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집값에 쪼그라든 서울]전세난에 싼 집 찾아 '서생크탈출'
by김성훈 기자
2016.05.20 06:00:00
20대 살 집 찾아 서울 살고…30대 싼 집 찾아 서울 뜨고
작년 13만 7000명 서울 등지고 떠나
취업 위해 20대 젊은층 유일하게 유입
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 4억
5년 만에 최고치 '脫서울' 부채질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올해로 결혼 5년 차에 접어든 신모(34)씨는 지난달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에 있는 전용면적 68.24㎡짜리 아파트를 3억 1000만원에 샀다. 자금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서울시내 전셋값이면 집을 마련할 수 있어 큰 맘 먹고 대출을 받아 계약금을 치렀다. 신씨는 “전셋집을 재계약할 때마다 받았던 스트레스를 생각하니 차라리 경기권에 저렴한 집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올 연말 결혼을 앞둔 김모(30)씨도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있는 전용 67.82㎡짜리 아파트를 전세 1억 9000만원에 계약했다. 김씨는 “직장이 있는 여의도와 가깝고 공항에서 일하는 아내를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입지”라면서도 “비싼 전셋값 때문에 30년간 살았던 서울을 떠나야 해 솔직히 마음이 안좋다”고 심정을 드러냈다.
메가시티(인구 1000만명 이상인 거대 도시) 서울이 흔들리고 있다. 서울 전셋값이 가파른 오름세를 이어가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전세난에 지친 서민들이 서울을 떠나 경기도에 정착하면서 탈서울 행렬이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30~40대 젊은 세대의 서울 이탈을 막기 위해 임대주택 공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입주가 시작되는 2018년까지 탈서울 행렬을 막을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국내 인구 이동’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을 떠난 인구는 13만 7000명을 기록했다. 분당·일산신도시 개발로 인구가 대거 빠져나갔던 1997년(17만 8000여명) 이후 18년 만에 최대치다. 올해 1분기(1~3월)에도 2만 3855명이 서울을 떠나기 위해 이삿짐을 꾸렸다.
치솟는 전셋값에 서울 탈출을 선택한 30~40대 가구가 늘어난 것이 1000만 인구 붕괴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4억 244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억 3228만원)보다 21%(6996만원)나 올랐다. 전셋값 평균이 3억원(3억 25만원)을 넘어선 2014년 2월 이후 25개월 만에 1억 199만원(34%)이 뛰면서 4억원 벽마저 무너졌다. 더욱이 젊은 가구가 찾는 서울시내 소형 아파트(분양면적 66㎡ 미만)값은 3.3㎡당 2041만원으로 2010년(2115만원)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탈서울을 부채질했다.
서울을 등진 서민들은 경기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는 기존 서울 주민 35만 9337명을 경기도민으로 맞이했다. 올해 1분기에도 9만 3803명이 경기도민 신분으로 갈아탔다. 지역별로 △성남시(1만 1269명) △고양(9766명) △남양주시(8447명) △하남시(7299) △수원시(5549명) △부천시(5332명) 등 위성 도시로 서울시민이 이동했다. 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셋값(2억 8785만원)이 여전히 3억원을 밑도는데다 서울과 수도권을 잇는 교통망 개발 호재로 출퇴근 부담을 덜어낸 영향이다.
주목할 점은 전 세대의 탈서울 행렬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20대는 유일하게 1만 7800명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진로를 위해 높은 주거비를 무릅쓰고 서울에 남아 취업을 마치고 서울을 떠나는 셈이다. 내년 5월 경기도 수원 호매실지구에 있는 아파트에 입주하는 박모(35)씨는 “열심히 발품을 팔면 서울에 살 집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지만 계속된 헛걸음에 마음을 접었다”며 “서울은 점점 살기 어려운 곳이 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젊은 세대의 서울 이탈을 막기 위해 행복주택 등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19세 이상 서울시민 1만 명을 대상으로 임대주택 인식조사를 시행한 결과 서울시민의 95.1%가 저소득층이나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임대주택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임대주택이 동네에 들어서면 집값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답변도 96.6%를 기록했다. 임대주택 건설 반대 이유로 서울시민의 56.9%가 ‘집값이나 거주 환경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질문에서도 같은 응답 비율이 64.9%로 8%포인트 오히려 높았다. 임대주택 공급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내 집 주변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 것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전셋값 상승세가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상황에서 행복주택 등 공공임대주택 입주도 2018년 이후에나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에 당분간 탈서울 행렬은 계속될 것”이라며 “더욱이 경기도 내 임차 수요가 많은 지역에 경쟁이 치열해져 경기도로 떠난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마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