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박물관]①옛 조상 정성·지혜 그대로 담은 원조 간편식 ‘양반죽’
by강신우 기자
2018.10.18 05:30:00
동원F&B, 1992년 즉석죽 ‘양반 참치죽’ 출시
전통·프리미엄급 이미지의 브랜드 ‘양반’ 채택
아침먹기 캠페인, ‘아침밥=양반죽’ 메시지 강조
설비·제품개선 통해 ‘외국인 입맛’도 사로잡아
[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죽(粥). 죽은 곡식을 오래 끓여 알갱이가 흠씬 무르게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곡식으로 만든 최초의 음식이다.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 토기는 소성(燒成·굽기 정도) 온도가 낮아 물을 많이 붓고 끓이는 죽 상태의 조리밖에 할 수 없었다. 이후 밥이 주식이 되면서 죽은 넣는 재료에 따라 환자식과 보양식·별미식·주식 대용식·구황(救荒)식 등으로 쓰였다.
죽은 쌀 등의 곡식에 물을 많이 붓고 오랫동안 쑤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곡식 알갱이가 풀어져 소화가 잘 된다. 또 죽의 재료로 쌀을 비롯한 곡식을 이용하기 때문에 밥을 대신해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조선후기 실학자 풍석(楓石) 서유구가 저술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보면 아침에 일어나면 배가 비어 있고 위가 허한데 죽 한 사발을 먹으면 곡기가 일어나 보의 효과가 있으며 매우 부드럽고 매끄러워서 위장에 좋다고 쓰여 있다.
죽을 만드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
“흰죽은 늦벼가 좋다. 흰 쌀을 정미해 여러 번 씻어 뜨거운 솥에 넣고 참기름을 떨어뜨려 살짝 볶은 후에 기름이 다 들어가기를 기다린다. 물을 더 붓고 섶 불로 계속해 졸여 반쯤 익혀 즙이 흐르려고 하면 놋 국자로 즙을 깨끗한 그릇에 떠낸다. 놋 국자의 등으로 아주 잘게 문질러 쌀알이 엉기지 못하게 하고 고르게 저어 조금도 눌어붙지 않게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이자, 아침 식사대용으로 좋다고 익히 알려진 죽. 그러나 죽 한 번 쑤기 위해서는 그 정성이 만만찮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아침식사를 거르기 쉬운 바쁜 현대인을 위한 ‘간편죽’이다.
간편죽 시장을 먼저 연 것은 동원F&B이다. 지난 1992년 국내 최초로 즉석죽 제품인 ‘양반 참치죽’을 출시하며 전통식품인 죽의 대중화에 나섰다.
‘양반’이라는 브랜드는 1986년 ‘양반김’ 출시 전 소비자 브랜드명 현상 공모를 통해 채택된 이름이다. 당시 김은 귀한 식품으로 아무나 먹지 못하고 선별된 사람만 먹을 수 있었기에 ‘양반’이라는 브랜드가 제품에 ‘고급’ 이미지를 덧씌웠다.
동원은 1986년 양반 브랜드 상표권을 등록, 양반이라는 브랜드명이 갖는 독창성 있는 텔레비전 광고 등을 제작해 그해 4월 본격적인 조미김 출시에 나섰다. 이후 동원은 프리미엄 전통식품에 맞는 ‘양반’을 패밀리 브랜드로 사용해 왔다. 양반죽은 양반김, ‘양반김치’와 함께 패밀리브랜드의 대표 제품이다.
양반죽은 처음부터 즉석죽을 만들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아니었다. 참치 캔으로 유명한 동원F&B(당시 동원산업)는 참치를 활용한 다양한 가공식품들을 개발하던 중 참치와 쌀의 조화에서 착안해 참치죽을 국내 최초로 발매하면서 즉석죽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처음 참치죽을 출시했을 때만 해도 양반죽은 그저 참치를 활용한 죽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실적 또한 20억 원대에 머물면서 주목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당시 동원F&B는 웰빙 식품으로 즉석죽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 웰빙죽의 대표 격인 전복죽을 개발해 시판에 나서며 상황이 급변했다.
고급화 전략과 공격적인 영업 전략으로 전복죽은 히트 상품으로 자리 잡게 되고 이를 시발점으로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해물죽, 밤단팥죽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양반죽은 업계 선두자리에 오르게 된다.
