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이룬 윤증현..`본게임은 지금부터`
by김기성 기자
2009.03.08 11:30:07
`2기 경제수장` 윤 장관 취임 한달 맞아
`신뢰회복 소통`..솔직함과 노련함 돋보여
주변 여건 `산넘어 산`..`봄은 아직 멀었다`
[이데일리 김기성기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외환위기 이후 최대 시련기에 직면한 한국경제의 사령탑을 잡은 지 꼭 한달이 되어간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시작된 그의 한달은 눈코 뜰새없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사회 각계각층을 만나 위기탈출의 묘수를 짜내느라 불철주야로 뛰어다녔다. 무엇보다 가슴을 먼저 열고 그들의 조언과 하소연을 경청했고 "지혜를 달라"며 몸을 낮췄다.
그가 내걸었던 기치인 정부의 신뢰회복을 위한 `솔직한 소통` 없이는 국민의 힘을 모을 수 없고, `전대미문의 경제난` 역시 쉽사리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알릴 것은 숨긴 없이 알리고, 이를 통해 바꿀 것은 바꿀 수 있도록 국민들을 설득하겠다는 의지다.
한편으론 소신을 굽히지 않는 선굵은 그의 스타일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우리 정치현실에서 관료라면 입에 담기 힘든 "깽판 국회"라는 발언은 `정면돌파형`이라는 윤 장관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준 사례다.
윤 장관은 경기회복을 위한 과감한 수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내수 진작을 위한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정면돌파의 대상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불과 한달 사이에 주변 경제여건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내년까지 글로벌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동유럽발 부도위기와 투자은행에서 상업은행으로 번지고 있는 미국의 제2차 금융위기는 전세계를 또다시 공포감에 떨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은 작년 11월 이후 4개월 연속 두자릿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으며, 일자리 감소는 매월 확대되고 있다.
소비와 투자 역시 추락세다. 윤 장관 취임 당시 1380원선이었던 달러-원 환율은 한달새 1600원에 육박, 우리 경제의 위기설을 부채질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산넘어 산이다.
윤 장관이 경제난 극복의 묘약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아직은 백약이 무효한 한계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그의 한달이 직면해 있는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 `신뢰회복 위한 소통`..솔직함과 노련함 돋보여이명박 정부 2기 경제팀의 수장인 윤 장관은 1기 경제팀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됐던 `경제팀내 또는 시장과의 소통`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솔직함과 진정성을 통해 정부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의 고통분담과 의지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는 판단에서다.
그가 취임 당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3%에서 -2%로 대폭 낮춘 것은 이런 맥락이다. 근거없는 낙관론은 접고 솔직한 현실인식을 제시, 소통의 밑거름을 깔았다.
그 다음부턴 신뢰회복을 위한 숨가쁜 행보를 시작했다.
취임 다음날 새벽, 경기도 성남의 인력시장을 찾아 하루 벌어 살기 힘든 일용직 근로자들을 격려하면서 지원을 약속했다. 오랜 갈등 관계에 놓여있는 한국은행을 재정부 장관으로서 11년만에 전격 방문한 것은 솔직함을 넘어 한은과 위기극복을 위해 공조해 나가겠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시장에 던진 노련함의 반증이었다.
경제연구기관장과의 만남에서는 "어떤 대안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지 지혜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고, 경제5단체장의 만남을 통해 재계의 목소리를 들었다.
윤 장관의 소통 철학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한중일 3개국` 재무장관회의에서는 공동 의장의 자격으로 아시아 외환위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다자화 기금 규모를 종전의 800억달러에서 1200억달러로 증액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또 한국 경제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쏟아내는 서울주재 외신기자들과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면서 앞으로 오해의 불씨를 없애기 위해 정부가 먼저 다가서겠다고 약속했다.
재정부-금융위원회-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이어지는 경제팀내 삼각편대 운영도 중구난방식이었던 1기 경제팀과는 달리 일사불란한 목소리가 나왔다. 윤 장관을 비롯해 진동수 금융위원장, 윤진식 경제수석이 오랜동안 한솥밥을 먹은 옛 재무부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윤 따거(큰 형의 중국식 발음)`라는 별칭다운 윤 장관의 리더쉽이 배경이라는 게 안팎의 평가다.
◇ 주변여건은 `첩첩산중`..`봄`은 아직 멀었다윤 장관은 취임 한달 사이에 `소통의 미학`을 발휘할 수 있는 근간은 마련했다. 하지만 소통은 경제난 극복을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게다가 주변 환경은 여전히 첩첩산중에 휩싸여있다. 오히려 글로벌 경제위기는 개선되기는 커녕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가 기대를 걸고 있는 하반기중 경기회복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는 분위기다. 극심한 불확실성이 올해를 넘어 내년으로 치닫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진 것.
따라서 윤 장관의 고민은 깊을 수 밖에 없다. 당장 달러당 1600원에 육박하는 등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넘나드는 외환시장의 안정이 최대 당면 과제로 지적된다.
윤 장관은 "외환보유고 2000억달러와 미국 일본 중국과 맺고 있는 총 900억달러의 통화스왑 등을 감안할 때 대외지급능력이 충분하다"며 섣부른 외환시장 개입보다 외화유동성 공급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통화스왑 체결을 추진중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또 "환율(상승) 문제는 수출 확대의 동력이 될 수 있다"며 고환율 용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 장관의 이같은 환율에 대한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대외 악재가 계속 터지고 있어 환율 불안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3월 위기설` 처럼 우리경제가 주기적인 외화유동성 위기설로 홍역을 치룰 공산이 커진다. 정부의 반박과 해명에도 '한국의 단기외채가 외환보유액에 거의 육박해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외신들의 의구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터라 더욱 그렇다.
정부가 은행과 공공기관의 해외차입을 독려하기 위해 은행의 외화채권 보증 연장과 공공기관 해외차입 제한 완화 등 제도적 지원을 하고 있고,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도 서두르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삭풍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정부의 계획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개연성도 있다.
정부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일자리 지키기 및 창출도 시험대다.
윤 장관은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듯이 잡셰어링(일자리나누기)이 올해 우리의 시대정신"이라며 일자리 지키기에 `올인`하고 있다. 또 25조~30조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는 추경에서 일자리 지키기가 사회안전망 확충, 중소기업 및 영세자영업자 지원, 신성장동력 확충을 제치고 핵심에 들어있다.
이와함께 정부가 강력히 추진중인 공기업 대졸초임 삭감은 대기업 등 민간기업으로 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대졸초임 삭감이 신규 채용 확대에 있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윤 장관이 내수 진작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교육 의료 등 서비스산업 규제개혁의 경우 윤 장관의 스타일 대로 설득과 정면돌파가 병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집단의 반발을 순조롭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밖에 ▲위기 극복후 산업경쟁력 유지를 전제로 한 실효성 있고 신속한 구조조정 ▲중소기업 신용경색 해소 ▲투기 재발을 막는 범위내에서의 부동산경기 활성화 ▲취약계층 대폭 확대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확충 ▲미래를 위한 신성장동력 마련 등도 윤 장관이 해결해야 할 우선과제로 꼽힌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 왔고, 정책 추진력도 기대된다. 환율은 지금 상황에서 누가 하더라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윤 장관의 한 달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민간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지금의 위기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오래갈 수 있다는 점을 정책 결정에 반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윤 장관은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았다"고 희망을 외치고 있다. 몸과 마음이 힘들수록 국민들이 희망을 잃게 해선 안된다는 경제 수장으로서의 책임감과 각오라고 볼 수 있다. `봄`을 앞당기기 위한 그의 묘책이 무엇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