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의 맛있는 혁신]'대박' 냉면집은 '육수'부터 다르다
by최은영 기자
2018.08.09 06:30:00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한 유명 음식 칼럼니스트에게 연락이 왔다. 한국의 평양냉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흔쾌히 그러자 했고, 몇가지 질문과 답을 이메일로 주고 받았다. 먼저 평양냉면에 대한 나의 기억과 ‘한국인들이 물냉면보다 평양냉면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뭔지를 물었다.
그는 물냉면을 ‘mul-naengmyun’이라고 표기해 보냈다.
먼저 내 답은 이랬다. 지금 서울에서 먹고 있는 평양냉면은 실은 평양냉면이 아니라, 평양냉면의 영향을 받은 ‘서울냉면’이라는 것이었다. 그 근거로 나는 육수를 들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부산이 고향인 내가 처음으로 냉면을 먹었던 때는 대략 1970년대 후반 창선동의 W면옥과 서면의 S냉면집이었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에게 어른들이 설명해 준 것은 평양냉면의 국물은 꿩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섞어 만드는데, 이제는 꿩이 귀해져 닭이나 소를 주로 쓴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서울에서 유행하는 평양냉면 전문점은 동치미 국물은 아예 섞지 않고 고기 육수만으로 맛을 내는 곳이 대부분이다. 탈북한 옥류관 출신 윤종철 셰프는 서울 합정동에 냉면집을 냈는데, 그는 한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평양냉면은 원래 동치미를 쓴다고 수 차례 이야기했다. 그러나 ‘서울냉면’ 신봉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고기에서 뽑아낸 맑고 순수하며, 맹맹한 듯한 육향과 폭발하는 감칠맛의 육수를 신봉한다. 그들은 동치미 국물이 순수한 고기의 육향을 해친다고 여긴다. 요즘 서울서 줄을 서 먹는 냉면집의 육수는 대체로 이러한 특성을 갖고 있다.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이다. 동치미가 주재료인 것도 그러하고, 면에 들어가는 메밀도 늦가을이 제철이다. 그러나 냉장 기술이 발달한 요즘엔 더울 때 먹는 게 제격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반도의 남쪽 경상·전라권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평양냉면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함께 섞어 내는 게 일반적이다. 동치미 국물이 주는 새콤하고 시원한 맛을 즐기는 것이다.
얼마 전에 경상도 지역에 거주하는 친척들을 초청해 요즘 유행하는 ‘서울냉면’을 대접했는데, 대부분 당혹감과 함께 섭취의 곤란함을 호소했다. 경상도식 표현으로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이 음식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확연한 맛 선호의 간격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 미국인 음식 칼럼니스트에게 이런 경험담을 소개한 뒤 “당신이 생각하는 평양냉면은 현재 서울 인근에서만 유행하는 냉면이며, 최근 3년 정도 유행했고, 이제서야 확실한 음식 카테고리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가 헷갈려 하는 물냉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전에는 물냉면과 평양냉면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지만 이제 물냉면에는 평양냉면과 서울냉면, 쇠고기와 갖은 해물로 육수를 내는 진주냉면, 또한 밀가루 면과 새콤달콤한 육수를 쓰는 부산식 밀면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은 면발과 육수, 특히 육수의 차이다.
대한민국 외식 산업의 격전지 서울의 젊은 셰프들은 요즘 이 육수에 미쳐있다. 매년 늦가을쯤엔 새로운 육수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R&D)이 각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벌어진다. 어떤 고기의 어떤 부위로 어떻게 조리해야 매력적이면서도 차별화 한 육수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경쟁이다. 한식에서 육수라고 하면 주로 꿩·닭·소·해산물 등을 활용하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돼지도 차별화 한 육수 개발 R&D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돼지로 국물을 낸다고 하면 ‘글쎄’라는 반응들이 나오지만 실제 요즘 줄서서 먹는 냉면집들 중에선 꽤 많은 곳이 돼지 육수를 쓰고 있다.
셰프들은 R&D의 중간 결과물인 프로토타입 육수를 ‘팝업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의 테스트 베드(test bed)를 구축해 선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다시 R&D를 하는 것을 반복한다. 그런 다음 셰프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고 동시에 차별화 한 육수로 초여름을 타깃으로 한 새로운 냉면을 낸다. 레시피는 비싸게 팔린다. 새로운 냉면가게들이 초여름에 일제히 문을 연다. 기존의 고수들도 전열을 가다듬고 그들과 승부를 벌인다. 그 경쟁이 치열하다.
많은 셰프들이 냉면이라는 메뉴에 특히 초점을 맞추는 이유가 있다. 면이라는 음식은 오랫동안 앉아 음미하는 음식이 아니다. 빨리 먹고 빨리 나간다. 장사 좀 된다는 국수집은 좌석 회전이 하루에 30차례에 육박한다.
| 4·27 남북 정상회담 만찬 메뉴로 등장한 북한 옥류관의 평양냉면.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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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멋진 파인 다이닝 미슐랭 스타 테스토랑은 하루 2회전 이상을 내는 게 어렵다. 외식업을 예술이 아닌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자면 자연스럽게 좌석 회전이 빠른 음식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좌석 회전을 높이면서 동시에 차별화해야 돈이 벌린다. 그래서 셰프들은 냉면에, 그리고 차별화 포인트를 한국인이 사랑하는 국물, 육수에 맞춘다.
셰프들이 냉면 육수를 개발하기 위해 R&D를 하다 보니 새로운 기회가 보인다. 육수를 차갑게 해서 면을 말면 냉면이지만, 그 육수를 덥혀 밥을 말면 국밥이 된다. 국밥 역시 좌석 회전이 빠른 음식이다. 국밥의 또다른 장점은 혼자 먹어도 별로 창피하지 않다는 것. ‘혼밥’이 일반화 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매력적인 비즈니스 아이템이다. 짙은 육향과 꾸덕한 국물로 유명한 전통의 부산식 돼지국밥은 최근 젊은 셰프들의 손에 의해 깔끔하고 산뜻한 신세대 돼지국밥으로 거듭나고, 전국구 서민 음식 곰탕도 이들 손에 의해 혁신적인 맛과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옥동식 셰프, 박찬일 셰프, 임정식 셰프 등 내로라는 대한민국 대표 셰프들이 혁신적인 육수로 국밥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속속들이 젊은 국밥집이 생기고 있다. 여름 냉면과 겨울 국밥. 바야흐로 대한민국 외식업에선 육수 전쟁이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