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일본인, 이미 끝난 일"…北논리에 발끈하는 日[김보겸의 일본in]
by김보겸 기자
2021.10.10 14:50:00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해야" 기시다 첫 국정연설에
"왜 자꾸 끝난 일 들고오나" 北외무성 불쾌감 표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때 고집하던 논리 돌려받은 격
납치문제 부각해 총리 오른 아베, 기시다가 계승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내각이 출범하자마자 불안불안한 모습이다. 20년만에 꼴찌 수준인 지지율로 출발하는가 하면, 국민에게 국가관을 밝히는 첫 국정연설에선 마이니치신문과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에 낙제점을 받았다.
“납북 일본인 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라고 야심차게 외쳤지만 정작 북한은 “이미 끝난 일을 왜 자꾸 들고오느냐며 첫 단추를 잘 채우라(북한 외무성)” 으름장을 놓고 있다.
|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의 모친 요코타 사키에씨와 부친 요코타 시게루씨(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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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입장은 이렇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방북 때 인정하고 사과도 했다, 돌려 보내기까지 했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당시 북한은 일본인 13명이 납치됐으며 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5명은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일본으로 귀국했다. 다만 일본에선 납치 피해자가 이보다 많은 17명이라는 입장이다.
많이 들어본 논리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일본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한국에선 정작 당사자가 빠진 합의라며 비판했지만 일본은 “국가 간 합의이니 더는 문제 삼지 말라”며 오히려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고집하던 논리를 고스란히 돌려받은 격이 됐다. 사실 일본인 납북 문제에 대한 북한 입장은 한결같다. 지난 2019년 북한 입장을 공식 대변하는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납치자 문제로 말하면 도리어 우리가 일본에 대고 크게 꾸짖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일제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등을 언급하며 “일본의 국가납치테러 범죄의 가장 큰 피해자가 우리 민족”이라고 주장하면서다. 북한은 과거사 해결 없이는 일본과의 대화도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 지난 2002년, 평양에서 사상 최초로 북일정상회담이 열렸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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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일본 관계가 좋을 때도 있었다. 19년 전인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사상 최초로 북일 정상회담에 나서기도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납치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하던 북한은 정상회담에서 납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경제협력이 절실하던 북한이 통 크게 결단을 내리면 일본 여론도 우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김정일의 판단에 따른 결정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납치사실 인정은 우익들의 먹잇감이 됐다. 일본은 ‘전범 가해국’에서 ‘납치 피해국’으로 자신들을 새롭게 포지셔닝했으며, 수교 이전에 납치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우익들의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일본 내 한국인 괴롭힘도 심해졌다. 이때 반북 여론에 편승해 반사이익을 얻은 인물이 아베 신조 전 총리다.
| 아베 신조 당시 관방부장관이 2002년 북일정상회담에 동행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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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납북 일본인 문제가 대대적으로 떠오른 건 아베의 공이 컸다. 지난 1988년 자민당 간사장인 아베 신타로 의원이 아들이자 비서였던 아베가 “북한으로 납치된 딸을 구해 달라”며 찾아온 한 부모를 만난 게 계기가 됐다.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아베의 관심은 1993년 국회의원 당선 이후에도 이어졌다. 도쿄대나 게이오대, 와세다대 출신이 대부분인 일본 정치인들 사이에서 세이케이대를 나온 아베를 두고 동료 정치인들이 “공부 못 하는 아베가 경제나 사회는 뒷전이고 정치불명의 납치 문제를 다룬다”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공식 인정하자 아베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북한의 인권침해를 부각하며 우익 중심으로 “수교 이전에 일본인 납북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자 이를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 적극 이용한 것이다. ‘납치 문제는 아베가 가장 잘 안다’는 여론에 힘입어 아베는 고이즈미를 이어 2006년 일본 총리에 올랐다.
북한이라는 외부의 적을 공격함으로써 아베는 리스크가 큰 선택을 했지만 뒷수습이 문제였다. 북한으로 납치된 일본인들을 귀환시키겠다고 주장해 총리에 올랐으니 약속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돌아선 북한은 냉정했다. 지난 2019년 아베는 북일평양선언 당시 서명자인 고이즈미와 김정일 이름 대신 새 시대에 어울리게 서명자를 바꾸자 제안했다. 북한의 반응은 묵묵부답.
| 2019년 미국과 북한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을 열었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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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까지 일본에 대한 북한의 앙금은 깊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과 미국, 중국 등 한반도 관련국과는 정상회담을 했다. 한국은 특수관계니까, 미국은 대면해야 할 정도로 적대관계라서, 중국은 동맹이라는 각각의 이유에서다. 하지만 1차와 2차 집권기를 합해 8년 반이라는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아베와는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다. 일본과는 현재가지도 미수교 상태다.
기시다가 출범하자마자 북한이 날을 세운 이유도 이와 관련 있다. 안보관에 있어서는 아베와 차이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이 기시다다. 내각 면면만 봐도 그렇다. 일제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등 한일관계 현안을 맡은 주무장관들이 대부분 극우 인사로 채워지면서다.
아베부터 스가, 기시다까지 “김정은과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북한 생각은 다르다. “북일 간 현안의 기본은 과거 일본이 조선사람들을 대상으로 감행한 일본군 성노예생활 강요, 강제납치연행, 대학살과 같은 특대형 반인륜 범죄를 비롯해 우리 민족에게 끼친 헤아릴 수 없는 인적, 물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 철저한 사죄와 배상을 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북한 외무성 입장에 비춰 볼 때, 북한은 조건 있는 대화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