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테쉬'와 신뢰의 가격[생생확대경]

by김형욱 기자
2024.07.16 06:10:00

C커머스, 초저가 앞세워 약진했지만,
아직까지 ''신뢰의 가격'' 반영 안돼…
KC인증 의무화, 논란 속 보류됐으나,
이를 계기로 신뢰의 가치 고민해봐야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우리 집에선 다 본 신문을 그냥 버리지 않는다. 따로 차곡차곡 모아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쌓이면 지인에게 준다. 국산 브랜드 제품을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직판하는 친구다. 신문은 직판 제품 포장하는 데 쓰인다. ‘최신 한국 신문’으로 포장함으로써 이 제품이 중국산 짝퉁이 아니라 진짜 한국산이란 걸 인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까 고객들이 더 좋아하더라고.” 수년 전, 친구가 내게 다 본 신문지를 모아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 소비자도 자국 온라인 쇼핑에 대한 신뢰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새삼 체감했다.

알리익스프레스(왼쪽)와 테무 애플리케이션 아이콘
알리 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알테쉬) 같은 중국의 온라인 쇼핑몰, 이른바 C커머스가 급부상하고 있다. 이용자 수가 단시간 내 폭발적으로 늘며 쿠팡, G마켓, 옥션 같은 K커머스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올 들어 월평균 이용자 수가 700만~800만명에 이르렀다. 어느새 주변에서도 C커머스를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워졌고, 최근 우리 집에서도 C커머스를 시작했다.

제품 신뢰도는 아직 높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가격이 파격적으로 낮다. 한국 쇼핑몰에서 하나를 살 가격에 비슷한 제품 몇 개를 더 살 수 있으니 가끔 불량 제품이 오더라도 ‘남는 장사’라는 게 이를 애용하는 지인의 설명이다. 어차피 지금 우리가 쓰는 많은 일상용품이 중국산인 만큼 이를 여러 유통 절차를 생략한 중국 쇼핑몰 직구가 소비자에게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C커머스 제품이 특별히 싼 이면에는 이곳 유통 제품에 ‘신뢰의 가격’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존 유통업자가 같은 제품이라도 C커머스보다 더 비싸게 판매하는 건 단순히 더 많이 남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제품 안전성 시험·인증 같은 정식 수입절차를 거치는 데 필요한 비용도 포함돼 있다. 중국 직판 사업자 친구가 굳이 ‘최신 한국 신문’을 포장재로 쓴 것처럼 정식 수입사도 KC 인증 마크를 받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들인다.

정부가 모든 소비자, 모든 제품에 이 신뢰의 가격을 강제하는 건 쉽지 않다. 정부가 지난 5월 국민 안전·건강을 이유로 어린이제품 등의 해외 직구에 대해 KC 인증 취득을 의무화하는, 사실상 개인의 직구를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가 논란 끝에 시행을 보류한 게 단적인 예다.

다만, 정부와 유통기업, 소비자 모두가 이번 일을 계기로 한번쯤 신뢰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방안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논란의 KC인증은 모든 나라가 자국에 안전한 제품을 유통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 인증이다. 중국 CCC인증과 마찬가지다. 이 같은 제도적 뒷받침으로 쌓인 신뢰의 가격 덕분에 중국 소비자도 ‘최신 한국 신문’으로 포장된 한국산 제품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정부는 지금껏 쌓아온 이 신뢰의 가치를 훼손할 섣부른 정책 발표를 반복해선 곤란하다. 국내 유통사도 C커머스의 약진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C커머스 사업자 역시 국내에서 계속 성장하려면 스스로 ‘싸지만 믿지 못할’ 중국산에 대한 소비자의 오랜 편견을 바꾸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