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협약의 아이러니… 상생 대신 ‘각자도생’ 택한 대형마트
by김무연 기자
2020.08.04 05:15:00
신규 출점 시 전통 시장 상인회 등과 상생협약必
이마트 신촌점, 주변 전통 시장 없고 상인회 반발 적어
롯데, 상암 복합쇼핑몰 건립 전통 시장 반대에 발목
전문가 “현재 상생협약 돈 타내는 수단일 뿐”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대형마트, 복합쇼핑몰 등이 상생 협약을 피해 세력 확장에 나서고 있다. 전통 시장을 비롯한 지역 상인회의 막무가내식 반대를 설득하기 어려운데다 상생협약을 근거로 상인회가 요구하는 고액의 지원금이 부담인 탓이다. 인근에 전통 시장이 없거나 소상공인 수가 적어 상생협약을 맺는데 어렵지 않은 곳들을 파고들어 위험을 최소화하고 있다. 사실상 상생협약이 아니라 ‘각자도생 협약’으로 변질된 셈이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지난달 16일 과거 신촌 그랜드 마트 자리를 리모델링하고 이마트 신촌점을 열었다. 이마트 신촌점은 대형가전, 패션매장은 과감히 배제하고 소분 식재료와 주류 특화 매장을 강화한 혁신 매장을 도입했다. 주변에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 다수의 대학이 밀집해 1~2인 가구가 대다수란 점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이마트 신촌점은 오픈 직후 비슷한 규모의 매장 평균 일매출의 2배를 웃도는 실적을 내고 있다. 이마트 측은 해당 상권에 슈퍼 등 작은 매장은 많지만 마땅한 대형마트가 없다는 점, 대학가라는 특성상 1~2인 가구가 많고 ‘신촌르메이에르타운’ 등 대형 주거 단지 수요까지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마트 신촌점을 출점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마트가 신촌점 출점할 수 있었던 이유로 전통 시장과의 상생협약이란 걸림돌이 없다는 점을 꼽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가 출점을 위해 제출한 지역협력계획서를 검토할 때 전통 시장 등이 포함된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의 의견을 청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지자체는 협의회의 의견을 바탕으로 대형마트에 개선을 권고할 수 있다.
문제는 지자체의 개선 권고가 사실상 강제성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중소상인들의 표심을 고려해야 하는 지자체장은 전통 시장 상인의 항의를 무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협력계획서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라고 권고하는 방식으로 대형마트의 출점을 막을 수 있다.
|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상암 롯데몰 부지 모습.(사진=이데일리DB) |
|
실제로 롯데쇼핑이 지난 2013년부터 추진해 온 상암 복합쇼핑몰 설립은 지역 전통 시장의 반대에 부딪혀 7년이나 지연됐다. 롯데쇼핑은 지난 2013년 상암택지개발지구 내 3개 필지(2만644㎡, 약 6245평)를 1972억원에 매입해 롯데백화점, 롯데몰, 롯데마트, 롯데시네마 등을 포괄하는 종합 쇼핑몰을 세우려고 했다.
다만 인근 전통 시장 17곳 중 한 곳이 지속적으로 반대를 표명했고 서울시도 인근 전통시장과의 상생협약에 대한 합의를 맺도록 압박했다. 법원이 조정에 나섰지만 서울시는 관련 결정을 차일피일 미뤘고 감사원이 서울시의 시정을 권고한 끝에 지난달 16일 마포구청에 상암 롯데몰 건립 관련 세부계획안을 접수했다. 시장 한 곳의 반대 때문에 약 7년 여 가까이 공사가 미뤄진 셈이다.
반면 이마트 신촌점 근처에는 전통 시장이 없어 지역 소상공인과 상생협약을 맺기가 비교적 수월했단 평가다. 이마트 신촌점의 경우 지난 2월 경기서부슈퍼마켓협동조합과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신촌 근처에는 큰 규모의 전통 시장이 없는데다 약 2975㎡(900평) 이하의 준대규모점포의 경우 전통 시장과 상생협약을 맺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전통 시장 상인회가 대형마트 설립을 반대하는 경우 실질적으로 신규 출점은 어렵다. 신촌에 유력한 대형 전통시장이 있었다면 신촌점 출점은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상생 지원금 등을 지원하더라도 일부 다른 상인들이 별도의 조합을 만들어 협상에 나서는 등 애로 사항이 많다”라고 짚었다.
업계에서는 대형마트 입점으로 주변 상권이 활성화하면 전통 시장에도 이득이 된다고 보고 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대형마트가 출점해 100명의 고객을 유치할 경우 주변 전통 시장에 유입되는 신규 고객이 14.56명이 느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형마트와 전통 시장을 동시에 이용하는 대형마트 고객의 경우 출점 1년 후 26%에 그쳤지만 출점 3년이 지나면 39%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현재 상생 협약은 지원금을 타내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는 것이 유통 업계의 시각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전통 시장 상인회 가운데에도 대형마트와 협의해 주차장을 함께 이용하는 대신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옮기는 데 합의를 해주는 등 양보를 해주는 곳들도 많다”라면서도 “일부 부동산 부자들이 상가들을 다수 인수해 상인회 대표로 나서는 등 폐해도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전통 시장과의 상생을 대형마트에게만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형마트가 자금 등을 지원하는 만큼 전통 시장에서도 자신들만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획안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상생협약을 지원금을 타내기 위한 수단에서 시장의 자생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달리 봐야한다는 설명이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전통 시장 상인회는 대형마트가 상생협약에 따라 지급한 자금을 이용해 어떤 식으로 시장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청사진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한다”라면서 “현재의 상생협약은 단순히 수익을 나눠갖는 게 불과하므로, 커뮤니티 공동체로서 공유하는 공통 목적을 설정해야 상생협약에 의미가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