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아편·필로폰 원재료 양귀비 재배 금지
by김무연 기자
2021.08.29 10:19:53
정상 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조치로 해석
양귀비, 아프간 국내총생산의 10% 남짓 차지
농민 주요 수입원 차단…정책 실효성 의문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정권 재탈환에 성공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자국 농부들에게 ‘양귀비 재배 금지령’을 내렸다. 양귀비는 아편, 필로폰 등 마약의 원재료다. 내각 구성을 추진 중인 탈레반이 마약 수출국이란 오명을 씻고 주변국으로부터 정상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이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탈레반이 아편의 주요 생산지 중 하나인 남부 칸다하르 지방 주민에게 양귀비 재배를 금지할 것을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의 명령으로 양귀비 수급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아편 가격은 ㎏당 약 70달러에서 200달러로 약 세 배 뛰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 양귀비 재배면적은 지난해 약 2240㎢에 달하며, 생산량은 약 6300t으로 추정된다. 경제 기반이 약한 아프간에서 양귀비 거래는 국내 총생산의 10% 남짓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로 불법 수출되는 아편의 약 80%가 아프간에서 나온다. 탈레반도 아편 밀매를 주요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
탈레반은 서방의 경제 제재에 이어 해외 원조가 고갈되면서 경제가 붕괴될 것이란 압박을 받고 있다. 실제로 아프간에서 식용유와 같은 생필품 가격은 꾸준히 치솟는 반면 수입품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탈레반은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 이미지를 얻고 개발자금을 얻기 위해 마약 생산·수출 금지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아프간 아편의 주요 소비국이던 러시아, 중국 등 국가 등으로서는 탈레반의 결정을 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실질적으로 양귀비 재배를 전면 금지를 유지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란 지적도 있다. 대부분의 주민이 아편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양귀비 재배 금지는 필연적으로 주민 소득의 저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칸다하르 지방의 농민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고 국제 구호가 중단되면 사람들이 굶어 죽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양귀비 재배 농가 또한 “우리가 양귀비 재배에서 얻는 수입을 보상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