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 장혁 "희망 찾는 기서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

by김재범 기자
2007.05.13 17:42:27

▲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주인공 기서역의 장혁(사진=MBC)

[이데일리 김재범기자] "원래 술을 잘 못하는데다 어울리면 분위기에 휩쓸려 속도 조절도 잘 못해요. 종방연 때 주위에서 권하는 술 마다않고 받다 보니...한 30여잔 마셨을 거에요. 2차 장소에서 저 혼자 뻗었어요."

'완소 드라마'라는 애칭과 함께 10일 막을 내린 MBC 수목 미니시리즈 '고맙습니다'(연출 이재동, 극본 이경희). 이 드라마에서 기서역을 맡은 장혁과 인터뷰를 하는 데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드라마가 종영한 10일 밤, 장혁은 함께 현장에서 고생한 선후배 연기자, 제작 스태프들과 함께 조촐한 종방 파티를 가졌다. 전남 신안군 증도의 로케이션장과 경기 의정부 세트장을 오가며 누적된 피로, 긴장감, 여기에 좋은 마무리를 했다는 안도감이 겹치면서 장혁은 이 날 정말 많이 취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결국 전부터 약속했던 장혁과의 인터뷰는 드라마가 끝난 이틀 후인 12일, 그것도 전화로 어렵게 이루어졌다. 인터뷰 초반, 전화를 통해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종방연의 여운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듯 무거웠다. 하지만 ‘고맙습니다’에 출연을 결정하는 과정과 촬영 과정에서의 이야기를 하면서 곧 특유의 진지함과 여유를 되찾아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 이제 ‘예비역’인데, 전처럼 매사 물불 가리지 않고 다니지 않아도 될텐데 
▲나이를 먹어도 저는 항상 그런 열정을 지닌채 달리고 싶거든요. 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그런 마인드 있잖아요. 그게 저의 삶의 지론이죠.

(장혁 인터뷰 주의사항 : 그와 처음 이야기를 해본 사람은 농담과 진담이 잘 구별되지 않는 ‘대책없는 진지함’에 당황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관심을 갖는 주제거나, 생각을 강조하고 싶을 때 종종 독특한 비유를 끌어들여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달변가라기 보다 열변가인 장혁의 화법에 적응하고 이를 이해하는 데는 따라서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 촬영장이 떨어져 있어 오가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 그 피로에 더 취한 것 같은데...
▲촬영 장소가 끝과 끝이죠. 한 곳은 전남의 섬, 다른 곳은 의정부의 스튜디오. 하지만 차를 운전하는 매니저 동생들은 힘들어도 사실 저는 그 시간에 최소한 3~4시간 정도 쉬면서 방전된 ‘배터리 충전’이 가능하니 피로하다고 말하면 안되죠.



- 그래도 섬에서 드라마 찍는 게 서울에서 찍는 것과는 다를 것 같다.
▲다른 드라마의 경우 한 신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 그 곳에서 찍을 장면의 대사를 외우거나 감정을 조정하면 되요. 쉽고 편하죠. 조금씩 조금씩 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번 드라마는 섬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으니, 촬영 시작할 때 미리 대본을 머리에 다 집어넣고 한 호흡에 연기를 해야 해요. 그만큼 집중하고, 감정도 이어가야 하고...호흡이 긴 게 마치 연극이나 영화를 하는 기분이었어요.

- 많은 애착을 가졌던 드라마일텐데 이제 홀가분하고, 또 아쉽기도 하겠다.
▲열심히 했던 드라마였고 그래서 제 몸의 일부처럼 소중해요. 하지만 예비역 연기자 장혁의 ‘1부’가 끝났으니 털어내고 다른 ‘2부’를 준비해야죠.
 

- 출연을 결정하게 된 것은 언제였는지.
▲처음 시놉시스를 본 것은 군대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였어요. 소속사에 들렸다가 친한 매니저형 책상에서 처음 봤죠. 그 때는 제목이 ‘고맙습니다’가 아니었고, ‘우리들이 있었다’였어요. 첫 페이지에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적혀 있던 게 기억나요.

-기서의 어떤 점이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났는지.
▲사실 기서란 인물도 눈길을 끌었지만 그보다는 영신의 캐릭터에 반해 버렸죠.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 치매 노인들과 살면서 꼿꼿함을 잃지 않는 모습, 그리고 그 사람의 정서와 생각이 마을의 뿌리를 이루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 드라마의 주제는 어땠는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났어요. 그 작품처럼 중병환자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다루지만, 괜히 질척거리지 않고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았어요. 슬픔이 안에 배어있지만 일상에서 편하게 끌고가는 느낌이 오히려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와닿았죠. 그래서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제대 후 제의가 왔고 많이 생각하지 않고 결정했습니다.

- 오랜 공백 끝에 복귀작인데 밝고 화려한 캐릭터에 대해 욕심은 없었는지.
▲2년간 군에 복무하면서 처음 1년 간 TV도 거의 안보고 지냈어요. 그 후 1년 동안 후배 병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런 생활이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든 것 같아요. 저녁에 근무 끝나고 담배 한 대 피면서 내가 일하는 현장 바라보고, 밤하늘 보면서 살다보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캐릭터가 상업적으로 화려하진 않지만, 기서도 삶의 희망을 절실히 찾는 사람이고, 저도 현실에서 그런 바램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을 느꼈어요. 
 
- 연예인에게 원치않는 공백기가 치명적일 수 있어 결과에 대한 부담감이 클텐데.
▲이 작품을 택한 후 나중 결과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연기를 다시 한다는 것 외에... 연기를 하면 ‘잘되야 한다’고 부담을 갖고 안될 때 스트레스를 느끼는 게 있고, 반대로 ‘다 털어버리고 요거 하나 잘해보자, 안되도 별 수 없지’라는 마인드로 연기만 신경쓰는 역할이 있는데 대체로 후자의 결과가 좋아요.

-그럼 복귀작의 시청률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는 건지
▲시청률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것은 중요하죠. 뭐,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시청률을 생각하는 게 배우에게도 필요해요. 하지만 섬에서 대부분을 지내는 저로서는 시청률의 흐름에 대해 알 수도 없었고, 또 영향을 미칠 방법도 없으니 오히려 마음 편했죠.
 
-드라마의 시청자 반응이 회가 거듭되며 시나브로 높아졌다
▲원래 누구에게 '고맙습니다'란 말을 하는 것도 갑자기 충동적인 기분에서 하는 게 아니라 서서히 상대에 대해 느끼면서 하는 것 아닌가요. 드라마에 대한 반응도 그래서 천천히 높아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