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우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by강경록 기자
2020.07.03 06:00:00
| 은은한 야경과 시원한 분수가 경북 경주 월영교 야행의 재미를 더한다.(사진=한국관광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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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올 여름은 예년과 다른 점이 많다. 코로나19는 푹푹 찌는 불볕더위에도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워터파크나 해변가도, 시원한 쇼핑몰도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아무리 더워도 마스크는 꼭 써야 한다. 여기에 역대 최강의 더위도 올 여름을 강타할 전망이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한낮의 더위도 식히고, 가족들과 오붓한 나들이를 즐기면서 생활 속 거리두기가 가능한 여행지는 없을까.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올해 여행 테마로 ‘야간관광 100선’을 선정했다. 이중 7월에 가볼 만한 네 곳을 소개한다. 해가 지면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다.
| 달빛 아래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특별한 고궁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경기 수원 화성행궁(사진=수원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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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한장면 같은 ‘화성행궁’
경기 수원의 화성행궁은 임금이 머문 임실 궁궐이다. 고상하고 기품 있는 건축물 덕분에 ‘왕의 남자’, ‘대장금’, ‘이산’ 등 영화와 드라마에도 여러번 등장했다. 화성행궁의 색다른 매력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부터다. 궁궐 곳곳에 조명이 켜지면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가 피어난다. 행궁 밤 산책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의 ‘신풍루’(新豊樓)에서 출발한다. 궁궐로 들어가자, 밝은 달이 반긴다. ‘달빛 정담’이라는 글자 옆에 달을 형상화 조형물이다. 단아하게 빛나는 초롱을 따라가면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연 봉수당(奉壽堂), 정조가 노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노래당(老來堂), 과거와 군사들의 각종 행사를 치른 낙남헌(洛南軒)이 이어진다. 낙남헌 앞에는 ‘달토끼 쉼터’라는 포토 존이 있다. 여기도 보름달 조명을 설치했다. 기념사진을 찍으며 고궁의 밤을 즐기기 좋다. 낙남헌부터는 청사초롱이 어둠을 밝힌다. 숲 속에 들어앉은 미로한정(未老閒亭)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가지런한 궁궐 지붕과 현란한 도시 불빛이 어우러진다. 아련한 분위기에 젖어 걷다 보면 화성행궁 전경과 수원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미로한정이 나타난다. 한여름 밤의 낭만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정조의 어진을 모신 건물 화령전(華寧殿, 사적 115호)에 들른다. 검소하지만 격조 있는 건물을 부각하기 위해 건물 밖 조명에 공을 들였다. 처연한 대금 독주가 나온다. 대금 선율과 함께 화령전을 돌아보면 생각이 한없이 깊어진다.
| 야경이 빛나는 충남 부여 궁남지와 포룡정(사진=한국관광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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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족이 사랑했던 ‘궁남지’
충남 부여의 궁남지는 백제 왕실의 별궁 연못이다. 백제의 세련미와 애잔함이 가득한 공간이다. 궁남지에 들어서자, 수많은 수련 꽃봉오리가 반긴다. 6월에는 수련이 피고, 7월이면 백련과 홍련 등이 화려하게 장식한다. 습지를 지나면 커다란 연못이다.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은 포룡정. 작은 다리를 건너 섬 안으로 들어가면 잉어들이 마중 나온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포룡정에 앉아 연못을 구경하는 맛이 평화롭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연못 축조 기술은 바다 건너 일본까지 이어졌다. ‘일본서기’의 기록에는 궁남지 조경 기술이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됐다고 나온다.
해가 지자 다리와 포룡정에 들어온 조명이 물에 비쳐 반짝반짝 빛난다. 빛과 어둠을 모두 끌어안은 연못이 더욱 신비롭다.
궁남지를 뒤로하고 정림사지(사적 301호)로 이동한다. 야간 관람 시간은 오후 6~10시다. 궁남지에서 걸어가면 10분 남짓이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인적이 뜸하고 엄숙한 정적이 흐른다.
