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기재부 혁신하라
by최훈길 기자
2020.04.28 06:00:00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8년 12월11일 취임식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닐 것”이라며 “제가 앞장서겠다. 좌고우면 없이 앞을 향해 함께 나아갑시다”라고 말했다.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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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기획재정부가 추진하는 통 큰 경제정책이 안 보입니다.”
최근 만난 한 정부 고위관계자가 내놓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정책 행보에 대한 평가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 관련 논란만 크게 불거졌을 뿐, 국가 미래를 대비하는 선 굵은 경제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가 챙겨야 하는 회의가 너무나 많다. 지난 2월 한달 간 홍 부총리가 참석한 공식 회의는 코로나19 대응 경제관계장관회의 등 총 23차례에 달했다. 비공식 회의, 각종 브리핑·간담회, 국회 일정을 빼고도 평일 기준으로 매일 한 차례 이상이다. 거시경제를 봐야 하는 부총리가 마스크 보급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통 큰 정책을 고민하고 연구하고, 검토할 시간을 빼기가 쉽지 않다.
발표하는 정책 내용은 복잡하고 많은데 실제 효과는 미미한 것도 문제다.
일례로 작년 7월에 발표한 세법개정안은 보도자료만 276쪽에 달한다. 공모리츠 현물출자 과세특례 기한 연장 등 각종 수치를 수정하는 내용이 빼곡하다. 담당 공무원도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이같은 세법 개정에 따른 감세 효과는 1405억원(2020년 기준)에 그쳤다. 올해 국세 수입 예정액(291조2000억원)의 0.05%에 그치는 ‘찔끔 감세’다.
노사정 간 사회적 대타협이 부재한 탓에 민감한 경제 이슈를 힘 있게 치고 나가지 못한 점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홍 부총리는 취임 직후인 2018년 12월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직무급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속가능한 임금체계를 만들겠다며 약속한 제도다. 하지만 340개 공공기관 중 직무급제를 전면 도입한 기관은 현재 10곳도 안 된다. 공무원·공공기관의 호봉제 폐지는 노조 반발에 부딪힌 상황이다. 그렇다고 여당이 힘을 실어주는 것도 아니다.
돌부리가 발끝마다 채인다고 갈 길을 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원격의료 등 비대면 진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원격의료를 추진하려면 의료 민영화 논란, 의료계 반발 등 사회적 갈등부터 풀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정년연장 관련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군·교사 규모 조정, 노인연령기준 상향, 공무원·군인연금 개혁 등은 코로나 사태가 지나면 언제든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고민해야 할 주제다.
스웨덴 국세청 공무원 레나르트 위트베이와 안더스 스트리드가 함께 쓴 ‘스웨덴 국세청 성공스토리’에 따르면, 스웨덴 국세청이 ‘세금 사냥’ 기관에서 국민 10명 중 8명(83%)의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자발적 혁신 덕분이었다.
저자는 “(정부 스스로)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성공의 방법”이라며 “고객(국민)의 입장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재부도 국민을 보며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초등학생들이 들어도 단박에 이해할 수 있도록 정책을 쉽게 알려야 한다. 국민들에게 민감한 한 주제는 공론화해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긴 안목이 필요한 장기 과제는 끈질기게 이슈를 제기해 국민적 관심을 환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홍 부총리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책회의 구조조정’부터 하길 바란다.
홍 부총리는 오는 29일 첫 ‘경제 중대본’ 회의를 주재한다.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을 논하는 자리다. 논란·오해·상처를 훌훌 털고 좌고우면 없이 통 큰 경제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