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월드뱅크에 돈 벌어준 사나이
by하수정 기자
2011.12.02 08:37:11
추흥식 한국은행 신임 외자운용원장 인터뷰
신입행원부터 외환보유액 운용 고민해온 25년 외골수
"기본 철학 달라지지 않는다..환경변화에 적응할 뿐"
[이데일리 하수정 문정현 기자] 또 파격인사다. 한국은행이라는 조직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파격`이라는 단어가 최근 심심찮게 등장한다. 31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책임지는 추흥식 한국은행 신임 외자운용원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82년 입행한 그는 전임 원장 입행시기와 비교하면 4년을 앞당겨 부총재보급에 발탁됐다.
파격인사 이후 종종 따라오는 잡음은 잘 들리지 않는다. 그가 적임자라는 방증일까. 입행 30년 중 외환보유액 운용에만 25년간 몸을 던졌다. 추 원장 스스로 `편식한 커리어`라 했다.
후배들이 그에게 고마워해야할 이유도 있다. 세계은행(WB)에 한국은행 파견자리를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자리만 만들었다 뿐인가. 한국은행에 대한 꽤 높은 신뢰를 구축했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은행에서 외화자산 운용 컨설턴트를 역임했다. 필리핀과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의 중앙은행 자산을 일부 맡아 운용하며 컨설턴트이자 세일즈맨이 돼 봤다고 했다. 추 원장은 "저에게는 금전적 이익이 없습니다. 당시 세계은행 소속이었기에 컨설팅 수수료는 그쪽에 귀속됐지요"하면서 허허 웃었다.
추 원장은 한은 사람치고는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96년 외화자금실 4급 조사역이었던 그는 벤치마크 개념을 들여오자고 외쳐댔다. 당시 집행간부들도 생소해하던 단어였다. 미국 국채 2년 이하 단기자산 중심이었던 외환보유액 운용의 듀레이션을 확 늘리자고 주장한 것도 그다.
결국 한은은 외환위기 직전 JP모간 거번먼트본드를 외환보유액 운용에 대한 벤치마크로 도입했고 이를 맞추기 위해 장기채 투자를 대폭 늘렸다. 추 원장은 "그때부터 외환보유액 투자전략이 변화했고 그 덕분에 2000년대 국제 금융시장 여건이 좋을 때 상대적으로 운용수익을 많이 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시장에서 그의 취임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운용 전략에 대한 변화 기대감. 추 원장은 "기본 철학이 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가 경제의 `라스트 리조트(최후의 보루)`인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기본 철학은 유동성과 안정성을 충분히 지키면서 기회비용을 고려한 적정 수익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다만 "운용 환경의 끊임없는 변화에 적응해 발전해야한다"고 말했다.
미국, 독일 국채가 안전자산이라고 호언장담할 수 없는 시기에 안정성과 유동성이라는 기본원칙에도 혼란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추 원장은 "지금까지 안정성과 유동성은 대체적으로는 같이 움직였지만 앞으로는 다르게 갈 수도 있다"면서 "과거 안정성과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달러화에 대한 시각 역시 변화하고 있음에 동의했다. 그는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과도하게 누리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라면서 "20년, 30년 후 중국 위안화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찾아가고 신흥국 통화들도 빈 자리를 차지해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캐나다, 호주, 스위스, 노르웨이를 언급하며 메이저보다는 한 단계 낮은 국가의 통화 쪽으로 다변화되는 것은 지속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단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통화 다변화가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강만수 산업은행장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등 이 외환보유고 활용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라스트 리조트`로서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추 원장은 "우리가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가졌다는 것는 단순한 계산으로는 따질 수 없는 이익"이라며 "갑작스러운 외부 충격이 왔을때 흡수하지 못해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비용을 생각하면 외환보유액을 조금 충분한 수준 이상으로 가져가는 게 결과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기에 대해서는 극도의 비관을 경계하는 입장이다. 추 원장은 "미국은 일부 개선되는 듯한 지표의 움직임이 있다"면서 "유럽은 더 이상 나빠지기 힘들만큼 비관적인 상황인데, 최악의 상황보다는 유로화 시스템이 유지되는 쪽으로 가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그는 외환 보유고 운용만을 생각해온 외곬 인생이 지겹지도 안느냐는 질문에 이 같이 답한다고 했다. "내가 처음 운용에 발을 담갔던 1982년 외환보유액은 10억달러였다. 지금은 3100억달러다. 국제금융은 계속 변화했고 운용환경은 바뀌어왔다. 신입행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더 나은 운용을 생각하고 꿈 꿔왔다." 추 원장은 `진화`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국가 경제 최후의 보루라는 외환보유액. 그의 지휘하에서 운용의 진화를 꿈꾸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