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심사·솜방망이 처벌에 퇴직공무원 '몰래 취업' 성행

by최훈길 기자
2019.01.16 06:30:00

지난해 퇴직관료 886명 재취업 전수조사
작년 1~6월 153명 공직자윤리법 위반
법 어겨도 과태료 면제, ‘솜방망이 처벌’
인사처 “공무원 생계형 취업 감안해야”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지난해 퇴직 공무원들이 위법하게 몰래 재취업을 한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법으로 정해진 재취업 심사를 피해 몰래 취업하고도 절반은 과태료 처분조차 받지 않았다. 솜방망이 처벌 탓에 민관유착을 막겠다고 도입한 퇴직공무원 재취업 심사가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15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공무원 퇴직자 중 임의취업자는 지난해 1~6월에 153명으로 집계됐다. 임의취업자는 공무원 재취업 심사 대상인데도 심사를 받지 않고 임의로 취업제한기관에 근무한 취업자를 뜻한다. 공직자윤리법을 어기고 몰래 취업한 퇴직자다.

‘관피아법’으로도 불리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 후 3년 동안에는 퇴직 전 5년간 맡았던 소속 부서의 업무와 관련된 민간 기업·공직유관단체 등에 취업할 수 없다.

특히 2급 이상 고위공무원 퇴직자는 소속 부서가 아니라 ‘소관 기관’과 관련된 곳에 재취업을 해선 안 된다. 다만 전문성, 공익 등을 고려해 재취업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도 공직자윤리위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한 임의취업자는 매년 증가추세다. 임의취업자는 2014년에 40명에 그쳤다. 세월호 참사 이후 민관 유착을 막기 위한 취지로 공직자윤리법이 개정·강화됐던 때다. 2015년에는 155명으로 불어난데 이어 2016년에는 224명, 2017년은 229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추세가 하반기에 그대로 이어질 경우 지난해 임의취업자수는 30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추세대로라면 역대 최대규모다.

이렇게 늘어난 것은 생계형 취업자에 대한 과태료 면제 조치와 재취업 심사 대상 취업제한기관의 확대가 맞물린 때문으로 풀이된다.

취업제한기관은 2013년 말 3960개에 불과했으나 2014년 말 1만3466개로 늘어난데 이어 2015년 말 1만3586개, 2016년말 1만4214개, 2017년 말 1만4846개, 2018년 말 1만5202개, 2019년 1만5565개로 매년 증가추세다.



이렇게 임의취업자가 늘어나는 데도 제재는 솜방망이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1~6월 임의취업자 중 75명에게만 과태료가 부과됐다. 몰래 취업을 한 임의취업자 51%(78명)는 과태료를 면제 받았다.

인사처 관계자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생계형 취업인 경우에는 과태료를 면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철저히 비공개로 운영된다. 위원 구성조차도 비공개다. 11명의 위원 중 위원장(박시환 전 대법관), 부위원장(황서종 인사혁신처장)만 신분을 공개한다. 이에 참여연대는 인사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해 8월 인사처에 국세청, 공정위, 금융위, 금융감독원 출신 퇴직자에 대한 정부공직자윤리위의 취업심사 관련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했다. 인사처가 이를 거부하자, 참여연대는 지난해 11월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신동화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간사는 “이대로 가면 심사 과정에 대한 외부의 감시·견제가 불가능해 온정주의적인 심사가 지속될 것”이라며 “심사 결과의 적정성에 대한 의혹과 국민의 불신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성한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부실하게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회의록을 공개하고 부실 심사를 한 위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