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개발국 디지털 인프라 구축, 韓 기업에도 기회될 것"

by최정희 기자
2024.08.11 10:28:00

김상부 WB 디지털 전환 신임 부총재
한국인 최초 '부총재직'
전국 인터넷망 깔며 '국가 정보화사업'으로 공직 입문
전 세계 27억명은 인터넷 접속 못해
디지털 격차 줄이는게 최우선"

김상부 세계은행 디지털전환 신임 부총재가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선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한국은 풍부한 디지털 개발의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이 구축해온 전자정부, 디지털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개발 등의 노하우는 이제 세계적으로도 필요한 자산이다.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큰 기회가 될 것이다.”

1997년, 김상부 사무관이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맡았던 첫 업무는 ‘국가 정보화 사업’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전역에 인터넷망을 도입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보화 교육을 추진했다. 27년이 지난 지금, 김상부는 세계은행(WB)에서 저개발 국가들의 인터넷망 구축과 디지털 개발을 통해 국가 간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일을 맡게 됐다.

세계은행은 7월 30일(현지 시간), 올해 처음으로 신설된 디지털 전환 부총재 자리에 김상부 전 구글 컨슈머 공공정책 아시아태평양 총괄을 선임했다. 1955년 한국이 세계은행에 가입한 이후, 한국인이 부총재라는 최고위급 자리에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장급 이상 인사에서도 한국인의 임명 사례는 없었다.

김상부 신임 세계은행(WB) 디지털 전환 부총재는 한국의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초고속 성장이 자신이 부총재로 선임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김 부총재는 “한국은 디지털 개발을 통해 큰 성장을 이룬 모범국”이라며, “디지털 개발을 위해 정부와 민간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제가 그동안 이러한 경험을 쌓아왔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왔다는 점이 중요한 고려 요소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부총재는 정부에서 정보화 기획 업무를 마무리한 후, 민간의 역할이 커지는 것을 보고 2013년 LG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19년에는 구글로 이직해 많은 이용자들과 함께 일하며 경험을 쌓았고, 올해 2월 퇴직한 후 4월에 세계은행의 디지털 전환 부총재직 공고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많은 분들이 해당 자리를 추천해줬다”며, “이 자리는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정부에서 시작해 민간, 해외 기업까지 거쳤다가 다시 공공기관으로 돌아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전했다.

이번 선임에는 정부의 지원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아제이 방가(Ajay Banga)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만남을 가졌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올해 방가 총재를 세 번 만나 세계은행의 재정 지원 등을 논의한 바 있다.

김 신임 부총재는 먼저 해야 할 일로 국가간 디지털 격차 해소를 짚었다. 그는 “전 세계 인구 중 27억명(2022년)이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 세계 가구의 81%가 유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지만 아프리카에선 7%, 중동국가에선 35%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소득 국가의 경우 인터넷이 가능하다고 해도 약 5% 인구만이 10Mbps(초당 1.25MB) 수준의 속도를 쓸 수 있고 나머지 95%는 그 조차도 안 될 정도로 느린 속도로 접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챗GPT 등 생성형AI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위협적일 정도로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상황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그는 “인터넷도 접속되지 않은 국가들에게 어떻게 AI혜택을 누리게 할 것인지가 과제”라며 “네트워크 등 인프라를 늘리는 게 먼저”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개발 국가에 맞는 기술 개발 정책 지원이 이뤄지고 네트워크, 디바이스의 활용도를 높여 기업이 관심을 가질 만한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정부가 마중물을 제공하는 등 초기 수요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디지털 개발 경험, 정부와 민간의 협력 등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한국에는 우수한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세계 무대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WB가 디지털전환 부총재직을 신설한 가장 큰 이유는 긴 세월 빈곤, 자연재해 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저개발국들이 디지털 개발을 통해 경제·교육·보건·금융 분야에서 좀 더 빠른 혁신을 함으로써 중위, 상위권 국가로 발전하도록 지원하기 위함이다. 그만큼 디지털 인프라 구축 등과 관련 우리나라에는 사업 기회가 많아질 수 있다.

그는 “199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4500달러의 중위권 소득 국가가 142개국인데 여전히 108개국가는 현재도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주요 저개발국의 정부와 IT기업 수장들을 만나 디지털 혁신·개발을 위해 어떤 사업을 우선 개발할지, WB가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 지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아프리카, 남미, 남아시아, 동유럽, 중앙아시아 등이 타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부 신임 세계은행(WB) 디지털 전환 부총재는 개인적으로도 한국의 급속한 성장을 몸소 체험한 인물이다. 그는 “저의 조부모와 아버지께서 한국전쟁 중 1.4 후퇴 때 북쪽에서 내려오셨고, 저희 가족과 나라가 빈곤에서 풍요로워지는 과정을 지켜봤다”며, “이 자리가 영광스럽고 의미가 크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경험을 통해 혜택을 받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김 부총재가 이끌 조직은 7월에 1차로 출범하였으며, 김 부총재는 9월 3일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임기는 4년이지만 연장 가능성이 있어 중장기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그의 임명에 대해 행시 동기이기도 한 엄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관은 “디지털 분야에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젊은 청년층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약력]△서울대 경영학 학사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 △정보통신부 사무관 △방송통신위원회 시장분석팀장 △대통령실 행정관 △LG경제연구원 통신산업 수석연구위원 △LG유플러스 상무 △구글 플랫폼 및 에코시스템 파트너십 총괄 △구글 컨슈머 공공정책 아시아태평양 총괄 △세계은행(WB) 디지털 전환 부총재(9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