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권효중 기자
2019.10.25 06:05:00
올해 삼성전자, A→B+ 하향, 1년도 더 된 `반도체 사고` 탓
KRX리더스지수 "삼성전자 등급 하향, 비중 축소 영향 없어"
[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이왕이면 환경에 덜 해로운 제품을 고르겠다는 ‘착한 소비’처럼, 투자를 하더라도 이왕이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업을 고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기업이 지속 가능하고 결국엔 장기 수익률도 좋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죠. 이러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 바로 ESG(환경· 사회·지배구조) 투자입니다.
한국지배구조원(KCGS)과 한국거래소는 ESG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을 연구하고 지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배구조원은 1년에 한 번 상장기업들을 상대로 ESG등급을 매기는데요. 등급은 S, A+, A, B+, B, C, D의 7단계입니다. 거래소는 이 등급을 바탕으로 ESG리더스150지수, KRX 가버넌스 리더스지수 등 사회책임투자지수(SRI)를 구성하는 종목들의 편입 여부와 비중을 결정합니다. 이 지수를 기초로 ETF(상장지수펀드)가 만들어졌고 관련 추종 자금들도 형성될 것입니다. ESG등급이 해당 기업의 가치를 보여주는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테니 지배구조원의 등급 평가는 기업으로선 중요한 성적표가 되겠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제로는 좀 다릅니다. ESG등급에 주가는 전혀 반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 그 이벤트가 즉시 ESG등급에 영향을 주고, ESG 등급에 따라 지수의 편입 여부, 비중이 수시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습니다.
지배구조원은 데이터 수집, 기업 담당자와 미팅, 인터뷰 등을 거쳐 해마다 10월에 ESG 등급을 공표하는데 올해 삼성전자(005930)의 ESG등급이 A등급(우수)에서 B+등급(양호한 수준)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됐습니다. 왜 일까요? 지배구조원은 작년 9월 발생한 삼성전자의 경기도 기흥 반도체 사업장에서 발생했던 이산화탄소 유출로 인한 사망 사고가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습니다. 1년이나 더 된 사고가 이제야 ESG등급에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보다 앞서 올 4월 사회책임(S) 부문의 점수를 낮췄고 이 바뀐 등급이 이번 정기 발표를 통해 반영됐다고 합니다. 사회책임 부문의 등급 하향 조정도 사고 발생 후 7개월만에 이뤄진 것입니다.
어쨌거나 등급이 낮아졌으니 거래소가 산출하는 ESG 지수 등에서 삼성전자 비중이 좀 줄어들까요? 이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KRX 리더스 150지수는 시가총액과 거래대금 등의 최소 조건을 만족하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주류나 도박, 담배 등의 매출이 20%를 넘지 않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E,S,G 3요소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을 만족하면 편입이 되는데 결국 시가총액 등 회사 규모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SG등급이 너무 낮은 경우 종목 비중이 축소된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해 7월 거래소는 KRX ESG리더스150지수에서 대한항공(003490) 비중을 0.8%에서 0.5%로 축소했습니다. 총수 일가의 전횡으로 책임경영 체계가 기능하기 어렵다고 판단돼 사회책임(S) 부문 등급이 B+에서 C등급으로 두 단계 하향 조정됐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3월 현대건설(000720), 현대제철(004020), 대림산업(000210) 등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하거나 입찰 담합에 따른 과징금을 부과받은 기업은 아예 퇴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ESG등급 자체가 시의성이 떨어지다보니 이를 반영한 지수,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ETF 역시 관심을 받지 어려운 모양새입니다. 지배구조원에선 10월 정기 공표 외에 수시 조정도 하겠다고 말하지만 삼성전자 사례에서 보듯이 가능할 지 의문입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오는 25일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받는데요.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재구속될지 여부가 관건입니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등 ESG 등급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이런 부분들이 시의적절하게 반영될지도 관심입니다.
ESG투자에 관심이 많다며 거래소에선 정기적으로 해외 인사들을 초청해 대규모 행사를 열기도 합니다. 지난달 20일 열린 ‘2019 글로벌 ETP 컨퍼런스’의 주요 주제 중 하나가 ESG였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일어나는 얘기 백 날 들으면 뭐 합니까. 우리는 해외 연사들을 앞에 두고 ‘ESG투자가 정말 수익률에 도움이 되나요?’만 묻고 있는 데요. 그러면 그들은 짠 듯이 “그럼요, 장기수익률에는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라고 S&P(스탠다드앤드푸어스)500지수를 갖다댑니다. 우리나라도 ESG등급이 시장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아니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받을 수 있게 제반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연금이 11월에 공개할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에 관심이 쏠립니다. 과연 유명무실한 ESG등급과 ESG 이슈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