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가]人和<여러사람이 화합>없는 전략은 무용지물…솔선수범으로 신뢰 심어야

by박기주 기자
2016.07.06 06:00:00

조용병 신한은행장
인생의 나침반 된 ''6200자''
사자성어에 촌철살인 지혜
은행업 생존전략 ''풍림화산''
영업점 묶고 디지털뱅킹 전환
내실있는 성장으로 불황극복

조용병 신한은행장이 손자병법과의 인연을 설명하며 추천하고 있다.[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새로운 책을 계속 읽다 보니 점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다 보니 차라리 손자병법 같은 고전을 계속 읽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최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신한은행 본점에서 만난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손자병법과의 인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책을 통해 인생과 사회생활의 지혜를 터득했다는 그의 말을 증명하듯 인터뷰가 진행된 서가에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서적 등 1만8000여권의 책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그는 “직원들이 자신 만의 인생 지침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서와 관련된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 행장은 은행업을 총성 없는 ‘전쟁터’로 규정한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경영환경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화두이며 지금의 경영 환경은 패권주의가 난무하던 춘추전국시대와 유사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일까. 조 행장은 1995년 인사부 근무 때부터 ‘손자병법’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원전에 가장 충실하다고 평가받는 ‘세상의 모든 전쟁을 위한 고전, 손자병법’을 애독하고 있다.

그는 “시대가 바뀌어도 국가·기업·인생 등 모든 경영에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 난관을 슬기롭게 돌파하고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탁월한 전략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손자병법이 국가의 통치와 인사의 성패 등 리더십 전반을 망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13편, 6200자의 단어에 함축된 승패와 운명의 변화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성공 속에서 실패의 씨앗을 찾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리더의 덕목으로 조직의 ‘인화(人和)’를 이끌어 내는 능력을 꼽았다. 조 행장은 “아무리 뛰어난 전략도 인화가 없으면 무용지물이고, 인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 능력”이라며 “리더는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솔선수범으로 용기와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은행권은 저성장 기조의 장기화, 핀테크의 등장 등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다. 조 행장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풍림화산(風林火山)’을 언급하며 이런 어려운 환경일수록 유연한 경영 전략이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더는 과거의 성공방식이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풍림화산은 △군사를 움직일 때는 질풍처럼 날쌔게 하고(風)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있으며(林) △적을 치고 빼앗을 때는 불이 번지듯이 맹렬히 하고(火)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하게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山)는 의미다.

조 행장은 “바람처럼, 숲처럼, 불처럼, 산처럼, 주어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전략을 바꿔 나가야 조직이 지속 성장할 수 있다”며 “신한은행이 여러 영업점을 하나로 묶는 커뮤니티 협업체계를 실시하고, 최근 디지털뱅킹 그룹을 신설하는 등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형(形)’보다는 ‘세(勢)’에 중점을 둔 경영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형(形)이란 규모나 시스템 등 겉으로 드러난 조직의 모습을 ‘세(勢)’란 직원들의 사기 등 보이지 않는 잠재요소를 뜻한다. 즉 외형 성장보다는 내실 있는 성장에 집중해야 불황을 이겨낼 수 있다는 얘기다. 조 행장은 “한국 경제가 고속 성장하는 동안 국내 기업들은 형(形)에 집중했고 결국 큰 덩치에 비해 체질이 약해져 큰 위기에 취약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한은행은 창립 때부터 직원들의 주인정신과 팀워크 등을 조직의 핵심가치로 삼아 기존과 다른 새로운 은행을 만들었다”며 “결국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고 내실 있게 성장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용병 신한은행장이 인생 최고의 책을 꼽은 손자병법을 펴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방인권 기자]
신한은행은 최근 경영 전반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국내 ‘리딩 뱅크’로 거듭났다. 이 때문에 신한은행이 진행하는 사업 하나하나에 은행권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조 행장은 신한은행의 성장에 대해 “언제나 승리하기 위한 ‘필승전략’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필승을 위해서는 △올바른 방향 설정 △철저한 준비 △발 빠른 시행 등 세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한은행은 금융권에서는 보기 드물게 해외 사업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는데 이 같은 필승요소가 글로벌 사업에 잘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게 조 행장의 설명이다.

우선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보다 문화적으로 유사하고 한류가 잘 받아들여진 동남아를 중심으로 사업 전선을 구축하기로 한 것이 첫 번째 ‘올바른 방향 설정’이다. 또한 시장 조사와 거점 모색, 현지 관계자와의 관계 형성 등 오랜 기간의 준비 과정이 두 번째 요소인 ‘철저한 준비’이며, 진출했을 땐 잘하는 분야를 현지 시장에 접목해 작지만 빠른 성공을 이룬다는 것이 ‘발 빠른 시행’에 해당한다.

이러한 전략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게 베트남 현지법인이다. 조 행장은 “신한베트남은 1993년부터 오랫동안 공을 들였고 특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 현지고객에게 호소하는 등 대표적인 성공사례”라며 “지난해 4100만달러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고 올해 18개의 채널을 확보하면서 베트남 내 외국계 1위 은행으로 올라섰다”고 말했다.

또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를 언급하며 필승을 위해선 조직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통을 통해 조직 내 구성원의 마음마저 헤아릴 수 있어야 백전백승할 수 있다”며 “적과 싸울 때뿐만 아니라 조직을 지휘할 때도 꼭 명심해야 할 격언”이라고 설명했다.

1957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대전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4년 신한은행에 입행하며 처음 은행권에 발을 들였다. 신한은행에서 인사부장과 기획부장·뉴욕지점장 등 주요 요직을 거쳤고, 2009년 글로벌사업담당 전무를 맡았다. 이후 2011년 리테일부문·영업추진그룹 부행장을 거쳐 2012년엔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을 역임했고 지난해부터 신한은행을 이끌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