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녀와 돌싱남은 함께 일할 수 없다"

by오현주 기자
2014.09.04 08:00:25

MBA 교수들 '길거리경제학'
강소기업 경영비밀 풀어
진짜 '맞춤' 차별화 체육관
비행기로 분점 돌며 치과진료
"밑바닥서 키운 비결? 그때그때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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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사이드 MBA
마이클 매지오, 폴 오이어, 스콧 셰이퍼|320쪽|청림출판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일단 한번 신어보시라니까요.” 한국의 재래시장 풍경이 아니다. 미국 보스턴의 한 쇼핑몰에서 벌어진 실랑이다. 잠시 장면을 뒤집어보면 이렇다. 미국 명문대에서 비즈니스 전략을 가르치는 교수 셋이 모였다. 의도한 건 아니다. 한 경제학회가 끝나 돌아가려던 길이다. 비행기 시간까지 여유가 있자 근방을 둘러보기로 했다. 발단은 신발가게였다. 구경이나 하려고 들어선 그곳에서 집요한 판매원을 만난 거다. 무작정 ‘신어보라’며 막무가내다. 하지만 그 행동엔 사연이 있었다. 가게주인의 ‘암행손님’ 수법 때문이란다. 끈질기게 손님에게 상품을 권하지 않으면 점수가 깎인단다. 얘기를 들은 세 교수는 봇물 터지듯 말문을 틔웠다. 성과급, 공급업체와의 관계, 제품차별화, 경쟁력 등 MBA 수업의 단골주제를 들이댔고 판매원과 ‘고농축 세미나’까지 진행했다.

이 에피소드가 중요한 건 ‘분수령’이 됐다는 점에서다. 그간 수천명의 MBA를 배출해온 세 교수가 비로소 ‘신세계’를 발견했다는 것. 대기업을 연구하고, 그들을 컨설팅하고, 그들의 경영전략을 강의하고 또 그렇게 키운 제자들을 대기업으로 들여보내는 일이 사실상 전부였던 거다. 그러니 놀라울 수밖에. 거리의 신발가게에서도 인텔이나 사우스웨스트항공과 맞먹는 논의거리가 있다니.

그래서 세 교수는 다시 길을 떠났다. 더욱 색다른 신세계를 찾아서. 2010년부터 4년여간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길거리 소상공업의 흥미로운 전략문제를 수집하고, 해당 성공업체를 탐방하는 여정이었다. 로드무비 같은 이 장면들의 주인공은 폴 오이어 스탠퍼드대 교수, 스콧 셰이퍼 유타대 교수, 마이크 매지오 노스웨스턴대 교수. 책은 대륙횡단에서 이들이 만난 45개 강소기업이 밑바닥부터 사업을 키워온 비법을 생생한 현장스케치로 묶은 ‘영업비밀’이다.

▲제품이 다르면 파는 법도 달라야 하는데…

이젠 흔해진 경영전략 중 하나로 ‘고객맞춤’이 있다. 특정한 누구에게 딱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건데. 과연 이런 슬로건이 소상공업에서도 성과를 낼까. 세 교수가 그 과제 해결을 위해 찾은 곳은 켄터키 주 프랭크퍼트에 위치한 ‘핏 타임 포 위민’(Fit Time for Women)이란 체육관. 다른 데서도 늘 하는 ‘제품 차별화’지만 여긴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체육관 주인은 ‘차별화’가 고객이 뭘 요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고객 의사와는 상관없이 갖춰놓곤 ‘맞춤’을 내미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거다. ‘여성을 위한’으로 이름만 달아두면 여자들이 알아서 모일 거란 기대가 착각이란 것도 파악했다. 결국 명확한 집단을 타깃으로 삼는다는 MBA의 일등강령이 동네 체육관에서도 예외는 아니더란 얘기다.

▲비행기 몰고 진료 다니는 치과의사에게 배운 건…



아칸소 주 존즈버러에서는 비행기를 몰고 진료를 다니는 치과의사를 만났다. 교정클리닉을 운영하는 그는 본원 외에 열한 개 지역에 분원을 두고 순회하며 진료한다. 전략은 중앙집중식 운영과 고정비용의 분산. 덕분에 신규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영역을 넓히는 전술이 먹힐 수 있었다.

담배와 사탕류를 편의점에 공급하는 세인트조디스트리뷰팅이란 회사는 미주리 주 세인트조지프에 있었다. 이 회사의 특이점은 근무시간 조정. 회사가 선호하는 직원에게 내린 조치면서 혜택이다. 예컨대 직원 중엔 게으른 탓에 실직당한 전 남편을 둔 싱글맘이 있다. 그럼에도 이 직원은 실적이 가장 좋다. 이때 회사는 이 직원에게 밤 근무를 시키지 않을 권리와 배려를 동시에 행할 수 있다. 이 직원이 낮에 근무하는 한 ‘놈팡이’ 전 남편은 이 회사서 낮에 근무할 기회는 없다는 말이다. ‘돌싱녀와 돌싱남이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공식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전략은 진화한다…고속도로 달리며 얻은 경영통찰

“우리 셋은 이 바닥에서 미시경제학자로 통한다.” 세 교수가 기꺼이 고속도로를 달리며 경영통찰을 얻자고 나설 수 있었던 건 이 같은 정체성과 무관치 않다. 경제성장이나 미래실업률을 섣불리 예측할 필요가 없었던 것. 그래도 비즈니스를 연구하는 경제학박사에게 통상 요구되는 골칫거리는 있다. 기업이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갖추는가, 기업이 성공하려면 조직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등등.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에서 세 교수는 어떤 결론을 냈을까. ‘모든 전략 문제의 해답은 그때그때 다르다’다. 이에 따르면 ‘관건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고 ‘문제의 해답이 ‘그때그때 다르다’가 아니라면 그건 전략문제가 아닌’ 게 된다. 왜냐고? 전략문제에 해결이란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오늘의 전략을 내일에 적용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소기업이 시장에 나서려면 경쟁사보다 품질을 높여야 할까’란 질문이 있다고 하자. 세 교수의 대답은 ‘아니다’다. 가령 월마트는 품질보다 가격으로 경쟁한다. 반면 저가형은 결코 출시하지 않는 애플도 있다. 그렇다면 소기업이 죄다 미니 월마트나 미니 애플이 돼야 하느냐는 거다. 결국 ‘기업과 시장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거다.

월가에서 배우는 것만 정답은 아니라는 세 교수의 주장이 수십가지 사례로 엮여 ‘거리경제학’의 의미를 키웠다. 작은 것은 흠이 아니란 판단, 그걸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철학은 소상공인의 공통어였다. 한마디로 깔끔히 요약하면 ‘청소업체는 MIT 졸업생을 채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못한다’가 아니다, 어디까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