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책 다시보기]갑작스런 이념전쟁, 왜 지금인가
by김정남 기자
2015.10.17 08:00:00
여의도 여야 정치권의 정쟁에 숨겨진 정책 이야기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지난 2013년 초 모바일전시회 ‘MWC 2013’ 취재차 스페인에 갔을 때입니다. 삼성 스마트폰의 경쟁력이 하늘을 찌르던 때였지요. 세계적인 산업전시회를 가보면 부스의 위치와 크기를 통해 위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시회의 중심부는 삼성전자(005930)의 차지였지요.
그 바로 옆에 있던 업체가 중국 화웨이였습니다. 사실 ‘중국 IT’의 용틀임은 그때도 새삼스럽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회사들은 여전히 중국을 낮춰 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화웨이 간판 스마트폰 ‘어센드 P2’를 보던 업계 고위임원들은 “하드웨어는 다 따라왔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건 곧 사용자경험(UX) 등까지 포함한 전반적인 경쟁력은 ‘아직’이란 뜻이었습니다.
2년반 전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건 정책당국이 보는 우리 산업계의 현재가 심상치않기 때문입니다. 각 연구기관장들과 정기적으로 논의한다는 여당 한 경제통 의원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제는 가격으로만 밀어붙이는 중국이 아닙니다. 기술력도 우리에게 뒤질 게 없습니다.” 그러면서 언급한 게 ‘좁쌀’에서 ‘거인’으로 큰 샤오미입니다. 이 인사에게 예전 MWC를 언급하자 “지금은 많이 바뀐 것 같다”고 합니다. G마켓 같은 온라인쇼핑몰에 가보니 샤오미의 보조배터리과 공기계 등은 이미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네요.
삼성이 일본 소니를 이겼다고 흥분하던 때가 있었지요. 벌써 중국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이 정도인데, 다른 업종은 어떻겠습니까.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조선 해운 철강 건설 석유화학 등을 특정하면서 “공급과잉과 상시불황에 처한 업종”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주변에서 우리경제에 먹구름이 짙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낮췄지요.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수출 부진’ 탓입니다. 올해 경제성장률에서 내수 기여도는 2.5%인데, 수출은 0.2%에 그칠 것이라고 하네요. 우리경제는 내수와 소비보다 수출과 투자의 비중이 유난히 큰 구조입니다. 그 근간이 흔들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권에서 경제를 아는 인사들은 “예전 경제위기와는 양상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낡아버린 산업구조 자체를 뜯어고칠 때가 됐다는 겁니다. 정부가 최근 몇년 돈을 많이 풀었지만 경제는 요지부동이지요.
저성장은 이미 고착화됐습니다. 저는 지난주 이 코너를 통해 전두환정권의 우직한 안정화정책을 설명드렸지요.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7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8.7%였습니다. 박정희정권(9.1%) 당시 성장은 이미 꿈같은 얘기입니다. 김대중정권(4.8%), 노무현정권(4.3%) 때도 4% 이상 중성장은 유지했지요. 박근혜정권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위기감을 절실히 가져야 합니다.
저성장의 더 큰 무서움은 양극화에 있습니다. 지난해 상위 10%의 월 평균소득은 962만원이었습니다. 하위 10%(98만원)보다 864만원 더 많았지요. 10년 전엔 어땠을까요. 그 격차가 559만원이었습니다. 10년새 무려 300만원 이상 더 커진 겁니다. 양극화된 사회는 비틀거릴 수 밖에 없지요. 양극화가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는 연구는 이미 많습니다. 그건 곧 정치적 불안까지도 내포하는 겁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요즘 국회의 풍경은 기가 막힙니다. 저는 정치인들이 공천 싸움을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야가 갑자기 역사교과서를 고리로 ‘이념전쟁’ ‘진영싸움’을 벌이는 건 참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대통령의 의중이 워낙 강할 수도 있고,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해야 할 수도 있지요. 그래도 왜 하필 지금, 그것도 ‘올인’을 해야 하는지 쉽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정치인들이 명절 때마다 지역구를 둘러보고 마치 구구단 외듯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의도 사람들’ 아니면 주민들은 정치를 잘 몰라요. 경제부터 살려달라고 하지요.”
안타깝습니다. 정치 불신은 정치인들이 여의도 정치만 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봅니다. 저도 가끔 지인들에게 정치를 물어보면, 반응은 비슷합니다. 마치 ‘게임’을 보듯 하지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통령 만들기 게임’일 겁니다. 정치인을 그만큼 먼나라 사람으로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건 국민들의 바람을 정치인들이 제대로 수렴하지 않는 탓입니다.
IT에 능한 한 여권 인사는 어느날 웃으며 “정치인들이 IT에 관심이 있겠습니까”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산업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샤오미 화웨이 알리바바 같은 ‘중국굴기’는 우리경제에 꽤 심각한 신호입니다. 언젠가 세계적인 산업전시회에서 중국 업체들이 중앙홀을 점령하는 날이 올 수 있을 겁니다. 그때 우리경제의 수준은 어떨까요. 여의도는 그제서야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 혹은 정책을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