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국회 문턱 넘은 은산분리‥재벌 사금화 논란은 남아
by장순원 기자
2018.09.21 07:00:00
文대통령 1호 개혁 지목‥천신만고 끝 국회 통과
대기업집단은 막되 ICT 비중 높으면 진출 허용
재벌사금고화 논란 부담‥대주주적격성 심사 관건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은산(銀産) 분리 규제(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완화를 담은 특례법이 천신만고 끝에 국회의 벽을 넘었다. 산업자본의 인터넷은행 진출 문호가 확 넓어지며 네이버·넥슨 같은 정보통신(ICT) 대기업의 진출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재벌 사금고화나 대주주 심사요건을 놓고 논란의 씨앗이 남아 있다.
국회는 20일 본회의를 열어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2015년 11월 카카오와 KT를 인터넷은행 사업자로 선정하면서 관련 특례법 제정을 추진한 지 3년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은산분리 완화를 통한 금융 혁신을 요청한 뒤 약 40여일 만에 1호 결과물이 나온 셈이다.
법안에는 인터넷은행에 한해 현재 4%(의결권 기준)로 제한된 산업자본의 은행 보유지분 상한을 34%로 높이는 내용이 담겼다. 지분보유 가능 기업은 경제력 집중 억제와 정보통신업 자산 비중 등을 고려해 시행령에서 규정하기로 했다. 또 인터넷은행은 대주주에 돈을 빌려주거나 대기업 대출을 할 수 없다.
금융위원회는 상호출자제한집단(자산 10조원 이상)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되 ICT 자산 비중이 50%가 넘는 기업엔 예외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시행령에 담을 예정이다. 이른바 재벌의 참여는 차단하면서 ICT기업을 적극 끌어들여 금융권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의도다. 이렇게 되면 삼성이나 SKT 같은 대기업은 인터넷은행 진출이 막히지만 네이버·넥슨·넷마블 같은 ICT기업은 인터넷은행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된다.
정부의 후속 입법 작업이 마무리되면 카카오뱅크는 카카오, 케이뱅크는 KT가 대주주 지위로 올라설 수 있게 된다. 이들은 그동안 은산분리 규제에 묶여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제3의 인터넷은행 출현도 빨라질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9~10월 중 금융산업경쟁도평가위원회에서 제3인터넷은행 인가 방안을 검토하고 희망 기업의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앞서 인터넷은행 설립에 도전한 바 있는 인터파크나 네이버 등이 후보군이다.
하지만 재벌사금고화 논란은 걸림돌이다. 재벌 기업의 인터넷은행에 대한 지분보유 금지 조항을 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넣었기 때문이다. 금융권 노조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재벌의 사금고화 우려를 놓고 반발이 거세다. 정권이 바뀌면 입맛대로 시행령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있다. 특례법에는 대주주 적격성 요건으로 최근 5년간 금융관계법령,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경가법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자는 제외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카카오와 KT 모두 공정거래법을 어겨 벌금을 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사안의 경중을 판단해 허가를 내줄 수는 있다. 자칫 특혜시비를 부를 수 있고 심사결과에 따라 인터넷은행 업계의 판도가 달라질 수도 있어 금융위가 적극적으로 심사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는 여전하다. 결과에 따라 자칫 1·2호 인뱅 운영회사가 1대 주주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거나 심사기간만 늘어질 수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움직인던 KT나 카카오가 대주주로서 적극적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남은 적격성 심사과정에서도 규제완화의 취지를 살려 전향적인 판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