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하다 보면 미각 살아나 살쪄

by조선일보 기자
2006.12.12 12:00:00

항우울제 복용환자 단맛·신맛 감각 20% 이상 좋아져
미각 테스트로 환자에 적합한 치료제 처방할 수 있어

[조선일보 제공] 한 해가 저무는 즈음이 되면 우울해지는 사람이 늘어난다. 일도 많이 했고 그에 따라 풍성한 성과가 기대되는 이 계절에 왜 우울해지는 것일까. 또 우울해지면 덩달아 입맛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호르몬 분비가 계절에 따라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최근엔 우울증과 입맛의 상관관계가 밝혀져 좀 더 효과적인 우울증 치료가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겨울이 오면 겨울잠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 일조량(日照量)이 줄면서 수면 조절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기분과 관련된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는 줄어든다. 일조량이 부족한 북유럽 사람들에서 우울증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사들은 겨울철엔 가능한 한 햇볕을 많이 쬐는 게 우울증을 막는 지름길이라고 충고한다. 햇볕을 쬐면 비타민 D가 생성돼 뇌 속의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병원에서는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항(抗)우울제와 함께 햇빛보다 다섯 배나 강한 빛을 쏘아주는 방식으로 치료를 한다.

가을, 겨울에 심해지는 우울증은 계절적 우울증으로 불린다. 보통 우울증 환자는 잠을 잘 못 자지만, 계절적 우울증 환자는 멜라토닌 분비가 늘어 잠이 더 많이 온다. 또 계절적 우울증은 식욕이 왕성해지는 경우가 있는 반면 일반적인 우울증은 입맛을 사라지게 한다. 그러나 항우울제 치료를 받으면 식욕이 다시 살아나면서 살이 찐다. 최근 영국의 연구팀이 이를 이용해 보다 효과적인 우울증 진단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 영화‘초콜릿’에서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오른쪽)는 엄격한 종교계율과 금기로 둘러싸인 우울한 마을에 자신이 만든 초콜릿으로 활기를 불어넣는다. 최근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단맛과 신맛에 대한 감각이 20%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살이 찌는 것도 미각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영국 브리스톨대의 루시 도널드슨 박사 연구팀은 20명의 건강한 사람들에게 한 번은 아무런 효과가 없는 가짜 약을 먹이고, 한 번은 항우울제를 먹인 뒤 미각을 시험했다.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또는 노르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하는 약물이다.

연구팀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시키는 항우울제는 단맛과 쓴맛을 더 잘 느끼게 했으며, 노르아드레날린 촉진제는 쓴맛과 신맛에 대한 감각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저널 오브 뉴로사이언스’ 최신호에서 밝혔다. 세로토닌은 단맛 수용체가 신호를 더 잘 전달하도록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실험 결과 세로토닌 분비 촉진제를 먹은 경우 실험 전보다 27%나 낮은 농도의 단맛까지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르아드레날린 분비 촉진제를 먹은 사람은 22%나 낮은 신맛에도 반응했다. 연구팀은 노르아드레날린 역시 신맛 수용체의 신호 전달을 돕는 것으로 추정했다.



우울증 환자가 미각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우울증 치료제가 미각을 되살린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밝혀졌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좀 더 효과적인 우울증 진단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병원에서는 신체 이상이나 감정 상태를 파악해 적당한 우울증 치료제를 처방하지만 처음 처방한 약이 효과적인 경우는 60~80%에 그친다고 한다. 게다가 치료제를 복용한지 한 달은 지나야 그 약이 효과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각 테스트를 통하면 한 두 시간 안에도 어떤 약이 효과가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세로토닌 촉진제가 효과적인 환자라면 금방 단맛에 대한 감각이 살아날 것이며, 노르아드레날린의 경우엔 신맛에 예민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식음료 회사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식음료 회사는 당분을 적게 하면서도 단맛을 더 느끼게 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만약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성분을 가미하면 단맛에 대한 감각이 더 예민해져 당분이 줄어도 똑같은 단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