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재판 하세월, 사법불신 초래…신속판결로 신뢰 회복해야"

by성주원 기자
2024.11.06 05:00:00

■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 이기수 한국법학원장
"선거사범재판 1년내 처리 규정 유명무실"
"법관임용 조건 완화…재판 신속화 기대"
"법과대학 ''급감''…法교육 사실상 말살"
"AI 등 기술 발달 맞춰 합리적 정책 개발해야"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그동안 사법부가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치인 재판은 몇년이 지나도록 1심 선고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우리나라 법학계를 대표하는 원로 상법학자인 이기수(79) 한국법학원장은 5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사법 신뢰 회복방안을 묻는 질문에 그동안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3 한눈에 보는 정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사법시스템 신뢰도는 49.1%로, OECD 평균(56.9%)을 밑돈다.

이기수 한국법학원장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이영훈 기자)
이 원장은 “국민들이 보기에 사법부가 정권에 휘둘리는 듯한 모양새가 지난 정권부터 있어 왔다”며 “예컨대 선거범 재판은 1심 6개월, 2·3심 각각 3개월씩 해서 1년 안에 끝내도록 돼 있는데 그렇게 끝낸 적이 거의 없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평가다.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후 ‘공정 절차에 의한 신속한 재판’을 강조하고 있고 법원장들이 직접 재판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이런 노력들이 모여 사회 정의에 맞게 신속하게 재판이 이뤄진다면 국민 신뢰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판 지연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개선도 진행 중이다. 그는 “법관 임용을 위한 법조경력이 내년부터 10년에서 5년으로 줄어든다”며 “법관이 되고자 하는 인력풀이 그만큼 늘어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법학교육 시스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전국 75개에 달했던 법과대학은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이후 현재 3곳만 남았다. 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필요한 법 교육이 대학에서 사실상 말살됐다”고 혹평했다.

로스쿨 역시 당초 취지와 달리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이 원장은 “처음에는 국제 전문가 등 특수한 교육 목적을 내세웠지만 지금은 변호사시험 준비 학원으로 전락했다”며 “특수 법 분야 연구나 학문 후속세대 양성도 안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교육과정을 바로잡는 것을 전제로 ‘정상적으로 졸업하면 변호사 자격증을 주는 제도’를 궁극적인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 원장은 “현재는 졸업생의 50% 정도만 합격하고 나머지는 오탈자(변호사시험에 다섯 번 불합격해 응시 자격을 잃은 사람)가 되는 구조”라며 “로스쿨 도입 목표가 법학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었던 만큼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미래 과제도 제시했다. 이 원장은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국제사회 환경 변화로 새로운 법률 영역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며 “기술 발달 속도에 맞춰 정책을 개발하고 새로운 갈등에는 정의에 기반한 합리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기수 한국법학원장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이영훈 기자)
△사법부가 정권에 휘둘리는 듯한 모양새가 지난 정권부터 있어 왔다. ‘권력이 누르면 사법부도 꼼짝 못하는구나’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에 ‘공정 절차에 의한 신속한 재판’을 지속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만큼 이제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사실 너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사법부가 해야 할 역할을 못했다. 대법원장 바뀐 이후에 법원장들이 직접 재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사회 정의에 맞게 신속하게 재판이 이뤄진다면 국민 신뢰도 더 높아질 것이다.

△법관 임용을 위해 필요한 법조경력이 내년부터 10년에서 5년으로 줄어든다. 법관이 되고자 하는 인력풀이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이와 맞물려서 법관 증원법도 비록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통과되지 못했지만 다시 준비해 나가야 한다.

△로스쿨 도입 이전엔 법과대학이 전국 75개였다. 그중 25개 학교가 로스쿨을 만들고 50개는 법과대학으로 남았는데 현재는 법과대학이 손에 꼽힌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필요한 법 교육을 시키는 곳이 없다. 기본적인 교육의 관점에서 잘못됐다. 로스쿨도 처음에는 국제 전문가라든지 나름대로 특수한 교육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지금은 변호사시험 준비 학원으로 전락했다. 법학교수를 키우는 대학원도 거의 없어서 후속세대를 양성하기도 어렵다. 25개 로스쿨에 매년 2000명이 입학하는데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50%대에 그친다. 법학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 로스쿨의 당초 목표였던 만큼 정상적으로 로스쿨을 졸업하면 변호사 자격증을 주는 방식으로 바꿔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최근에 한국상사법학회에서 상법 개정 문제를 놓고 세미나를 했다. 한국법학원장으로서 참석해서 모든 발표를 봤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사의 충실의무는 지금 수준으로 충분하다. 굳이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견이다.

△기술의 발달 속도에 맞춰서 그에 맞는 정책을 개발해서 활용하면 된다. 사회적인 문제나 갈등이 새로 생겨난다면 정의에 바탕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서 대응하는 법률 환경을 만들어가면 된다. 요즘 신진 법률가들은 이미 상당수 AI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세미나·강연에서 함께 논의하는 등 신기술을 극복하는 방안을 찾아내는 공동 연구가 중요하다.

△1945년 경남 하동 출생 △고려대 법학사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튀빙겐대 법학박사 △고려대 법과대학장·법무대학원장 △고려대 제17대 총장 △한국상사법학회장 △한국도산법학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대한중재인협회장 △대법원 양형위원장 △(현)고려대 명예교수 △(현)제16·17대 한국법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