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폭탄 차라리 車버려?

by조선일보 기자
2007.02.08 08:45:59

툭하면 올리더니 올 들어 최대 35%까지 인상
“경영 잘못해놓고 고객에 떠넘겨”…800만 운전자 분통

[조선일보 제공]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성천(44·회사원)씨는 자동차보험 만기일(18일)이 다가오자 재계약을 하려고 보험료를 알아봤다. 그런데 보험료가 지난해 43만원에서 올해 57만9000원으로 무려 35% 가까이 오른 것이 아닌가?

김씨는 “운행 연수가 늘어 자동차 값이 떨어졌으니 보험료도 당연히 내려야 하는데 오히려 35%나 올리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졌다. 보험사 직원이 “사고가 늘어나 손해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지만 납득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800만명 자동차 운전자들이 ‘보험료 폭탄’ 때문에 폭발 직전이다. 올 들어 자동차 보험료가 평균 15~20%나 인상됐기 때문이다. 조건이 나쁜 경우는 인상률이 35%에 이른다.

손해보험협회 서영종 자동차보험팀장은 “올 들어 계약을 갱신하는 운전자는 지난해 보험료 인상분(6~7%)과 올해 인상분(5~7%), 장기 무사고 운전자 인상분(최대 10%) 등이 한꺼번에 겹쳐서 반영되기 때문에 피부로 느끼는 인상폭이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도 아니다. 4월부터 차량별 보험료 차등화가 실시되면, 외제차 등 자동차 수리비가 비싼 차량을 모는 운전자는 최대 45%까지 보험료가 치솟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운전자들은 “보험사가 경영을 방만하게 해서 적자를 내놓고서 고객에게 뒤집어 씌우는 건 횡포”라고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요즘 각 보험사 자동차 보험팀 담당자들은 대리점, 설계사, 고객들로부터 “왜 보험료를 한꺼번에 많이 올렸느냐”는 항의 전화에 응대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보험소비자연맹 등 소비자 단체에도 보험료 인상이 억울하다는 운전자 민원이 하루 평균 10여건씩 접수되고 있다.

네티즌 ‘홍길동’씨는 보험소비자연맹 자유게시판에 “허술한 경영을 일삼으면서 경영 적자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면 모순”이라며 “언제쯤 제 값 주고 보험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느냐”라고 썼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정부가 왜 보험사 편만 드느냐”는 성난 네티즌들의 항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익명의 한 네티즌은 “똑같은 조건인데도 올해 자동차 보험료가 20% 이상 올라서 돈은 내긴 했지만 찜찜하다”면서 “보험료 폭등을 막기 위해 자동차 보험 시장을 대폭 개방해서 경쟁 체제로 가게 하고, 보험사들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자동차 보험료가 79만원에서 97만원으로 올랐다는 최석우(39·회사원)씨도 “보험 혜택이 좋아지면 보험료가 오르는 게 이해되겠는데, 그렇지도 않으면서 보험료만 비싸게 받는다”며 “보험사 적자에 고객 보험료를 맞춰가는 보험료 체계는 너무 기형적”이라고 비판했다.


 
보험사들은 자동차 보험 영업 적자(赤字)가 심각한 수준이어서,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고사(枯死)할 지경이라고 볼멘 소리를 한다. 실제로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손보사들은 자동차 보험 역사상 최대 수준인 약 9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처럼 큰 적자를 낸 데는 보험사 책임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보험사 상무는 “재작년에 업계 2위 자리를 놓고 일부 보험사들이 출혈 경쟁을 벌이면서 보험을 덤핑 판매한 것이 적자의 주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보험은 국민들의 생활 필수품이나 다름없는 만큼 가격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익대 이경주(경영학과) 교수는 “보험사가 장기간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보험료를 단계적으로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과도기적으로는 금융당국이 보험료 인상폭 한도를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