마당 한가운데 조명을 받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9호)이 빛을 뿜는다. 단아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에서 도도한 기품이 느껴진다. 석탑은 멸망한 백제의 애절한 사연을 담고 140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다. 무슨 깊은 사연이 있기에 무너지지 않고 그리 오랜 시간을 버텼을까. 가까이 다가서자 높이 8.8m 석탑은 생각보다 크고 높다. 석탑 아래서 하늘을 우러르자 허공에 뜬 보름달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석탑이 광활한 우주와 교감을 나누는 것처럼 신비롭다.
◇붉은빛과 보랏빛으로 물드는 ‘월영정’
뜨거운 햇볕이 가시고 시원한 달빛이 찾아드는 여름밤, 경북 안동은 빛난다. 달이 비치는 월영교의 은은한 야경과 역동적인 낙동강음악분수의 화려한 야경이 안동을 수놓는다. 월영교는 길이 387m, 너비 3.6m 목책 인도교로 2003년 개통했다. 월영교는 안동호를 가로지르며 월영공원이 위치한 상아동과 안동민속촌이 들어선 성곡동을 잇는다. 물길로 나뉜 두 동네를 연결할 뿐만 아니라, 다리 자체가 명소다. 미투리를 형상화한 다리 모양이 특별하고, 가운데 자리한 월영정이 운치 있다.
어둠이 내리고 월영교에 조명이 들어오면 풍경은 사뭇 달라진다. 붉은빛과 보랏빛으로 물든 월영교는 몽환적인 느낌을 발산한다. 어둠이 집어삼킨 산과 호수 대신 조명이 비추는 호반 산책로와 언덕 위 선성현객사(경북유형문화재 29호)가 근사한 배경이 된다.
월영교 야경은 밖에서 봐도, 안에서 봐도 근사하다. 다리 내부에 조명이 들어와 밖에서 보는 풍경과 분위기가 다르다. 포근한 조명과 시원한 강바람이 여름밤 산책의 즐거움을 더한다. 다리에서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오후 8시 30분, 야경의 아름다움과 시원함이 극에 달한다. 월영교 분수는 10월 말까지 주말에 하루 3회(낮 12시 30분, 오후 6시 30분, 8시 30분) 각 20분간 가동한다.
| 부산 송도해상케이블카 야경(사진=한국관광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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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보다 밤이 더 즐거운 ‘송도해수욕장’
부산 송도해수욕장만큼 밤이 즐거운 곳도 없다. 화려한 야경과 더불어 바다 위를 걷는 송도구름산책로, 밤바다를 가로지르는 송도해상케이블카 등 늦은 밤에도 즐길 거리가 많다. 송도구름산책로는 2015년에 건립된 해상 보도교다. 해변 동쪽에 자리한 거북섬을 가운데 두고 다리가 양쪽으로 이어지며, 한쪽은 바다로 뻗어 정박한 배와 남항대교의 유려한 전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길이 365m에 이르는 산책로 데크는 중간에 바닥이 강화유리와 격자무늬 철제로 된 구간이 있어 출렁이는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밤이면 다리에 조명이 들어와 주변 야경과 근사하게 어우러지고, 거북섬에 마련된 전시와 조형물을 관람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송도구름산책로 위에는 송도해상케이블카가 오색 불빛을 반짝이며 밤하늘을 수놓는다. 송도해상케이블카는 송도해수욕장 내 송림공원에서 암남공원까지 1.62km 거리를 지나간다. 최고 높이 86m에 달해 케이블카에서 해수욕장이 한눈에 담기고, 바다 건너편 영도와 남항대교, 바다에 점점이 흩어진 선박까지 최고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탑승 내내 밤하늘과 까만 바다 너머 화려한 도시 야경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크루즈를 이용하면 발아래 펼쳐진 검은 밤바다가 훨씬 생생하게 다가오고, 짜릿함이 배가된다. 케이블카마다 블루투스 스피커가 장착돼 취향에 따라 분위기도 바꿀 수 있다. 때론 로맨틱하게, 때론 비트 있는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즐겨보자. 블루투스 스피커는 스마트폰과 연결하면 된다. 케이블카 탑승 시간은 10분 정도지만, 감동은 훨씬 오래간다.
| 해변 도시 야경이 어우러진 부산 송도구름산책로(사진=한국관광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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