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양승득 기자
2020.12.11 05:00:00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말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말로 여론의 십자 포화를 맞았지만 잘라 말하면 표현 자체에는 틀린 데가 없다. 김 장관의 인식은 이랬을 것이다. “반죽해서 구워내기만 하면 되는 빵과 달리 아파트는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걸 어떻게 하루 아침에 뚝딱 늘릴 수 있느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주택 정책의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은 것이었는데 야당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빵투아네트’라는 조롱까지 받고 ‘국민 밉상’이 됐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것이다.
답답하기로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마찬가지다. 전세 살던 집은 비워줘야 하는데 새로 구하자니 근처 다른 아파트 전셋값이 다락같이 올랐고, 팔려고 내놓은 자신의 집은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해 매각이 무산될 처지에 몰렸던 사연이 알려지자 그는 바뀐 임대차법에 부메랑을 맞은 고위 경제관료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상당수 국민의 시선에는 “잘 걸렸다”는 화풀이 감정과 “공직자가 딱하게 됐다”는 이해의 심정이 교차했을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은 광란의 부동산 시장과 맞서 싸운 글래디에이터(검투사)다.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고 주거 안정을 해치는 집단과 세력이 나타나면 이 칼, 저 칼 다 뽑아 혈투를 벌였다. 이들의 사명감과 용기는 칭찬해 줄만 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관객(국민)이 보낸 건 격려와 응원 함성이 아니다. 야유와 원성 뿐이다. 왜 그랬을까? 답은 간단하다. 자신들의 헛발질 정책에 대한 과신과 집착 탓도 있지만 말(言)때문에 벌은 ‘매’도 만만치 않다. 고의적이건 아니건 잘못 끄집어낸 단어와 표현,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이 부아가 치밀게 한 경우가 허다해서다.
지난 시간의 말을 꼬리 잡고 늘어지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과거에 주택 인·허가를 안 해줘 집 사정이 나빠졌다”“호텔을 개조해 만든 임대주택이 굉장히 반응이 좋다”는 등 최근에 쏟아낸 말들에선 반성과 사과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여권의 우군 정치인들이 두 사람을 거든답시고 “아파트 환상을 버리라”거나 “임대차 3법은 선진경제로 넘어가는 과정의 성장통”이라며 입방아를 찧어대도 이들은 “벌을 달라”며 거듭 머리를 숙여야 했다. 그런데도 홍 부총리의 경우 “부동산 매수 심리가 진정돼 가고 있다”는 말로 또 한 번 민심에 불을 질렀다. 부동산대책이 24전 전패한 것도 문제지만 ‘툭툭’ 튀어나온 엉뚱한 발언이 화를 더 키운 것이다.
두 검투사의 칼은 허공만 가르다 만 격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관객들 눈에는 적이 뻔히 보이고, 그 방향으로 칼을 내밀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이들은 칼춤만 추다가 경기장 너머 관객들에게 피해를 입힌 결과를 낳았다. 콕 찍어 말하자면 원인은 ‘딴청’이다. 귀를 쫑긋 세우고 정신을 집중해 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해법 찾기와 거리가 먼 행동을 되풀이했으니 이보다 더한 딴청이 있을 수 없다.
경청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고, 일부러 딴청을 피운 것도 아닐 터다. 하지만 시장의 소리, 국민의 호소를 귀담아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려고 조금 더 노력했다면 말로 번 매의 횟수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경영학의 그루 피터 드러커는 “먼저 생각하고 마지막에 말하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경청에서 정답이 나오고 딴청을 피울수록 궤변의 위험은 더 커진다. 변창흠 국토부장관 내정자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시장에서는 그가 과거에 주장했던 ‘개발이익 환수’ 등 반(反)시장정책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변 내정자가 부동산 때문에 생긴 국민 홧병을 단번에 날려 버릴 순 없더라도 안 맞아도 될 매를 말로 맞는 일은 더 없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