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깍째깍' 6개월 미뤘둔 빚폭탄 ‥부실 방아쇠 당기나

by장순원 기자
2020.06.29 06:01:00

코로나 장기화에 대출 회수 딜레마
기업들 매출 줄며 빚 갚을 능력 뚝
정부, 상황 지켜본 뒤 재연장 결정
금융권 "준비시간 필요, 결정 빨라야"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코로나가 종식됐을 때를 고려한 A안과 코로나가 제대로 끝나지 않을 때의 B안, 또 현재보다 악화했을 때 C안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금융회사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은성수 금융위원장)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미뤘던 대출 만기가 다가오면서 정부와 금융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충격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회수에 돌입했다가 자칫 부실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어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코로나가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큰 만큼 대출 만기를 계속 미룰 수도 없는 처지다. 부담을 짊어진 금융권은 정부가 빠른 결정을 내려주길 원하는 눈치다. 하지만, 정부는 코로나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은 코로나 피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4~6월 만기가 돌아온 대출 48조원을 6개월 연장했다. 이 가운데 38조원은 시중은행, 10조원은 기업은행,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몫이다. 약 581억원 규모의 이자도 유예된 상태다. 하지만, 이런 6개월의 유예 조치는 말 그대로 원금 상환과 이자 납입을 미뤄둔 것이다. 당장 10월부터 한꺼번에 원금과 이자 상환에 내몰릴 수 있다.

금융권은 보통 매출이나 신용상태의 변화가 없다면 만기를 연장해주는 편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들이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는 게 변수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충격파가 내수산업은 2분기, 수출산업은 3분기까지 영향을 준다고 가정할 경우 중소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작년 4.9%에서 2.8%로 반토막이 날 것으로 추정됐다.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 비중 역시 작년 32.9%에서 47.7%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이 비율이 1 미만이라는 것은 영업해봐야 대출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이란 뜻이다. 자영업도 상황이 비슷하다. 외환위기 수준의 실업상태가 지속하면 자영업 가구 역시 사업소득이 급감해, 18만4000가구의 금융부채 37조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경인주물공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대표는 “지금도 공장을 목요일과 금요일 돌리지 않고 있는데 하반기부터 더 어려워질 전망”이라면서 “민간 은행은 이런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같은 일률적 지원을 계속 떠안고 가기도 어렵다는 게 딜레마다. 지금은 만기연장과 이자납부 유예의 짐을 오롯이 금융권이 부담하고 있다. 코로나가 연내 종식되지 않으면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무리가 갈 수 있다. 한은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3.2%로 급락하면 대출연체 등으로 금융사의 신용손실이 44조5000억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중은행의 고위 임원은 “당장 은행 건전성을 논할 정도는 아니다”라면서도 “코로나 정국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덩치가 큰 은행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 같은 소형 금융기관은 한두 달 만 이자를 받지 못해도 경영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당장 한계에 놓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부터 부실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 말 기준 은행권의 대출 연체율이 예년과 비슷한 0.4% 수준이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데도 은행 연체율이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이유 역시 대출·보증 일괄연장의 착시효과가 크다는 게 은행권의 해석이다.

은행권에서는 중기·소상공인에게 1000건의 대출해 줬을 때 평균 4~5건 정도는 갚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코로나 피해까지 겹친 상황에서는 부실비율은 더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평소였다면 매달 자연스럽게 걸렀을 부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10월부터 한꺼번에 쏟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은행 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미룰수록 부실 눈덩이가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미뤄뒀던 이자를 한꺼번에 갚으면 부담이 크니, 나눠서 갚도록 해주겠다는 정도의 방향만 잡아놓았다. 이자납입을 유예한 곳은 10월부터 매달 두달치를 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일단 7~9월 코로나와 경제 상황을 좀 더 지켜본 뒤 만기 재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생각이다.

금융권은 가급적 빨리 결정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산이나 자금조달 계획 등 대비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결국 은행권은 정부의 결정만을 기다리게 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하면, 지난 3~4월처럼 은행 창구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재현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코로나 지원은 지속하되, 일괄 연장 방식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경쟁력이 없는 곳도 정부 지원을 받아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 기업만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에 대출만기를 연장해봐야 결국 자금과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 될 수 있다”며 “코로나가 길어진다고 생각하면 정책지원 역시 시장원리에 맡겨두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금을 감당할 수 없고, 옥석가리기도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만기를 일률적으로 연장했다가는 은행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은행이 부실해진다면 경제에 미칠 파장은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