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충격의 2주일…'트럼프 탠트럼'이 남긴 것
by김정남 기자
2016.12.01 06:03:44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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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한국은행의 A 금융통화위원은 최근 미국 대선 전 한 경제연구기관 간부들과 얘기를 나눴다. 채권시장의 과열 가능성도 도마에 올랐다고 한다.
올해 한때 우리나라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1.4%도 안 됐다. 누가 봐도 과도했다. 현재 기준금리는 1.25%. 7일물 환매조건부채권(RP) 금리가 이 수준이다. 한은이 한 시중은행에 RP를 100억원어치 팔았다면 이 은행은 7일 후 한은에 되갚아야 한다. 이때 적용되는 금리가 한은 금통위가 매달 정하는 기준금리다.
채권은 ‘기간 프리미엄’이란 게 있다. 만기가 길수록 불확실성 탓에 금리가 더 높다는 거다. 그런데 10년물 채권의 금리가 기준금리와 비슷할 정도로 급락했던 것이다.
이는 너도나도 장기채권에 투자해 채권가격이 급등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집값이 계속 올라도 “또 돈을 벌 수 있다”며 집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은 처사였다.
미국과 비교해도 과열 정도는 확연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0.25~0.50%. 우리나라보다 낮다. 반면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우리나라보다 더 높았고, 지금도 더 높다.
이 경제연구기관의 한 임원은 당시 “국내 채권금리, 특히 장기금리 수준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했고, A 금통위원도 공감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트럼프 탠트럼(트럼프 발작·금리 급등)’은 예견된 충격이었다. 여의도는 “최악의 연말”(B 증권사 채권딜러)이라며 축 처져있지만, 그래도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지금이야 말로 최근 ‘충격의 2주일’을 찬찬히 돌아봐야 할 때다.
먼저 정책당국. 기자는 몇 달 전부터 수차례 탠트럼 가능성을 지적하며 당국에 의견을 물었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답은 비슷했다.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 9월 기자간담회에서 비슷한 답변을 했다. 보험사 연기금 등 장기투자기관들이 장기채권을 많이 사니 금리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런 비정상적인 수급이 시장 전체를 왜곡시킨 건 아닌지, 한은이 이를 가볍게 본 건 아닌지 곱씹어볼 필요는 있다. 한은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 국고채를 전격 직매입한 건 “시기적절한 대응” 평가를 받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상황은 예방하는 게 가장 좋은 것 아닌가.
한 당국자는 “2013년 테이퍼 탠트럼, 2015년 분트(독일 국채) 탠트럼 때보다 시장 충격이 더 컸다”고 술회했다. 최근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가계부채 폭탄이 눈 앞에 있다. 더 긴장해야 한다.
시장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묻지마 매수’에 나선 건 채권시장 참가자들 자신이다. 누가 시킨 게 아니다. 순전히 스스로 판단해 수익을 좇았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 이후 금리 급등으로 평가손실이 현실화하자 정책당국만 쳐다보며 ‘SOS’를 친 건 민망한 처사다. 당국의 시장 개입은 결국 국민 세금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시장은 지금 살얼음판과 같다. 미국이 긴축 통화정책 기조를 강화할 때마다, 유럽·일본의 ‘돈 풀기’가 한계를 보일 때마다 언제 또 출렁일지 모른다. 채권가격 하락 조정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더 냉정해야 한다.
기자는 이번 충격으로 우려가 하나 더 늘었다. ‘버블은 터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확인한 것 같아서다.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터진다면 그때는 정말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