또 데워서 먹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즉석죽 제품에 ‘바로 먹어도 맛있는 죽’이라는 콘셉트를 가미해 제품 활용도를 높인 것도 성공의 요인이었다. 이는 죽은 꼭 데워먹어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불편한 인식을 확 바꿨다.
현재는 간판제품인 전복죽을 비롯해 야채죽, 밤단팥죽 등 19종을 판매하고 있으며 식사대용, 간식용, 병원선물용으로 인기다. 2004년부터는 대한항공 기내식으로도 선정돼 납품하고 있다.
| 동원그룹이 직장인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아침먹기 캠페인’.(사진=동원F&B) |
|
최근에는 직장인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침먹기 캠페인’ 등을 전개해 ‘아침밥=양반죽’이라는 메시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실제 양반죽은 1개에 285g으로 아침식사 대용으로 딱 좋다. 최근에는 404g 용량의 ‘양반큰죽’도 출시해 기본 양반죽으로 양이 부족한 소비자들의 요구도 채워주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양반죽은 2001년 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즉석즉 시장을 선도했고 현재 약 60.8%(2018년 상반기 기준·닐슨코리아)의 시장점유율로 18년째 업계 1등 브랜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양반죽은 까다로운 기준으로 엄선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만들고 있다. 100% 국산 찹쌀만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전통 죽 고유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업계 최초로 모든 원료를 함께 넣고 끓이는 조리법을 사용하고 있다.
맛을 내는 부재료 역시 풍부하게 사용해 전복죽은 다른 간편죽 제품들에 비해 전복 함량이 2배가량 높다. 또한 제품별로 참기름, 김 등의 소스를 별첨해 기호에 따라 소스 양을 가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차별화했다.
업계에서 유일하게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전통 죽 조리법(모든 원료를 함께 넣고 끊이는)을 그대로 따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차별화한 ‘죽 용기’에 있다.
타사 죽은 이미 끓인 흰죽을 담아 밀봉하고 다시 한 번 열에 살균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하면 두 번 열을 가하게 돼 죽에 들어 있는 쌀의 모양이 깨지거나 부서져 맛과 식감이 떨어지게 된다. 이에 동원F&B는 죽 전용 용기와 살균기를 도입해 모든 재료(물, 찹쌀, 부재료 등)를 한꺼번에 넣은 채로 한 번만 끓여도 되게 만들었다.
죽 전용 용기는 한 번에 끓여도 재료가 용기 단면에 잘 눌어붙지 않게 만들어졌다. 또 흔들어 주는 살균기를 도입해 가정에서 재료의 맛이 잘 베이도록 죽을 끓이면서 국자로 죽을 저어주는 효과를 볼 수 있게 했다.
동원F&B는 올해 상반기 광주공장에 약 9917㎡(3000평) 규모의 양반죽 생산 라인을 준공하며 제 2의 도약기를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구축되는 생산 라인에는 맛과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술과 설비가 도입됐다.
가장 큰 변화는 쌀의 변화다. 죽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원재료가 되는 쌀을 기존 일반미에서 ‘신동진쌀’이라는 고급 제품으로 바꿨다. 기존 쌀 대비해 쌀알이 커 식감이 좋으며 당도가 높아 맛도 우수하다.
또 싸라기(부스러진 쌀알)가 죽에 들어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선별설비와 투입 설비를 개선했다. 일단 1차로 새로 도입된 선별설비에서 싸라기가 걸러지게 되며 2차로 쌀 투입 설비에서 쌀이 깨지는 현상을 방지하는 설비 역시 도입했다. 따라서 온전한 쌀알로 풍성한 죽을 맛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육수의 업그레이드다. 동원의 전공인 참치를 활용한 진액을 통해 풍미를 더욱 살렸다.
아울러 커진 쌀알과 함께 들어가는 전복, 야채 등 주요 원료를 보다 식감이 좋은 큼직한 형태로 담아 맛과 영양, 포만감을 더욱 강화했다. 여기에 재료를 한 번에 담아 오랜 시간 저으면서 끓여 깊은 맛을 내는 고유의 전통방식은 그대로 유지했다.
더불어 자동화 설비의 증설을 통해 연간 최대 5000만 개가 넘는 제품 생산이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제품 하나하나 품질의 균일도 역시 강화했다.
이번 진행한 설비 및 제품개선은 까다로운 국제 기준에 맞추어 미국 등 해외 판매 또한 가능하게 됐다. 죽은 맛이 담백하고 먹기 편해 외국인들의 입맛에도 맞을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적극적으로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