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문재인정부 '금융억압'
by송길호 기자
2017.06.22 06:0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1960년대초 경제개발초기. 재정은 부족하고 저축도 거의 없는 현실에서 고도성장을 이루기 위한 정부의 전략은 명확했다. 은행을 자금배급소로 삼고 정책 우선순위에 따라 직접 금융자원을 동원 배분 집행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억압(金融抑壓)이 일어나고 지시금융, 배급금융 형태로 금융산업은 형해화(形骸化)된다. 관의 금융지배, 이른바 관치금융의 탄생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금융이 푸대접을 받고 있다. 금융이 정책우선순위에서 밀리며 집권세력의 관심 밖에 있다는 얘기다.이미 인사와 조직개편에서 감지됐다. 청와대 비서실 직제개편에서 선임 비서관인 경제금융비서관 직함에 ‘금융’이 슬그머니 빠졌다. 김동연 부총리,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이명박정부시절 거쳐간 바로 그 자리다. 경제팀 주요 라인에는 경제기획원(EPB)출신들이 득세한다. 정권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엔 여당 전·현직 의원들과 이재명 캠프에서 활약하던 비주류 교수들이 포진해 있다. 재무관료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어 보인다.
여기에 금융정책은 반쪽짜리다. 금융산업의 발전과 혁신을 위한 그 어떤 비전도 청사진도 없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밑그림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엔 경제민주화의 금융판 버전, 금융민주화가 차지하고 있다. 금융은 영세자영업, 중소기업 등 힘 없고 약한 계층을 지원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혁신 육성 성장 발전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통제 탕감 감면 보호의 구호만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성과연봉제 폐지에 이어 최근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결정은 금융홀대의 결정판이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에 따른 보완책으로 이를 공식화했다. 자영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카드사를 찍어눌러 수수료를 절감해준다는 발상이다. 카드수수료 강제 인하는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는 일. 결국 자영업자들의 손실을 소비자들이 떠안는 꼴이다. 근시안적 금융정책의 전형, 냉대를 넘어 억압이다.
노무현정부 동북아금융허브론, 이명박정부 메가뱅크론, 박근혜정부 핀테크 육성론 …. 방법론은 달랐고 성과도 미흡했지만 이전 정부에선 그래도 금융산업 발전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보였다. 정권 교체기마다 금융부문의 괄시를 토로하는 유사 레퍼터리가 흘러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 정부는 도가 심하다.
문재인정부의 금융박대는 기본적으로 집권세력의 오도된 인식을 투영한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독자 산업이 아닌 정책목표나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금융의 역할을 제한하는 일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정부 스스로 대선 공약을 통해 관치금융 타파를 공언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금융민주화를 위해 정책금융을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정책금융과 관치금융은 동전의 양면. 금융에 대한 단편적인 인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반백년전 최빈국 시절 형성됐던 관치금융의 논리가 선진국 문턱에선 지금까지 횡행하고 있다. 금융은 실물부문을 지원하는 수단이지만 거꾸로 그 자체 육성해야 할 산업. 1980년대초 자율 민영 개방의 물결을 타고 산업으로의 면모를 갖춘데 이어 1990년대말 외환위기 직후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독자 산업의 기반이 마련된 상태다. 타율적 관치에서 자율적 경쟁으로 전환되는 도도한 흐름. 그러나 이 정부에선 유독 금융이 전진이 아닌 퇴행의 길로 접어드는 건 아닌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