등이 대표적입니다. 찬반 양론이 팽팽한 만큼 서로를 향한 이해와 설득의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화장장, 쓰레기매립장, 장애인학교 등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지만 집값하락이나 재산권 침해를 명분으로 무조건적인 반대여론이 불거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중단 문제와 탈원전 정책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곤혹스러운 난제였습니다. 참여정부 첫해 청와대 참모로 일했을 당시 부안 방폐장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아마 생각났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선택한 묘안은 공론화위원회였습니다. 공론화위는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재개를 권고하고 원전 축소라는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야당은 3개월간 공사 중단에 따른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공론화위를 통한 합의안 도출은 단순히 승패의 시각으로 볼 게 아니라 우리사회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일대 사건입니다. 더구나 향후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한 사안의 경우 숙의 민주주의라는 공론화 모델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월 중순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3개국 순방에 나섰습니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베트남 방문 일정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EP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것이었지만 베트남과 특수한 역사적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식민지, 분단, 전쟁을 겪은 양국 현대사의 공통점과는 별개로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총부리를 겨눈 적이 있습니다. 물론 한국과 베트남은 과거 적국이었지만 지난 1992년 수교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경제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가 됐습니다. 특히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 여성이 늘면서 이제는 사돈의 나라로 불릴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베트남전 참전 당시 일부 한국군에 의한 비인도적 행위들은 한국현대사의 아픈 손가락입니다.

문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 기간 중 호찌민에서 열린 ‘호치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7’ 개막식에 동영상 축사를 보냈습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의 글에서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며 “이제 베트남과 한국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마음의 빚’이라는 표현입니다. 보수진영의 반발이나 이념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지만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우회적으로 사과를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외교의 품격을 높인 발언입니다. 식민지 시절 과거사 문제에 대해 끝없는 부정으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는 매우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난 2004년 베트남 방문 당시 ‘마음의 빚’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