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6.07.26 08:48:24
‘국가대표 자장면 춘장’ 60년… ‘사자표’ 영화식품 왕학보 사장
[조선일보 제공] 미국 시카고의 유명 중국음식점인 ‘대양장’ 조내복 사장은 춘장(키워드 참조)만큼은 꼭 한국산 ‘사자표’를 쓴다. 그는 “사자표 아니면 자장면의 깊은 맛이 안 난다”고 했다. 대양장은 그냥 중식당이 아니라 ‘한국식 중식당’이다. 뉴욕의 삼원각, 보스턴의 북경반점 같은 ‘한국식 중국집’은 북미 곳곳에 퍼져 있고, 일본에도 적지 않은 숫자가 있다. 이들은 처음엔 교민을 상대로 했다. 하지만 지금은 현지인도 ‘한국식 중국음식’을 찾아 몰려든다. 외국인 고객을 끌어 모으는 바탕에는 한국식 자장면을 만들어낸 ‘한국식 춘장’이 있다.
◆충성도 높은 사자표 고객들
중국에 자장면은 있지만 ‘한국식 자장면’은 없다. 중국의 춘장(사실은 첨면장)은 우리와 달리 검은색이 아닌 누렇거나 허여멀겋고, 맛도 다소 달고 텁텁하다. 조선호텔 중식당인 ‘호경전’의 조내성 주방장은 “한국식 춘장은 1940년대 말 한국의 화교(華僑)가 캐러멜을 넣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냈다”면서 “주방장들은 향미(香味)뿐 아니라 볶을 때의 손맛도 사자표에 길들여져 있다”고 말했다.
사자표 춘장을 만드는 영화식품은 1948년 화교 1세인 고(故) 왕송산 회장이 창업했다. 왕 회장이 만든 한국식 춘장은 지금 20개 가까운 경쟁 제품을 물리치고 200억원에 이르는 춘장 시장의 절대 강자 자리를 60년 가까이 지켜오고 있다. 최근 대기업인 대상이 ‘품질, 가격, 서비스에서 모두 앞서는 제품’이라며 업소용 춘장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고전 중이다. CJ도 10여년 전 춘장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가 항복하고 말았다.
대기업조차 꼼짝 못하는 이유는 사자표에 대한 뿌리깊은 ‘고객 충성도’ 때문이다. 최근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대상 춘장으로 바꾼 ‘동보성’(서울 남산)의 공헌장 수석주방장은 “바로 다 바꾸지 않고 대상 춘장을 섞는 비율을 20%, 40%씩으로 점차 늘려가고 있다”면서 “사자표 맛에 익숙한 손님들이 느낄지 모를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의 길 포기하고 가업 이은 화교 3세 사장
지난 24일 서울 문래동 ‘영화장유공장’을 찾았다. 왕학보(王學輔·45) 현 사장은 아파트촌 가운데 있는 나지막한 붉은 벽돌 건물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60년대 초등학교 서무실 같은 분위기. 화교 3세인 왕 사장은 서울에서 한성화교학교를 졸업하고, 대만으로 가 국립대만대 의대를 마친 뒤 전문의로 일했다. 거기까진 “대만에서 돌아오지 말고 자리 잡고 살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잘 지킨 셈이다.
그러나 어느날 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지자 의사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가 만든 가업(家業)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춘장만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처음엔 간장도 했지만 60~70년대에 화교에게 주어진 갖가지 제약 때문에 사업을 키울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춘장에만 전념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개인사업자로 머물다 최근에야 ‘영화식품주식회사’라는 법인을 만들었고 김포에 새 공장도 짓고 있다. 할아버지가 만든 춘장 덕분에 세계 곳곳에 한국식 중국집이 성업하고 있어 자부심이 대단할 텐데, 그는 그저 “그러니 지켜야죠”라고 담담히 말했다.
사실 춘장 시장은 정체(停滯)하고 있다. 가정에서 춘장을 별로 쓰지 않고, 자장면을 최고로 쳤던 어린이들조차 이제 넘쳐나는 다른 먹거리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춘장은 원재료나 제조공정 대부분이 간장, 된장과 유사해 장유(醬油)업을 하는 기업은 다 뛰어들 수 있는 사업이다.
“맛은 우리가 최곱니다. 대기업 이름을 달아 납품했다면 매출을 몇 배로 늘릴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가업과 우리 식구(사원)를 지키는 것 말고는 큰 꿈은 없어요.”
[키워드] 춘장 자장을 볶을 때 쓰이는 검은색 발효장.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춘장의 어원은 중국의 ‘첨면장(甛麵醬)’이라는 설이 많다. ‘첨면장’을 ‘첨장’으로 줄여 부르다가 ‘춘장’이 됐다는 것. 밀가루와 콩, 소금으로 발효시켜 만들며 간장, 된장과 공정이나 재료가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