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부탁해]①보육대란 현장을 가보니…

by김상윤 기자
2012.08.16 08:48:39

[르포] 어린이집 두 표정
시설 열악한 사립, 빈자리 없는 국립

[이데일리 김도년 김상윤 기자] 지난 3월 시행된 0~2세 무상보육 정책이 4개월 만에 예산부족으로 삐거덕거리고 있다. 무상보육은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부모들의 수요를 대폭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국공립과 사립어린이집 간의 양극화는 물론 대선주자들의 무분별한 보육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데일리는 이러한 무상보육 문제를 총 2부에 걸쳐 점검해본다.

지난 14일 찾은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한 어린이집. 보육대란의 현장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한 민간 어린이집을 찾았다.

점심시간 때라 아이들은 한창 식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숟가락을 제대로 써서 밥을 먹는 아이도 있었지만, 자꾸 음식이 흘러 옷이 흠뻑 젖은 아이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식사를 도와야 할 선생님은 인터넷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자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랐는지, 갑자기 아이한테 다가가서 밥을 먹이는 시늉을 했다. 그는 “보통 3세 이상이면 스스로 밥을 먹긴 하지만, 가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는 직접 안고 먹인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자주 찾는 화장실은 기대 이하의 열악한 시설에 또 한번 놀랐다. 3.3㎡(1평) 남짓의 좁은 공간. 무엇보다 일반 화장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아이가 발판에 올라서서 손을 씻는 모습이 위태위태하다. 세면기가 높아서 부득이하게 발판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발판에는 물기가 그대로 남아 쉽게 미끄러질수 있었다. 바닥에는 보호매트조차 따로 없었다. 변기는 일반용과 같아 자칫 아이가 변기에 빠질 수도 있는 위험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어린이집을 나와 주변을 살폈지만, 아이들이 야외활동을 할 만한 곳은 따로 없었다. 한 선생님은 “밖에 나가면 아이들 통제하기가 힘들어 한달에 1~2번 정도 나가는 편”이라면서 “그것도 상당히 멀어서 아이들 관리가 힘들다”고 푸념했다.

홍제동의 S아파트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99.17㎡(30평)의 1층 공간을 고쳐서 만든 곳. 그나마 부엌과 거실을 차단하는 막은 있었지만, 화장실은 일반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파트 내라 소음 문제는 꽤 민감했다. 원장은 “1층이라 뛰어다니는 문제는 없지만, 얘들이 가끔 소리를 지르면 바로 항의전화가 온다”고 했다. “답답한 아이들을 밖으로 보내려고 해도 주변에 차량이 많고, 먼지가 많아 감기라도 옮길까 봐 자제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한 민간 어린이집 외부 모습(좌). 주변도로는 좁고 차량이 많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 반면, 국공립 어린이집은 상대적으로 넓고 쾌적하다. 구립 은화어린이집의 내부 모습(우)




그렇다면 국공립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어떨까. 홍은동에 있는 구립 은화어린이집.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언덕에 있긴 했지만, 첫눈에 들어온 모습은 민간어린이집과 확연히 달랐다. 드넓은 공간에 미끄럼틀 등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놀이시설이 눈에 띠었다. 바로 옆에는 더운 열기를 식혀줄 휴대용 욕조도 서너개 마련돼 있었다.

화장실 세면기도 아이들 키에 맞춰 상당히 낮았고, 바닥에는 안전보호 매트가 깔려있어 아이들이 미끄러져도 크게 다칠 위험은 적어 보였다. 프로그램도 아침 7시30분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시간별로 세밀하게 짜여 있어, 아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텃밭 가구기, 숲속나들이 등 야외활동도 자주 있어 부모님들이 만족하고 있다고 정오순 원장은 설명했다. 시간 연장반 운영도 있었다. 맞벌이 부모가 가끔 야근 등으로 늦을 때를 대비한 프로그램이다. 시간당 2700원만 내면 9시반까지 아이들을 돌봐준다고 한다.

▲서울특별시 보육포털서비스 입소대기 신청 화면. 공공시설인 서대문구 은화어린이집 신청자는 600명을 넘을 정도로 포화상태다.


시설이 좋은 만큼 국공립 어린이집 수요는 넘쳐났다. 현재 이곳의 대기인원수는 500여명이다. 정부가 올해 3월 만 0~2세 영유아를 대상으로 무상보육을 지원하면서 너도나도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맡겼다. 부모들은 아이 건강과 생활에 민감한 만큼 상대적으로 시설이 나은 국공립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른다. 친구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거나 특별한 일이 없다면, 2~3년은 기다려야 할 뿐이다. 더구나 우선순위가 있어서 다문화가정, 맞벌이부부, 한부모가정이 아니라면 이곳을 이용할 확률은 현저히 낮다.

동행했던 예비엄마 김상원(32) 씨는 “한달 뒤면 곧 아이가 태어나지만 일을 계속 해야해야 한다”면서 “민간보육시설보다는 국공립 시설이 확연하게 나아보이지만, 대기자 수가 많아 실제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맞벌이 주부인 김제옥(36) 씨도 “국공립은 자리가 없고, 일반 민간 어린이집은 열악한 환경으로 좀 더 나은 시설의 어린이 집을 보내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며 “차라리 아동수당 등으로 부모들에게 직접 보육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며칠간 어린이집을 둘러보면서 열악한 민간 보육원에 턱없이 부족한 공공시설은 대한민국 보육정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