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금호타이어…3년 만에 다시 자율협약(종합)

by노희준 기자
2017.09.27 06:00:00

산은 "실효성 없다" 자구안 거부
박삼구 회장 경영서 물러나
채권단 자율협약 절차 돌입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해외 매각 무산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던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 졸업 3년 만에 다시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됐다. ‘깜깜이 자구안’ 수준의 부실한 자구안으로 채권단을 설득하지 못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니그룹 회장은 경영정상화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겠다며 ‘백기투항’했다. 이로써 금호타이어 인수를 통해 금호아시나그룹을 재건하려던 박 회장의 꿈은 ‘마지막 퍼즐’ 앞에서 물거품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금호타이어와 같은 구조조정 기업의 실패 사례를 줄이기 위해선 기존 경영진에 대한 우선매수권 및 경영권 부여 등 ‘온정주의적 관행’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은 26일 박 회장측이 제시한 금호타이어 자구안의 실효성이 부족, 채권단 주도의 정상화 작업을 추진키로 금호아시아나그룹측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채권단은 또 이날 주주협의회를 열고 금호타이어 자구안 및 향후 경영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자구안의 경우 오늘 27일 최종 결론이 나지만 32%의 의결권 지분을 가진 산은이 이미 자구안을 거부한 상태라 부결은 확정적이다. 자구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의결권 75%를 넘어야 한다.

앞서 박 회장측이 산은에 제출한 자구안 규모는 최대 7300억원에 달한다. 금호타이어 부실의 주원인인 중국 공장을 최대 4000억원에 매각하고 유상증자로 2000억원을 조달하는 방안이 담겼다. 하지만 박 회장측은 중국 공장을 매입할 상대방의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구두로는 투자확약서(LOC)까지 받았다고 했지만 이 같은 구체적 정보의 결함은 채권단을 설득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다.

또 유상증자를 통한 2000억원 조달 방안의 경우 결과적으로 채권단 지분을 떨어뜨리고 박 회장 지분을 20%로 올려 박 회장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꼼수’로 채권단은 평가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채권단은 유상증자 2000억원 방안을 박 회장의 ‘알박이’ 지분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상표권 사용을 두고 빚어진 채권단과 박 회장측간 갈등도 여전히 문제였다. 금융권은 박 회장이 중국 타이어업체 더블스타로의 매각을 무산시키기 위해 금호타이어 상표권을 지렛대로 ‘몽니’를 부린 것으로 본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박 회장에게 다시 경영정상화의 기회를 주는 일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사실상 매각을 무산시켜 회사가치를 떨어뜨린 후 헐값에 인수하겠다는 게 속셈 아니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패한 경영인의 무모한 ‘경영권 집착’이라는 질책인 셈이다.

박 회장을 끌어내린 채권단은 일단 금호타이어를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꾀할 방침이다. 이로써 금호타이어는 2014년 말 워크아웃 졸업 이후 채 3년도 안 돼 다시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됐다. 자율협약은 금융기관과 기업이 사적 합의(신사협약)를 통해 기업재무구조개선에 나서는 것으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적용받는 워크아웃보다 한단계 느슨한 구조조정 방식이다. 자율협약에 들어가기 위해선 채권단 100%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구조조정 후폭풍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 장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으로 들어갈 때 채권단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충당금 부담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워크아웃에 돌입한 기업은 여신 건전성을 ‘고정이하’로 분류해야 돼 금융권의 충당금 추가 부담이 커진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르면 오는 29일쯤 자율협약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일부 시중은행이 난색을 표해 워크아웃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일단 이달 말 돌아오는 1조3000억원의 여신 만기를 유예하고 신규 자금 투입 등을 포함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필요시 채권단의 구체적인 실사와 노동자의 고통분담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이해당사자들이 협조해 고통을 분담하면 금호타이어가 살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산은 관계자는 신규 자금 투입 필요성과 관련, “당장 추가 자금 투입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해외금융기관의 여신도 롤오버(만기연장)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가 다시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박 회장의 그룹 재건의 꿈은 당분간 불가능하게 됐다. 그간 산은 속을 태웠던 박 회장은 채권단 회의에 앞서 사실상 ‘백기투항’에 나서 ‘명예퇴진’하는 방법을 택했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정상화 추진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경영에서 즉시 퇴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산은은 지난 23일 이동걸 회장이 박 회장과 직접 만나 자구안에 대해 ‘부실 판단’이 내려질 것을 미리 전달했고 박 회장은 산은 거부→채권단 부결→경영권 박탈의 수순으로 나가기 전 미리 백기를 들었다. 산은 관계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박 회장의 우선매수권도 내려놓겠다고 했다”며 “금호타이어 정상화 추진과정에서 ‘금호’ 상표권이 문제 되지 않도록 이를 영구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외국에 비해 기존 경영진에 대해 훨씬 온정적이고 여러 기회(우선매수권, 경영권 부여)를 주고 있어 결과적으로 채권단 손해가 커지고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다”며 “실패한 경영인에 대한 처벌이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채권단은 워크아웃이 개시된 지난 2010년 박 회장에게 경영권과 우선매수권을 부여했다. 우선매수권은 우선협상대상자가 제시한 동일한 가격으로 회사를 먼저 인수할 수 권리다. 상표권과 우선매수권, 경영권까지 갖고 있는 기존 경영자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 매각은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얘기다.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부 교수는 “기업이 3년 만에 다시 구조조정에 돌입하게 된 것은 1차적으로 경영권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 박삼구 회장의 책임”이라며 “채권단 역시 민간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할 정도로 결과적으로 3년간 허송세월만 보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