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4.09.12 21:03:26
“비 와서 하루벌이 허탕쳤다” 항의전화 부쩍 늘어
‘태풍 시즌’ 별탈없이 끝나… 예보관들 한숨 돌려
[조선일보 제공] 지난달 18일 새벽 15호 태풍 ‘메기’가 한반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온다는 분석이 나오자 기상청 예보관실은 초비상이 걸렸다. 상황반을 가동하고, 예비인력 15명을 추가투입, 태풍 영향을 면밀히 파헤치는 작업에 들어갔다.
“본토로는 진입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람은 ?”, “더 강해지진 않겠지만 제주에는 태풍경보를 내려야 합니다”, “강수량은 ?”, “호우경보를 확대해야 합니다”.
급박한 대화가 숨가쁘게 오갔고, 각 분야 자료를 취합한 예보관들은 ‘태풍정보’ 작성에 돌입했다.
이 같은 회의는 3시간마다 한번씩 이어져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이튿날 오후 10시30분까지 작성된 ‘태풍정보’는 12개. 19일 저녁 9시쯤 태풍이 울릉도 동쪽으로 빠져나간 뒤에야 예보관들은 하나둘씩 가쁜 숨을 고르며 귀가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집중호우·태풍 등 기상이변과 함께 호흡하는 곳이 바로 예보관실이다. 본청 25명, 전국 60명 등이 근무하는 예보관실은 기상청 업무의 ‘최전선’이다.
자연 재해를 정확히 판단해 미리 알려 국민들이 대비태세를 갖추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보관이 되려면 해병이나 특전사 이상의 혹독한 ‘훈련’을 마쳐야 한다.
예보관 과정 8개월 동안 우유부단하거나 판단이 느리면 불합격 1순위. 급박한 기상변동 속에서 주어진 자료를 들고 ‘경보냐 주의보냐’, ‘호우냐 강풍이냐’ 수준을 가늠해야 하는데, 결단력이 없으면 본의 아닌 피해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자질은 있는데 꼭 틀리는 예보만 할 경우 탈락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인내심’도 중요한 자질이다. 날씨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는 전화를 수시로 받아야 하기 때문.
그래서 ‘전화 응대의 기본 화법’이란 문서를 책상에 붙여놓아 매일 자신을 다스리고 있다. 하루 200여건의 전화를 받다 보면 녹초가 되기도 한다.
요즘은 경기가 불황이라 그런지 항의전화도 부쩍 늘었다. 호황일 때는 “내일 골프치러 가는데 날씨가 어떻소”라는 여유가 있지만 요즘은 “일기예보 똑바로 하라”는 높은 목소리이다.
비 오는 예보가 나간 날이면 건설직 일용 노동자들이 ‘단골’ 전화 고객이다. “비 온다고 했다가 안 오면 ‘당신들 때문에 공사 중단 결정이 내려져 하루 벌이를 놓쳤다’며 화풀이를 해댄다”는 것.
예보가 쉬운 작업도 아니다.
지구를 둘러싸는 대기 흐름을 담은 정보가 세계 각지에서 쏟아지면, 수퍼컴퓨터가 이를 다시 과거 자료와 비교분석, 미래 날씨를 ‘예언’하는데, 예보관은 단순히 이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을 가미(加味), 창조적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교향악단 지휘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도 적중률은 아직 80%대. 주역(周易)을 통달했다며 1억원만 주면 매일 기상을 정확히 맞히게 해주겠다는 제의도 받는다. “관심 주셔서 고맙다”고 거절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100% 날씨를 맞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또 하나의 걱정 거리는 ‘재해 불감증’. 홍윤(洪允) 예보관리과장은 “지금 남해는 무분별한 매립으로 해안선이 엉망이 된 터라 해일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며 “지금 방재(防災) 시설로는 태풍 피해를 막기 역부족이어서 일단 위험하다 싶으면 어지간한 가재도구 다 버리고 몸부터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