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진화해온 결핵]필리핀이 중국에 무릎꿇은 사연
by류성 기자
2020.08.22 09:05:13
"백신 주권" 확보못하면 국민생명, 국가안보가 위험
신종플루때 백신자체 생산못해 겪은 위기 잊지말아야
[이데일리 류성 기자] 신종플루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지난 2009년 8월. 당시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대유행하는 상황에서 백신을 생산하는 외국 제약사들은 주문물량 마감을 이유로 백신 공급불가를 선언했다. 나라마다 예방백신 확보를 위한 치열한 백신 전쟁이 벌어졌었다.
우리나라도 예외없이 백신 부족으로 위기감이 고조됐다. 백신 생산에 관한 자급능력이 충분치 않아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에서 발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절박한 시기에 언급된 “백신 주권” 이라는 용어는 고요함 속에서의 울림으로 시작해 메아리로 퍼진지 벌써 10여년이 넘었다.
그 사건이후 현재 대한민국의 백신 주권상황은 어떨까? 글로벌 수준에 비교하면 우리는 여전히 백신 주권을 아직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위의 표에서 말해주듯 전량 수입되는 백신의 수가 자체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고,그나마 국내 생산이 가능하더라도 원료 물질은 수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실제 국내 백신시장은 해외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백신개발에 선뜻 나서기에는 기업들의 위험요인이 너무 커 백신자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국내 BCG 결핵백신 사례 및 필리핀 코로나백신 이슈, 백신 자급화의 중요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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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의 자급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해외 업체의 공급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백신의 수급 불안정은 국가보건 정책에 큰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작게는 국민보건, 크게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 [BCG 결핵백신 독과점 폐해 사례] (출처: KTV 보도자료, 공정거래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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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수급 불안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 2015년 해외기업의 백신부문 민영화 과정에서 2017년까지 생산이 중단돼, BCG 결핵백신 수급이 부족했던 것이 꼽힌다. 당시 백신공급 차질로 BCG 접종은 석달 동안 중단됐다. 지난 해에는 피내용 BCG 생산 배치 일부가 폐기되면서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국내에는 자체 생산업체가 없기 때문에 수입 업체의 독과점에 대한 문제도 상존한다. 신생아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BCG 결핵백신 공급과 관련하여 시장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 한 수입 업체는 BCG 결핵백신(피내형)의 수입을 고의적으로 하지 않기도 했다. 고가의 BCG(경피형)으로 대신 수입 납품하면서 상당한 부당 이익을 챙겨 국고 손실을 초래했다. 결국 이 업체는 불공정거래 사례로 과징금을 추징당했다. 자체적으로 백신을 개발,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의 서러움이다.
며칠전 남중국해를 놓고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의 경우 코로나19 때문에 그간 팽팽하게 대립하던 중국에 저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필리핀은 코로나19 환자가 동남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심각한 상황이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국내 백신 개발 가능성이 없음을 인정하고 중국 정부에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면 충분하게 공급해 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면서 남중국해를 놓고 그 동안 중국과 치열하게 날을 세우던 영유권 분쟁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백신을 얻기 위해 자국의 영토도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국내 상황을 인지하고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보건안보 필수재인 백신 연구 개발 지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간 기업의 백신 개발을 위한 규제 컨설팅 진행 및 글로벌 백신 제품화 지원단 활성화 등을 통해 국가 백신 자급화를 이뤄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특히 국가 주도 한국형 BCG 결핵백신 개발과 청소년 및 성인용 결핵백신 등 공공백신의 실용화, 필수 백신의 개발 및 확보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의 “백신 주권 확립”을 위한 공격적인 지원과 노력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국가안보에 기틀이 될 수 있는 필수 백신들에 대한 자급화를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 내는게 급선무인 상황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언제든 중국에 고개를 숙이는 필리핀의 모습이 될수 있다.
[도움말 주신분 : 최유화 (주)큐라티스 사업/개발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